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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Oct 09. 2021

술은 취향의 영역이다.

글렌드로낙 GLENDRONACH

술은 취향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진한 꿀 단맛이 나는 위스키가 누구한테는 최애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피트 향 강한 위스키를 누군가는 맛만 보고 잔을 밀어내 버릴 수도 있다. 일례로 나는 크리스마스에 아벨라워(ABERLOUR)를 선물 받은 적이 있는데, 아벨라워는 자체 팬층이 꽤 두터운 위스키임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찐득한 질감의 꿀 맛이 나를 상당히 지치게 했다. 이대로 찬장 속에서 먼지만 축적하나 싶었는데, 집에 오는 손님들 중에 또 그 특징적인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대접용으로 큰 활약을 떨쳤다. 마켓에 그렇게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맛, 다양한 캐스크 숙성 위스키가 나와있는 것은 아마 수많은 각기 다른 취향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거다.


술을 다양하게 즐기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기도 한다. 난 내가 피곤한지, 손에 상처가 났었는지도 잘 인지를 못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해 둔감한 편인데, (주로 머리 밑으로는 감지 기능이 발달되지 못했다.) 맛에 대해선 그렇게 까탈스럽게 군다. 내 신체기관 중에서 가장 예민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곳이 아마도 혀인 것 같다. 애당초 음식도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꿀 계열의 맛은 당연히 싫겠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아벨라워라면 입을 꼭 다물고 고개를 돌리지만, 아란(ARRAN) 소테른 케스크는 그 특유의 라이트 한 꿀 맛과 싱그러운 배 향을 상당히 즐기고 잘 마신다. 꿀 계열이라고 바로 기피해버렸다면 ‘질감이 무거운 꿀 맛은 싫지만 가벼운 꿀 향 정도는 즐기는’ 내 취향을 아마 끝끝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이런 계통의 맛은 싫다’라고 단정 짓지 말고 다양하게 맛보라고 계속 권한다. 맛과 향이란 상당히 섬세해서, 싫은 것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초콜릿은 안 먹는데 초콜릿 칩이 박힌 쿠키는 없어 못 먹는, 그런 내 이상한 취향과 같달까, 술은 그런 재미가 있다.


그렇게 내가 선호하지 않는 맛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계통 중에 하나가 바로 셰리 캐스크 숙성 혹은 피니쉬를 입힌 위스키들이다. 쉐리란 스페인의 주정강화 와인의 일종으로,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인위적으로 올려놓은 술이다. 고대서부터 장거리 여행 시 와인이 산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수가 높은 술을 첨가했던 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마젤란이 긴 여정을 떠나기 전에 배에 쉐리를 잔뜩 실어 떠났다는 기록도 있다. 쉐리는 드라이한 것도 있고, 당도가 높은 것도 있지만, 위스키 숙성용으로는 드라이 쉐리 중에서는 올로로소가, 당도 높은 쉐리 중에선 페드로 히메네즈가 많이 쓰인다. 쉐리 캐스크 숙성이나 피니쉬의 경우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많이 갖게 되는데, 이는 쉐리를 숙성할 때 쓰는 솔레라 공법 특징 상 그 캐스크 자체가 많이 유통되지도 않고 귀하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와인 렉에 빈칸이 보이기 시작하면 바로 불안에 떨 정도로 좋아하면서 특이하게도 쉐리 캐스크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쉐리 자체도 크게 즐기지 않을뿐더러, 위스키에서 강한 포도향이 느껴지는 게 나한테는 이질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쉐리 캐스크의 대표주자들-맥켈란(MACALLAN)이나 네이키드 그라우스(NAKED GROUSE) 같은 위스키를 선호하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가끔 손이 가는 쉐리 캐스크 위스키가 있다. 그건 바로 글렌드로낙(GLENDRONACH). 심지어 글렌드로낙 12년은 단순히 쉐리 피니쉬만 입히는 게 아닌 아예 12년을 올로로소와 페드로 히메네즈 캐스크에서 숙성해서, 쉐리 숙성 위스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쉐리 향이 싫다면서 왜 나는 가끔 글렌드로낙을 찾는가.


맥켈란이나 글렌드로낙이나 향은 다 셰리 캐스크가 지배적이지만 노즈에서 글렌드로낙은 포도 밑에 약한 사과향과 가벼운 캐러멜의 향이 올라온다. 맥켈란(더블 캐스크)은 포도 밑에 살짝 달짝지근한 향이 있는데, 약간 가벼운 꿀 향과 함께 바닐라도 조금 느껴지는 게 아마도 버번 캐스크의 영향이 있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렌드로낙은 캐러멜향이 짙어져 점점 그 단 향이 나한테는 좀 강하다 싶어지기는 하지만, 맛에서는 오히려 좀 더 가볍고 보리 맛이 조금 느껴진다. 맥켈란 저변의 그 나무 맛도 좋긴 하지만, 글렌드로낙의 그 담백한 맛과 묘한 사과향, 그 맛에 이끌려서 계속 나도 모르게 한 번씩 꺼내 마시게 된다. (참고로 난 모든 과일을 다 좋아하는데 사과는 잘 안 먹는다. 말하면서도 피식 웃게 된다.) 이렇듯, 결국 사람 입맛은 다분히 복합적이어서 단순히 쉐리 숙성 싫어! 외칠 수 없음이다. 내 안에도 취향이라는 게 겹겹이 있는 것을.






GLENDRONACH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동쪽에 있는 디스틸러리로,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주류 제조 면허를 가지고 있는 디스틸러리이다. 지어지고 얼마 안 되어 큰 화재를 겪고 최근까지도 계속 여기저기 팔려 다니며 다사다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가열방식을 석탄에서 스팀으로 변경한 디스틸러리로, 고유 방식을 유지하려 노력을 많이 했다. 주로 올로로소 쉐리 캐스크로 숙성을 많이 하는 곳이었지만 최근 몇 년 간 버번 캐스크에서 숙성도 시작했다고 한다. (추후 시장에 나오는 글렌드로낙은 좀 더 맥캘란과 비슷해질 것 같은 약간 불행한 예감이 든다.)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진짜 쉐리 캐스크를 경험하고 싶다면 아직 가성비도 훌륭한 싱글몰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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