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ari
"캄파리를 마시고 있노라면 그런 일들이 덜 급하게 느껴져."
- 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에서
이 쌉싸름한 맛의 비터 리큐르는 뒤라스의 소설을 언급하지 않고는 시작할 수가 없다. 타는 듯한 폭염 아래 주인공들이 별 볼 것 없는 이탈리아의 한 해변가 호텔 발코니에 앉아 캄파리 (Campari)를 마시는 장면. 느릿하고 권태로운 흐름 속 강렬한 욕망과 불타는 듯한 감정은 나까지 집어삼키는 기분이다. 책의 끝에서 결국 그 감정들은 무더위에 녹아버리지만, 더위와 갈증을 쫓아내는 쌉쌀한 불륜의 맛을 연상케 하는 캄파리만큼은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으로 남는다.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읽는 것은 오롯이 캄파리를 마시는 것으로만 끝날 수 있다. 끈적하게 남는 잔여 감정들을 시원하게 씻어내면서.
캄파리는 이탈리아 식전주 문화를 대표하는 리큐르중 하나로, 씁쓸한 맛이 입맛을 끌어올려 아페리티보로 많이 쓰인다.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재료들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뿌리의 맛과 함께 아니스와 같은 허브 맛이 주류를 이룬다.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입맛을 완전히 잃어 의도치 않게 살이 빠지고 있는데 이 씁쓸한 아페리티보를 마시고 있자면 아 뭔가 그래도 좀 먹어볼까? 하는 느낌이 든다. 도저히 입맛이 없다면, 그렇지만 내가 이깟 문제로 밥까지 못 먹나 싶어서 열 받고 뭔가 먹어야겠다 싶을 때, 식사를 캄파리와 함께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캄파리를 마시는 방법은 꽤나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건 토리노산 베르무트와 캄파리를 섞어 먹는 ‘밀라노-토리노’, 그리고 거기에 진과 오렌지 필을 더한 ‘네그로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네그로니의 변형 방식인데, 베르무트 대신 코냑을 섞고 오렌지 대신 레몬이나 라임을 쓴다. 베르무트의 경우 집에 사두기엔 자주 쓰지도 않는데 유통기한은 짧아서 애초에 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르무트란 게 결국 와인에 여러 약초나 허브류를 인퓨전 한 방식이므로, 와인 베이스의 무엇인가로 대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던 탓도 컸다. 그래서 단순히 달아서 손이 잘 안 가는 헤네시 (Hennessy)를 처리해보자 싶어 베르무트 대신 코냑을 써보게 되었는데, 이게 놀랍게도 코냑의 짙은 포도향과 나무향, 그리고 단 맛이 섞여 들어 의외로 괜찮았다. 다만 코냑이 달아 오렌지를 쓰기엔 좀 달았고, 대신 레몬이나 라임즙을 넣었다. 나는 세상 어디선 이미 존재할지 모를 이 조합에 감히 내 이름을 붙여 ‘뉄그로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혹시 만들어 볼 의향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난 캄파리 : 헤네시 X.O. : 불독 진을 1:1:1로 섞어 레몬즙을 첨가했다. 약간의 탄산수가 가미되면 좀 더 가볍고 상쾌해진다.
Campari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탄생한 캄파리는, 그 당시 많이 만들어지던 여러 재료를 넣고 인퓨전 시킨 약주의 한 종류로 시작했다. 캄파리의 쓴 맛의 주요 원인은 퀴닌 (quinine)이라는 성분인데, 말라리아 등 치료에 쓰이기도 하는 치료 효능이 있는 성분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샤르트뢰즈처럼 다양한 재료가 섞여 복잡 미묘한 맛을 내는데, 씁쓸한 맛 이면에 허브향과 묘한 단 맛이 있어 여러 칵테일에 비터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