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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Dec 27. 2021

강과 달, 배와 술

일엽편주

겨울이 오면 설렌다. 방어의 살이 차오르고, 대게들도 속이 가득 들어찬다. 겨울 별미 중 또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은 굴이다. 석화라면 고민의 여지도 없이 보모어나 스프링뱅크같은 위스키를, 굴국밥은 소주와 먹겠지만, 굴전이라면? 아무래도 역시 막걸리를 함께 곁들이게 된다. 노란 옷을 입힌 굴전을 막걸리와 함께 입 안에 머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막걸리 중에 내 픽을 고르라면? 그건 일엽편주일 것이다.

집에서 담근 내 막걸리-정확히는 부의주.

막걸리는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술이자, 가장 한국적인 술이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요즘에도 막걸리만큼은 여전히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다. 고려시대서부터도 막걸리, 그러니까 탁주는 서민들의 술이었는데, 쌀이 대량으로 들어가는 술을 소량만 떠내는 청주나 심지어는 증류를 해서 양이 훨씬 더 적어지는 소주는 당연히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집마다 내려오는 다양한 가양주 레시피들은 일제강점기의 주세법과 광복 이후의 양곡관리법을 거쳐오며 많이 사라져 갔다. 현재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개량누룩을 사용해서 만들어진다. 전통 누룩을 일본의 국을 함께 적용해 개량한 것으로, 발효가 비교적 쉽고 실패 확률이 낮아져 많이 활용되는데, 아무래도 같은 누룩을 활용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맛이 비슷해진다. 이런 막걸리들이 시장을 지배하던 차에 다양한 막걸리들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많은 소규모 양조장들이 다시 생겨나고 양주방과 같은 기록서들을 기반으로 많은 주조법이 복원되고 있다. 조선은 정말 기록에 중독된 나라였는지,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들 이외에 감사하게도 술 빚는 법이나 요리법에 관한 책들도 많아 전국의 연구가들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과거의 술들을 되살리고 있다. 이와 다르게 격동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집안 대대로 명맥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온 술들도 몇 있는데, 일엽편주가 그중 하나이다. 일엽편주는 안동 농암 고택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로, 종부에서 종부로 타고 내려와 현재 종부에 이르러 대중에게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일엽편주 - 탁주

일엽편주라는 이름에서 ‘주’는 술을 뜻하는 주가 아닌 배를 뜻하는 주(舟)다. 달이 밝던 밤, 농암 이현보가 배를 타고 술잔을 나무 뗏목에 띄워 놓고 풍류를 즐기며 퇴계 이황과 함께 나누던 시에서 내려오는 이름으로, 이름과 같이 가녀린, 하나의 잎과 같은 섬세한 맛을 낸다. 탁주, 청주, 그리고 소주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나는 탁주를 선호한다. 두 번 발효된 이양주로, 깊은 맛과 밝은 과실 맛을 동시에 낸다. 산뜻한 머스크멜론, 복숭아, 그리고 좀 많이 익은 배. 달짝지근한 요구르트 같은 향이 올라오고, 열어 놓고 시간이 좀 지나면 단향이 점점 더 진해진다. 아주 약하게 견과-마카다미아같이 약간 느끼한 견과- 향도 있다. 맛은 멜론과 복숭아, 그리고 청포도가 아닌 약간 켐벨 포도 같은 약간 달달한 과실이 많이 느껴지는 맛이다. 전반적으로 산뜻하고 달달한 맛이라 누구에게 권해도 좋을, 그런 산뜻한 맛이다. 굴전이라면 조금 더 쌀맛이 지배적인 맛의 막걸리를 골라야 하겠지만, 그래도 막걸리 중에 내 원픽은 아무래도 이 일엽편주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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