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elle May 08. 2022

살갗 위, 녹지 않는 눈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책 뒤편 한 문학평론가의 추천사를 보면, 모든 작가는 노력을 하지만, 한강은 사력을 다한다는 글이 있다. 그 이상 이 작가를 더 잘 표현하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강은 글자 한 자 한 자에  자신의 생명력을 모두 집어넣어서 조합한 그 단어들이 심해에서 어둠을 뚫고 한참을 내려가 결국 바닥에 가 닿듯 만든다. 사람들이 논에 난 피처럼 숭덩숭덩 손쉽게 죽어가던 한 시절에 대한 묘사는 마치 검고 끈적한 액체마냥 나를 덮쳐 명치가 저릿해지는 느낌까지 들며 읽었다. 책 읽는 중간중간,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제주 4·3 사건과 전국에서 일어난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에 대해 따로 찾아 읽으며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공백을 채워 넣었다. 2000년대 초반, 중학교에서 국사를 배우던 나는 왜 이런 걸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까. 외세도 아닌 동족이 민간인을 대거 학살하던 그 시절의 야만과 광기는, 왜 그렇게도 오랫동안 외면되었을까. 내가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던 그 어디쯤의 시절,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약 60여 년만이려나. 그 오랜 시절 유가족들이 가슴에 묻고 있던, 하지만 결코 희생자들과 작별할 수 없었던 그 이야기들을 한강은 검고 끈적하게 변해버린 듯한 피로 감싸고 그 위에 눈을 한 겹 더 덮어 우리에게 전해준다.


열 살이 갓 넘은 아이가 자기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언니의 손을 겨우 붙잡고 보리밭에 쌓여있던 시체들의 얼굴 위 눈을 털어 낼 때, 제 부모의 시신을 찾기 위해 더 이상 체온이 없어 얼굴에 녹지 않고 쌓인 그 눈들을 털어낼 때. 눈처럼 부서지는 파도에 갓난아기의 시신이 떠밀려 왔는지 물을 때. 그리고 끝끝내, 오랜 시간, 떠나간 사람과 작별하지 못한 사람이 식별 불가능한 백골들이 쌓인 곳을 장화를 신고 밟을 때. 작품 속 그들이 겪던 그 고통을 나는 과연 감당할 수 있는가, 그 무게감을. 이 짓눌리는 무게감을. 눈처럼 가볍고 새처럼 가벼운 사람들의 목숨에 비해 남겨진 이들이 감당하는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의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 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라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단어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