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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le Sep 12. 2021

전통주를 보면 가끔, 애달픈 마음이 든다.

하향주


전통주를 보면 가끔, 애달픈 마음이 든다.

술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사람들과 역사의 흐름을 함께 타고 오기 마련이다. 위스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위스키가 대기근과 미국의 금주령을 연달아 겪으며 대부분 역사에서 소실되어 버린 것처럼. 인간이 만들고 즐기는 이 ‘음주’라는 문화는 마시는 그 주체들에게 어떤 사회적, 환경적 이벤트가 일어나느냐에 그 명운이 크게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전통주들이 굴곡진 한국의 역사를 발맞춰 따라오다 많은 부분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싶다.


기본적으로 서양의 술이나 동양의 증류주들을 보면 꽤나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다. 나의 짧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말해보자면, 대개 우리가 자주 접하는 증류주들은 서양은 밀이나 보리를 기반으로, 동양은 쌀을 주재료로 만든다. 여기서는 감자나 옥수수를 활용한 보드카나 버번 등은 잠시 제외하도록 하자. 주재료 이외에 추구하는 느낌도 좀 다른데, 서양은 첨가재료나 후 숙성 캐스크 등으로 그 개개별의 개성을 살리는 느낌이 강하다면, 동양은 주축이 되는 어느 정도의 공통된 맛을 기반으로 각자 다른 향을 은근하게 내민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아주 짧은 경험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중국의 바이주나 일본의 쇼추, 우리나라의 안동소주를 세세히 들어 차이점을 말하자면 또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맛과 향을 추구하는 데 있어 방향성이 서양과는 조금 다름을 느껴서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서로를 드높이는 동양철학이 술까지 스며있다,라고 말하면 너무 멀리 간 걸까.



하향주는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술이다. 하향주는 따지자면 증류주는 아니고 약주지만, 꼭 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멥쌀에서 시작해 덧술로 찹쌀을 더해, 누룩과 쌀이 빚어내는 맛에서 은은한 향을 만들어내는 섬세한 매력이 있다. 하향주라는 이름도 연꽃 향기(荷香)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그 향이 특징적인데, 그마저도 강하게 코로 밀어 넣는 강한 향이 아닌, 연꽃 내음이 제 발로 살랑살랑 들어온다. 중간에는 묘한 약초 향이 아주 잠시 스치다가 혀 끝에 달짝지근한 누룩향을 남기면서 끝난다. 이 누룩 맛도 굉장히 산뜻한데, 나의 짧은 전통주 경험 중에서도 꽤 가벼운, 약간 과실과 같은 질감의 단맛이 난다. 향도 딱 그 누룩의 단 향이 난다. 그래도 이 술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마시고 난 뒤 코에 남는 연꽃 잔향이다. 향이 좋아 한 잔이 또 그다음 잔을 부르는 술로, 별다른 안주를 같이 곁들이기보다는 이 향을 즐기는 것이 나는 더 좋았다.


절로 손이 가는 술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이 술도 다른 많은 전통주들과 같이 거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고 한다. 조선 초기 때부터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로 긴 전통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어렵던 시절 대량으로 희석식 소주가 공급될 때 만들기도 어렵고 유통은 더 까다로운 전통주들이 오랜 시간 외면받았던 그 상황은 아마 어떤 주조든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주조들이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50년대부터 시작된 절미운동과 혼분식 장려운동을 거쳐오며 닫았다고 한다. 쌀이 주재료인 술을 만드는데 쌀을 못쓰게 되면 힘들어지는 게 당연지사. 그 당시엔 나라가 먹고살기 힘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2000년대에 사는 나로선 그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다. 그 시기를 거쳐오며 버틴 사람들,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전통주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사람들이 함께 합세해 요즘은 많은 술들이 다시 복원되고 있다. 이 하향주의 경우도 대표님이 경영난을 오래 겪으시면서도 우리 문화를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수십억 원대의 매각 제안을 거절해오셨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전통을 지켜오시던 분이 술담화라는 전통주 플랫폼을 만나 펀딩을 통해 하향주를 조금 더 젊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주조가 당장 문을 닫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이런 일회성 펀딩이 이 주조를 완전히 살려내진 못하겠지만, 이러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져 후대의 사람들도 우리의 술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향주


대구 달성군에 위치한 하향주가영농조합에서 빚는 약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오랜 시간 경영난을 겪었다고 한다. 연꽃향이 특징으로, 양주방 등의 문헌에 따르면 밑술은 멥쌀로 떡 등을 빚어 누룩을 섞어 만든 뒤, 찹쌀과 약초 등으로 지은 고두밥을 발효시킨 덧술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여러 글에 따르면 현재 하향주가영농조합에서 만드는 방식이 사료에서 나오는 방식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대구 지역에서 내려오는 이 방식 또한 유서 깊은 방식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그 가치가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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