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menissa, Chatzivaritis Estate
우리는 구대륙의 와인이라고 한다면 흔히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와인을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오래된 와인의 유적들은 조금 더 동쪽, 조지아나 이란 북부 등지에서 발견된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주로 토기에서 보관과 숙성을 진행한 모양인지 주로 토기의 벽면에서 남은 포도즙이 발견되고는 하는데, 요즘 조지아에서 나오는 내추럴 와인들은 그 전통방식처럼 토기에 숙성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게 토기에서 숙성을 하게 되면 그 특유의 흙내음과 묵은 냄새가 나게 되는데, 나는 이런 거친 토양 향과 약간의 곰팡내가 와인의 과실 맛과 만났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Chatzivaritis Estate의 Goumenissa는 그리스의 내추럴 와인으로, 그리스 토착품종만을 활용해 12개월 오크통 숙성 후 6개월 그리스의 전통 토기인 암포라 (Amphora)에서 숙성했다. 나의 경우 그리스 와인은 이 와인이 처음이었는데, 이 와인 때문에 그리스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 땅에서 자란 포도를 그 땅의 흙으로 빚어 만든 토기에 숙성한 와인의 맛이 마음에 들었다면, 응당 그 땅도 내 마음에 들지 않겠는가.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리스에도 상당히 다양한 토착품종과 와인 산지가 있다. 사실 Goumenissa는 그리스 북부 테살로니키 근처의 작은 와인 산지 마을인데, 이 내추럴 와인은 그 지역에서 그리스 토착품종인 xinomavro와 negoska를 활용해서 만들어서 그 이름을 차용한 모양이다. 이 두 품종은 해당 지역에서 주로 많이 생산하는 품종으로, 주변 다른 와인 산지들에 비해 조금 더 거칠고 과실 풍미가 진한 와인을 만들어 낸다. 그 와인을 토기에 숙성했으니, 풍부한 과실 맛과 흙 맛이 적절하게 섞일 수밖에.
내가 좋아하는 그 흙 맛. 적절한 비율의 토양의 맛. 이 와인은 처음 이 타입의 맛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와인이다. 첫 향은 붉은 과실의 맛과 흙, 그리고 후추나 클로브 같은 몇 가지 향신료의 향이 올라온다. 첫 입엔 단 맛없이 흙 향과 탄닌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다만 탄닌의 양이 딱 적절하여 혀를 한번 감싸면서 묘한 과실 향과 흙 향을 섞어 입 안을 코팅해줘 기분 좋은 토양의 향이 입안에 머문다. 시간을 두고 맛을 보다 보면 차츰 에어링이 되어 기분 좋은 과실 단맛이 올라오는데, 처음엔 이 새콤달콤한 맛이 잔존하는 흙 맛과 탄닌을 잠시 덮었다가 마지막엔 흙-과실-탄닌의 최적 조합을 맞춘 듯 잡아준다. 이 와인은 차분히 시간을 주면서 마시다 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그리스 해변가 한 조용한 테라스에서 이 와인을 마실 그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Goumenissa
Chatzivaritis Estate 와이너리는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 지역 테살로니키 근처의 Goumenissa에 위치한 와이너리로, 2002년부터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사를 지으며 유기농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최소한의 개입을 해 와인을 자연 숙성시킨다. 이 지역의 경우 여름에 비가 적게 오고 토양의 석회질 비율이 높아 포도가 작고 당도가 높다. 소개한 Goumenissa 와인과 같이 xInomavro와 negoska를 블랜딩 하는 경우가 많으며, 주로 적절한 산미를 가지면서도 풍부한 과실 향을 보여 밸런스가 좋은 와인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