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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Oct 12. 2023

15-1. O 차장_밀어줄 세가 약했다

친해지면 많이 다정한 사람

지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상사들이 승진하며 하나 둘 지사를 떠났고, L 차장 역시 다른 지사로 이동을 하면서 상사들이 한 번에 바뀌었다. 승진 명당자리로 소문이 나서 인지, 전입 차장들 사이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L 차장의 빈자리로 발령받은 O 차장 역시 승진대상자로, 일찍이 나와는 안면이 있는 차장이었다. 내가 민원업무를 할 때, 옆 부서의 차장이었는데 그녀와 같은 부서 내 고참 과장들과 함께 업무를 신참내기인 나와 옆 직원에게 토스하려 해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다행히 J 차장이 중재하여 원칙대로 옆 부서에서 처리했지만. 

곱슬한 단발머리, 큰 키, 서글서글한 입매가 매력적인, 외형으로는 충분히 호감을 줄 법한 인상이었음에도 그녀의 두 번째 인상은 첫 번째 만남이 연상되어 그리 좋지는 않았다. 특히, 사람 좋은 L 차장의 후임이니 아무리 잘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O 차장은 이 지사에서 꽤 오래 근무했기에 그녀와 함께 일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과장은 O 차장은 솔직한 성격으로 시원시원해서 앞뒤가 같은 사람이니, 혹시나 오해할 수 있어도 다른 뜻이 없다고 구체적으로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과장의 조언이 일리 있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줌마 특유의 선을 아슬아슬 넘는 발언을 종종 하는데, 상대방이 듣기에 따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니, 악의가 없었고 본인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내뱉는 말이었다. 직설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공격적이지는 않았다. 굳이 성격을 남녀로 나누자면, 세심한 부분이 많은 여자라기보단, 툭 던지고 잊어버리는, 마초 같은 남자에 가까웠다. 문과보다는 이과 성향이 맞는, 요즘 흔히들 말하는 F 가 아닌 파워 T 였다.    

 

O 차장은 총괄 업무가 처음이었지만,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마찬가지로 새롭게 전입한 팀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기존에는 팀장에게 내가 직접 보고를 해 부담이 되었고, 감사 부서의 결재도 준비하느라 걱정이 많았는데, 차장이 보고를 전담하니 업무가 한결 수월 해졌다. 지사 현안에도 신속하게 대응했고, 일 처리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녀는 성격도 급한 편으로 가끔은 업무지시를 하다가 말이 엉키기도 했는데, 그녀의 입이 그녀의 머릿속을 따라잡지 못한 듯했다. 일도 성격을 따라가는구나 싶었는데, 긴급한 처장의 지시에 기민하게 잘 대처했다. 

업무개선 아이디어 공모가 진행되면 대부분의 직원은 사실 관심이 없다. 그래서, 1인당 1 과제가 암암리에 강요되는데, 그녀는 신기하게도 항상 아이디어가 있었다. 기존에 업무를 하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넘어가지 않고 해결하고 싶어 했는데 같은 업무를 대하더라도 시선이 묘하게 남달랐고 제안하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진행한다는 일 자체가 본인 고유 업무에 플러스되는 일임에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간혹 프로그램에 어떤 점이 불편하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면, 그녀가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본질을 꿰뚫는 그녀의 해안이 돋보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소위 아이디어 뱅크로 소문이 나 있었고, 그녀가 제안한 과제들은 최종선정되어 지사 업무실적 보고를 대표했다. 그리고 그 실적 역시 누군가에게는 거름이 되어 몇몇이 승진했다. 본디 누가 했든 간에 같은 지사 안에 있으면 승진 예정자의 실적이 되는 거였다. 

 

아쉬운 점은, 이제 그녀는 총괄 업무를 담당하는지라 아이디어 과제의 진행이 아닌 관리를 담당했고, 누군가가 과거의 그녀처럼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아이디어를 진행까지 하기에는 손발이 부족했다. 그녀의 승진을 견제하는 타 부서 차장이 많았고, 처장과 팀장도 새로 바뀌어 적응하는 중이라 그녀의 승진을 밀어줄 세가 약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직군을 전환하여 차장으로 승진했기에 다른 차장들은 그녀를 은근히 무시하면서도, 본인들보다 남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그녀를 질시했다. 같은 여자 차장끼리 특히 견제가 심했는데, 가능한 한 도와주려 하지 않고, 되려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정작 당사자인 O 차장은 개의치 않아했지만, 직원인 내가 옆에서 느끼기에도 부당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상황이 참 아쉬웠다. L 차장과는 전혀 다른, 손바닥 뒤집듯 바뀐 태도에 사회생활의 서늘함이 느껴졌다. 사람을 봐서 행동하는 건, 약육강식의 회사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너무 속이 보여 좀 우습기도 했다. 딱 저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던 거다. 


그녀의 성격으로 보면, 말술은 아니더라도 술은 어느 정도 마실 줄 알았는데, 웬걸 우리 회사 사람인데, 술 한 잔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주량 이상 마시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술자리 대화를 주도하는 편도 아니었기에 회식자리에서는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승진을 하려면 술자리 참석은 물론이고 뻔뻔하게 본인을 어필해야 하는데, 그녀는 술자리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오히려 직원들과의 2차 회식인, 커피 회식을 즐겨 같이 자리를 옮기곤 했다. 업무도, 사람 자체도 참 매력적이었지만, 그녀 특유의 털털한 매력이 드러나기엔 회사는 눈에 보이는 술상무와, 옆에서 대놓고 굽신 거리는 태도에 점수를 더 쳐주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상사에게 보다 직원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말을 직선적으로 할 뿐 직원들을 잘 챙겨주는 편이었다. 아침에 종종 직원들과 커피타임을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처음에는 참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간식거리를 챙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회사 상사이기도 했지만, 점점 친한 이모 같기도 했고,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는 따스했다.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했고,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여러 조언을 해주는 등 상사와 직원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꽤 친밀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친한 사람에게 참 약한, 많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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