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마지막 블로그 글을 쓴지 한 달이 지났다.
이번엔 시간 가는 걸 알고 있었다. 매일매일 '오늘은 써야지, 그래 쓰자'를 되뇄다.
그러나 한 달이 넘게 지났다. 한 달 지났다고 더 낫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한 달은 지나버렸다. 다시 나태했다.
코털이 빨리 자란다. 코털이라고 하면 인중에 나는 콧수염마냥 근사한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서 빨리 자라나는 털은 콧 ‘속’의 털이다.
의도치 않게 빨리 자라나는 이 털은 조금이라도 관심이 부족하면 코를 비집고 나와 밖으로 삐져나온다. 날 알아달라는 듯이. 해 보고 크는 해바라기 같이.
재택근무를 맞이하야, 거울을 유심히 봤다. 역시나, 관심을 못 줬던 코털들이 코를 헤집고 나와있다. 정말이지 내 의지는 하나도 없이 자기 혼자서들 튀어나온다.
코털 가위를 들었다. 코털들은 사랑을 갈구하나, 나는 무지막지한 형벌을 내린다. 금색의 스테인리스 코털가위는 무려 6년 전 부산 영도 다이소에서 산 것이지만 내가 이사하는 곳곳마다 따라오더니 지금에 이르렀다. 그만큼 코털과 나의 관계는 끈끈하다.
스테인리스 가위로 싹뚝싹뚝 코털을 잘라낸다. 금색의 번쩍 빛나는 스테인리스 가위 앞에서 끈질긴 구애에도 영락없이 잘려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실수를 했다. 재택 근무로 시간이 여유로웠는지 안보이는 곳까지 깔끔하게 자른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콧 속에 상처를 낸 모양이다. 하루종일 콧 속이 불편하다.
사실, 글을 쓰려고 코털과 나의 관계를 조금 부풀렸다. 평소 코털을 신경쓰기야 하지만 글로 남길 정도는 아닌데, 오늘따라 코가 시큰한 것이 더욱 생각나게 하니, 코털의 구애가 통한 것인가 늦은 밤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코털이 구애한지는 약 10년 쯤 됐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청소년기에는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지 않았었고, 본격적으로 괴롭혔던 건 군대에 입대한 시기부터니 약 10년이 얼추 된다.
10년은 길었다. 삐져나온 코털에 애인에게 핀잔 듣기도 했고, 중요한 자리를 잘 치른 후 삐져나온 코털에 식은 땀이 나기도 했고,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 잠깐 화장실을 갔다가 놀래서 뽑아내기도 했다. 코털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밉진 않다.
화가 나지 않는다. 조금 더 섬세하게 다루어야 겠다. 삐져나온 코털을 자르다가 콧 속에 난 상처 덕에 코털에 다시 애착이 생기다니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