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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Sep 27. 2021

화장 안 한 쌩얼 같은, 그런 자연스러운 맛.

Julien Meyer 내추럴 와인들


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와인 씬(Scene)은 오가닉 와인과 내추럴 와인이 그 세를 넓혀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뭔가 유행하면 그 자체를 질려버리게 할 만큼 천편일률적으로 그 하나만 집요하게 재생산해내는 경향이 있는데, (여담으로 난 이 부분이 조금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어떤 집착이나 탐욕을 극복하고 싶다면 목구멍에 그걸 지나치게 부어버리라고 말한다. 다 토해내고 나면,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고. 우리는 유독 그렇게 강렬하게 소비하고는 찾지 않는가보다 싶다.) 처음엔 이 내추럴 와인 붐도 비슷한 양상이 아닌가 생각했다. 2000년대 초반의 찜닭집 같은 느낌이랄까, 내추럴 와인 전문 숍이나 와인바가 우후죽순 생기다 한꺼번에 없어지겠거니, 했다. 다행히도 개인적인 기우에 불과했는지, 최근 내가 방문했던 대부분 내추럴 와인바의 소믈리에들은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직접 시음한 경험을 토대로 솔직하고 과감하게 와인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제안한 와인들은 대부분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요즘 유행이다보니 내추럴 와인이 새로운 개념인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와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내추럴 와인은 naked, raw 와인 ,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딱 정해진 정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은 가장 ‘자연적 형태 와인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컨벤셔널 와인들은 보존 및 변질 방지를 위한 아황산 계열의 첨가제부터 와인을 맑게하는 청징제 등 여러가지 인위적인 요소 들어가는데, 내추럴 와인에는 이런 첨가물을 극히 소량만 첨가하거나, 아예 첨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컨벤셔널 와인을 배척하지는 말자,  첨가제들은  각각의 고유 역할들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컨벤셔널 와인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추럴 와인은 주로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된, 토양과 포도 품종, 날씨와 야생 효모가 내는 가장 솔직한 맛을 낸다.  


줄리앙 마이어의 피노 그리 - 산뜻하면서도 풍부하다.

컨벤셔널한 와인을 주로 즐기는 사람들이 내추럴 와인은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나도 그렇다. 일반적인 와인 양조에서는 원하는 알코올 도수나 방향성에 따라 상당히 산업화된 효모를 쓸 수 있지만, 내추럴 와인은 주로 와이너리 동네에 자생하는 야생 효모를 많이 쓴다. 그때그때 붙는 효모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용하는 효모를 제어할 수 없다보니 사람들이 주로 와인 결함이라고 생각하는 브렛 Brett (Brettanomyces, 효모 중 묵은 내, 하수구 냄새 같은걸 낸다고 알려진 친구다)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와이너리는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해에는 주석산이나 정제포도즙 등 여러가지 요소를 활용해 그 맛을 보정하는데, 내추럴 와인은 인위적인 보정을 최소화하므로 그 맛이 빈티지별로 중구난방이 되어 일관성이 없기 일쑤다. 너무 시거나, 너무 하나의 맛에 치중되거나. 이 와인을 사면 이런 맛이 나! 하는 안심을 할 수가 없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꼭 단점일까? 매해 그 연도의 특징을 즐겨보고 싶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조금 더 자연적인 형태의 와인을 만나고 싶을 수도 있고, 남들은 결함이라고 외쳐도 브렛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와인 폭이 넓어지고 흥미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더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신대륙에서 햇볕을 받아 잘 익은 과일 맛을 내는 와인들이나 구대륙에서 전통 기법으로 섬세하게 빚어낸 와인들이 현란한 메이크업 실력을 뽐낸 화려한 얼굴이라면, 내추럴 와인은 머릴 한껏 올려 묶은, 세수하고 난 뒤 주름도, 잡티도 전부 솔직하게 보이는 얼굴이랄까. 그 나름의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처음 내추럴 와인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라면, 화이트 와인부터 시작하라고 하고 싶다. 아 먼저,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컨벤셔널부터 접해보라고 하고싶다. 컨벤셔널 와인이 커피라면 내추럴 와인은 콤부차같은 느낌이니까. 컨벤셔널 와인을 몇가지 경험해보고 재밌게 마셔보았다면, 화이트 내추럴 와인을 권한다. 아직 경험이 짧은 나는 그저  경험에 비추어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내추럴 와인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낮은 음용 온도와 타닌의 부재 등 레드나 오렌지 와인보다는 화이트가 좀 더 즐거운 경험을  ‘가능성 있다. 여기서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추럴 와인도 종류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트렌드는 로제와 오렌지 와인이긴 하다. 화이트가 괜찮았다면 그 쪽도 도전해보자.) 


불타는 도전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런 독특함을 낯설어하는 우리 남편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줄리앙 마이어 와이너리의 내추럴 와인들을 추천한다. 나는  와이너리의 피노누아와 피노그리를 마셔보았는데, 아주 강렬하게 -하는 특색을 드러낸다기보다는 풍부한, 밸런스 감이 좋은 와인을 추구한다. 피노누아의 경우 피노누아  특유의 경쾌한 과실 향은  살려내면서도 잔잔한 흙내음이 올라와 기분이 좋았다. 피노그리는 꽃향으로 시작해 입안에서   청포도를 굴려내는 듯한 포도향과 사과향이 어울리다 미네랄 맛으로 마무리된다. 컨벤셔널과 흡사하게 ‘정석적인  내면서도 풍부한 표정을 지어내는 와인들이라, 내추럴 와인이 낯선 사람들에게 좋은 포석이 되어줄 듯하다.


좀 더 과감한 선택을 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조지아나 그리스의 내추럴 와인들을 추천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와인 관련 유적이 남아있다는 곳은 의외로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아닌 조지아인데, (이란 쪽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지아의 내추럴 와인들은 아직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방식대로 qvevri라는 토기에 숙성해 그 맛이 굉장히 독특하다. 토기 숙성은 컨벤셔널 와인에서도 다시금 많이 시도되고 있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다양한 토착품종을 기반으로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흥미롭게 지켜볼만 하다. 시노마브로 Xinomavro 나 아시르티코 Assyrtiko등 토착품종을 이용해 전통 방식을 계승한 재밌는 와인이 많으니, 이제 좀 새로운걸 마셔보고 싶다 싶다면 조지아나 그리스 내추럴 와인을 시도해보자.



Julien Meyer


프랑스 북동쪽에 위치한 알자스 지방의 와이너리로, 일찍부터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아황산 계열의 첨가제를 줄여 1999년에 Biodynamie 인증을 받았다. 와이너리 자체도 에코서트와 데메테르 인증을 받았고,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인 데다 다양한 토양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미네랄과 과실, 흙 맛이 다양하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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