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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Oct 17. 2021

약간 젖어 있는 이끼를 맨발로 밟고 싶을 때

cascina Tavijn

약간 젖어 있는 이끼를 맨발로 밟고 싶을 때가 있다. 비가 온 뒤의 땅 냄새를 맡으며 촉촉한 초록잎들을 손으로 천천히 쓸어내며 혼자 맨발로 걷고 싶을 때. 날이 약간 흐리거나 공기 속 수분이 차갑게 느껴질 때는 더더욱. 그럴 땐 약간 묵은 흙내음이 나는 와인으로 자연스레 손이 간다. 와인잔 보울 내 가장 넓은 부분을 조금 못 미치게 그 와인을 채우고는 코를 깊숙이 넣어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다 보면, 마음이 사뭇 편안해진다. 자연이 주는 평안함. 비록 난 지금 이끼가 아닌 콘크리트를 밟고 서있지만, 잠시나마 발바닥의 그 감촉과 풀 냄새를 되살려낸다.


이런 약간 묵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funky 한 향은 주로 내추럴 와인이나 low-intervention wine, 즉 인위적인 첨가나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에서 많이 나타난다. 굉장히 넓은 의미의 맛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표현으로, 효모류들을 활용한 자발적 숙성 과정을 포함하는 와인들, 필터가 적게 된 와인들 등에서 나는 특징적인 ‘자연스러운 묵은 냄새’를 의미한다. 아직 국내 와인 시장 내에서 주류는 아니지만, 와인샵 선반 위에서 이런 특징들을 가진 와인들이 점점 더 많이 보이는 것은 꾸준하게 그 입지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주로 찾는 펑키한 와인들은 흙내음과 마른풀 냄새가 나는 와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권해보면 대부분 처음 반응은 ‘윽 이게 뭐야’이지만, 그중 몇몇은 한 잔, 두 잔이 쌓이며 그 의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요즘은 이런 향과 맛을 내기 위해 특정 효모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브레나토미세스 (brettanomyces), 주로 브렛이라고도 많이 줄여 말하는 효모이다. 이 효모는 농장의 짚단, 이끼 냄새와 같은 향을 내는데, 이전 세대의 와인 제조사들은 사람들이 묵은 내를 기피할까 봐 굉장히 피하던 효모 종류라고 한다. 하지만 이 흙내음이 좋은 나로서는 최고의 효모일 수밖에 없다.


Freisa와 Barbera가 블렌딩된 Cascina Tavijn의 Vino Rosso


펑키함의 찐한 첫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Cascina Tavijn의 Vino Rosso를 추천한다. 이 와인은 엄밀히 말하자면 내추럴 와인은 아니지만, 그 펑키함의 매력이 살아있다. 이 와인을 에어링 없이 병을 열자마자 마시면 일단 깜짝 놀랄 수 있다. 강렬한 묵은내와 짚단 냄새가 코를 훅 찌른다. 와인이 혀에 닿으면 잠시 묘한 탄산이 스치고, 바로 직후에 강렬한 탄닌의 질감이 혀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점점 공기가 와인 사이사이에 스미면서 맛과 향이 빠르게 변하는데, 처음에 나던 그 흙내와 짚단 냄새는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훨씬 부드러워진다. 그 부드러움 사이로 어두운 베리류의 맛이 올라오면서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새콤달콤한, 무게감도 좀 있는 훌륭한 와인이 된다. 비 온 뒤 촉촉한 이끼를 맨발로 밟는 느낌을 되살리고 싶다면, 이만한 와인이 없다.

 



Cascina Tavijn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에 있는 와이너리로, 가족 대대로 이 지역에서 포도를 기르며 와인을 만들어 왔다. 이탈리아는 500개 이상의 포도 품종을 키우고 또 지역별로 특색 있는 와인들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한데, 피에몬테 지방도 바롤로 등 탄닌과 바디감이 묵직한 와인이 많다. cascina Tavijn의 와인들도 마찬가지로 바디감과 타닌이 강렬하며, 지역 자생 품종들과 천연 효모들을 주력으로 사용하여 숙성해 지역 본연의 맛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여기서 소개한 Vino rosso의 경우 Freisa와 Barbera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아직 황산화물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자연숙성의 맛을 강조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그 사용을 줄이고 효모만으로 하는 숙성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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