근로계약이 무효입니다
근로자는 중국음식점의 홀 매니저로 일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비해 경력이 꽤 화려했다. 그는 여러 대형 중국요릿집에서 8년간 서빙한 경험을 바탕으로 월 400만 원의 급여를 조건으로 홀 매니저로 채용되었다.
하지만 3개월쯤 지나면서 사업주는 그의 업무 능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 서빙은 잘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며 직원들을 조율하고 적절하게 지시하는 능력은 부족해 보였다. 늦게 온 손님에게 먼저 주문을 받거나, 바쁜 시간에 주문 전달을 빠뜨리는 등의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사업주는 근로자를 불러 이야기했다.
“홀 매니저로 너에게 전임자와 같은 급여를 줬지만, 솔직히 너는 적임자가 아닌 것 같아. 미안하지만 한 달 시간을 줄 테니 다른 곳을 알아보는 게 좋겠어.”
근로자는 이렇게 답했다.
“맞아요, 제가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매니저 경력이 꼭 필요해요. 조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사업주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급여는 너에게 과한 금액이라는 건 너도 알 거야. 월 350만 원으로 계약을 새로 쓰면 계속 일할 수 있어. 아니면 다음 달까지만 하고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결국 근로자는 고민 끝에 월급 50만 원 삭감 조건을 받아들였고, 근로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 사업주와의 대화 내용은 근로자가 모두 녹음하여 증거로 제출했다. 사업주의 목소리는 강압적이거나 소리 지르는 부분은 없었고, 차분하고 조용히 설명하는 톤이었다.
그렇게 근로자는 삭감된 급여로 1년 더 근무했다. 하지만 식당의 경영이 악화하면서, 사업주는 이제 근로자를 고용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해 사직을 권고했다. 근로자는 이를 받아들이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퇴직한 근로자는, 그동안 삭감되었던 월 50만 원씩 12개월 치의 임금 감소분인 총 600만 원을 달라고 노동청에 신고한 것이다.
근로자의 주장은 이랬다. 급여를 감액한 새로운 근로계약서는 민법상 불공정한 법률행위이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자신이 해고를 당하면 다시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사업주가 알고, 그것을 이용해서 강압적으로 임금 감액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근로계약을 무효화 하려면, 계약이 명백히 불합리한 과정을 통해 체결되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민법에서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공정을 현저히 잃은 계약은 무효’라고 규정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판단할 때 계약 당사자의 나이, 교육 수준, 사회 경험, 재산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또, 계약 상대방에게는 그러한 처지를 이용하려는 고의도 있어야 한다.
이 근로자의 나이는 비교적 젊었지만, 총 5개의 대형 음식점에서 장기간 일한 경력이 있었다. 빚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궁박 상태도 아니었으며, 퇴사 후 15일 만에 다른 음식점에 쉽게 취업했다. 따라서 ‘취업이 어렵다는 점을 사업주가 이용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또한, 사업주가 강박을 통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사업주의 제안은 차분한 대화를 통해 이루어졌고, 한 달 후에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불법적인 협박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사업주는 일방적으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지만, 근로자와의 협의를 통해 급여를 조정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된다.
결국 이 사건은 ‘위반 없음’으로 종결되었다. 근로자는 조사 기간 중 다른 중국음식점에 취업했다가, 또다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는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인상이 좋아, 어디서나 쉽게 채용되는 듯했다.
그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아 능력을 발휘하고, 그에 걸맞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다음 사업주에게는 괜한 트집을 잡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