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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Feb 09. 2022

단어의 무게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y Milan Kundera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 무게가 무거운가 혹은 가벼운가. 진실한가, 아니면 그렇게 느끼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걸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가. 내가 하는 이 생각들은 실체나 의미가 있는 말일까, 아니면 그저 허공에서 메아리처럼 울려퍼지고는 덧없이 사라질 연기 같은 것일까. 어떤 것이 의미 있고, 어떤 것이 무의미할까. 모든 것이 결국 사라질 거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쿤데라는 우리에게 살아볼 기회는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으며, 그로 인한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그 덧없는 흐름 사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유의미한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밀란 쿤데라는 두 가지의 상충되는 단어들을 거듭 가져오면서 그 의미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진다. 무거움-가벼움. 사랑-비사랑. 믿음-배신.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이 단어들은 어느 면에서는 닮았고, 의외로 공존하며, 끝내는 그 개별적인 의미가 부재된다. 각자에게 그 단어와 그 감정은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 속 찰나라도 자신만의 의미가 존재한다.


“한 인생의 드라마는 항상 무거움의 은유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 어깨에 짐이 얹혔다고 말한다. 이 짐을 지고 견디거나, 또는 견디지 못하고 이것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단어집이 있어 서로를 절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같은 단어여도 누군가에겐 그 단어가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움을 줄 수도, 누군가에게는 먼지보다도 가벼울 수 있으며,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삶은 덧없이,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고, 누군가에겐 한 구심점을 중심으로 벗어나지 못할 원심력 그 자체로 느껴질 수도 있다.


“앞은 이해 가능한 거짓말이고 그 뒤로 가야 이해 불가능한 진실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쿤데라는 특정 단어가 4명의 주인공들에게 각각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서술하는데, 서로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서로 반대되도록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서로를 해석하려 할까. 단어집을 비교해가며, 추측해가면서까지 다른 이와 함께하려는 이유는 뭘까. 쿤데라가 그리는 두 남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면서도 끝없이 현실에서의 추락을 두려워하는 여자와 육체적 즐거움과 사랑은 별개라 믿지만 이 여자만큼은 ‘운명’이라 믿는 남자는 서로를 만나 서로를 끝없이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끝내 함께 한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함께하는 것은, 아니 우리가 사랑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 영원한 인지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해도, 우리는 왜 여전히 사랑을 부르짖고 혼자됨을 거부하는 걸까. 모든 역사가, 삶이 덧없어도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을 찾는다. 그 사랑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거나, 조건 없이 나에게 의지하는 약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이거나, 특정 이념을 사랑하는 거나, 혹은 무엇이든 맹렬히 사랑한다는 그 개념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거나. 인간은 덧없음 속에서 지속적으로 사랑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볍던 무겁던 덧없음 안에서의 유일한 가치가 아닐까.


“만약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랑받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런 요구 없이 타인에게 다가가 단지 그의 존재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사랑)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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