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 [문맹]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작가의 말투는, 담담하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바다 한가운데서 흔들리고 있는 배 안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평안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의 말을 듣는 기분이다. 읽으면서 나 스스로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물속에 잠겨버린 기분이었다. 4살 때부터 활자중독처럼 글을 읽어대던 그녀는 두 번의 침공 속에서 나라를 잃고 난민이 되어 낯선 땅 스위스에서 문맹이 되었다. 낯선 나라, 낯선 음식, 그리고 알 수 없는 활자. 일하던 공장에서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쓰고 읽을 줄을 몰라 꼬박 5년을 문맹으로 살았던 그녀가 113쪽의 아주 짧은 책 안에서 담담하게 자신의 삶과 언어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가 나에게 스위스가 소련인들을 여기까지 오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한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고, 내가 지금 안전하다고 말한다. 나는 웃는다. 나는 그에게 소련인들이 무섭지 않고 만약 내가 슬프다면 그것은 오히려 지금 너무 많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직장과 공장, 장보기, 세제, 식사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것도, 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잠을 자고 내 나라 꿈을 조금 더 오래 꿀 수 있는 일요일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녀는 소련 통치하에 모국어인 헝가리어 이외에 반 강제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워야 했으며, 필요에 의해, 정확히는 자신의 아기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해 기초적인 독일어를 배워야 했고, 난민으로써 스위스에 정착해 살아가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 ‘문맹’이라는 책 역시 프랑스어로 집필하였으나, 그녀 자신도 인정하듯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프랑스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 그녀는 유수의 프랑스어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몹시 기뻐하지만, 사실상 그 언어는 여전히 그녀에게는 외국어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오히려 그로 인해 그녀의 모국어를 잃는 것 같아 복잡한 감정이 들어한다. 나는 주로 옮긴이의 말까지 읽는 편인데, 이 번역가 분의 말이 나에게 정말 절절히 다가왔던 부분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소개한다.
“원서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표지와 경계가 뚜렷한 해수욕장을 벗어나 저 멀리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외국어로 쓰인 원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끝이 점점 멀어질 뿐인 광활하고 짙푸른 바다다. 모국어의 경계 밖에서 헤엄치는 일은 매우 험난하고, 때로는 위험하며, 나를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도전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외국어를 읽는 동안 나는 가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그곳에 있는, 누군가의 모국어와 내 발을 묶고 있는 나의 모국어 사이 어딘가 대양을 가로지르는 은빛의 물고기처럼 자유롭다… 모국어와 모국의 문자 바깥에서 작가는 무력한 이방인이다. 결국 그녀는 외국어, 그러니까 그녀의 용어를 빌면 ‘적의 언어’를 배워 나가며 서서히 잃었던 자아를 되찾아간다.”
평소 나는 번역서보다는 원서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 언어와 문화를 내가 이해하는 한 다른 개입 없이 그 작가의 의도와 뜻대로 읽고 싶다. 하지만 결국 그 언어가 나의 모국어는 아니므로, 가끔 원서보다 오히려 번역본에서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 더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는 때도 있어 ( 나는 그래서 번역가라는 직업을 상당히 존경하는 편이다.) 언어의 힘이란 참 대단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언어는 단순한 글의 나열이 아니라 문화, 감성, 가치관 모두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므로. 결국 언어란 우리의 뿌리와 같다, 우리와 이 땅 사이에 연결된 일종의 혈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