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사진을 정리한다. 한 해 동안 쌓인 사진들을 외장 SSD에 백업해 두고, 4*6 포켓식 앨범을 주문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골라 약 200장 정도 인화를 맡긴다. 요즘에야 사진 찍기가 워낙 쉽다 보니 많이 쌓여서 인화할 사진을 고르는 시간이 꽤 걸린다. 2025년에는 18 GB 가까이 찍었다. 2-3일에 걸쳐 사진을 고르며 한 해를 곱씹다 보면 언제 이렇게 갔나 싶던 시간 사이 촘촘히 그리고 빼곡히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다. 그때 당시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으로 남겼었는데, 막상 연말에 다시 보면 아, 이런 일이 있었지 하는 걸 보면 사람 뇌의 용량이 다소 아쉽다.
나이가 들면서 신년을 맞이하는 방식이 다소 바뀌었다. 어릴 땐 새해가 되면 새 플래너와 일기장을 샀다. 지나간 해를 되돌아보기보다는 새로 올 해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나”를 맞이하기 위함이었을까, 플래너의 첫 페이지에는 항상 새해 목표를 큼지막하게 써 두곤 했다. 그 시절 내 일기는 다소 감정 쓰레기통 같은 느낌이었어서 연말에 다시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30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 나는 매해 쓰는 새해 목표가 나라는 사람을 크게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글자로 쓸 수 있는 굵직한 목표보다는 작은 습관들, 사소한 결심들이 나를 더 크게 변화시키고, 지나간 해의 좋은 경험과 추억들이 쌓여 나를 사람으로서 한층 더 성장시킨다. 물론 올해도 어떤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지만, 앞만 바라보기보단 뒤돌아보며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년 한 해 사진들을 정리하며 2025년과 이별을 준비한다. 인화할 사진을 고르며 다소 아쉬웠던 점은 내가 점점 사람 사진을 (나를 포함하여 함께 있는 사람도) 찍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내 사진첩은 모두 음식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이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이 누군지는 기억해도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 순간의 표정이 어땠는지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올해는 누군가와 만날 때 꼭 함께 사진을 찍어야겠다. 이제 내일이면 어렵게 골라 인화한 사진들이 도착한다. 내일 퇴근하면 따뜻한 차 한잔 내려 남편과 함께 사진을 앨범에 넣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