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날이 춥고 볕이 좋던 오늘, 이불 빨래를 돌려놓고 거실에 앉았다. 강렬하다 못해 푸른 끼가 도는듯한 새하얀 햇볕에 우리 집 묘르신은 소파 앞에 가만히 앉아 그 빛을 온전히 맞고 있었다. 빛이 눈부시게 드리우는 거실 바닥을 보고 있자니 특별한 약속 없이 느즈막히 일어나 여유를 부리는 이 일요일 아침이 새삼 감사했다. 잠시간 그 빛을 즐기다 천천히 엊그제 뜨기 시작한 모자를 꺼내 들었다.
여전히 잘하지는 못하지만 뜨개질은 내게 꽤 오랜 취미이다. 예전에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신생아 모자 뜨기 키트를 판매하고 떠진 모자를 기부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다닐 즈음 시작되어 입시 스트레스도 풀 겸 책자와 동영상을 보며 시작해 첫해부터 10년 정도 꾸준히 참여했었다. 신생아용 모자 이외엔 아무것도 뜨지 않고 뜰 줄도 몰라 매해 겨울이 되면 새롭게 배우는 기분으로 모자만 두 개씩 떴었다. 그 후 꽤 오랜 시간 뜨개질은 잊고 살았는데, 손이 근질거리던(?) 차에 인스타 타겟 광고가 떴다. 재료와 온라인 강의가 제공되는 각종 양말을 떠보는 패키지 상품이었는데, 결제 후 실험 일정에 치여 양말 한 짝을 채 완성해보지 못하고 서랍 속 엔딩을 맞았었다.
그러다 작년 말 즈음 불현듯 서랍 속 그 완성 못한 양말이 생각났다. 털실도 잔뜩 있는데 그냥 둬서 뭐 하겠나 싶어 영상을 찾아보며 서툴게 양말 한 켤레를 만들었다. 그때 얼마나 뿌듯하던지, 내 발에 꼭 맞는 울 양말을 신어보며 이 방향 저 방향 사진을 찍었다. 손발 끝이 찬 우리 부부에게 양말은 꽤나 실용적인 물건이라, 바로 남편 양말도 떴다. 남편 양말은 사이즈 예측 미스로 발목 부분이 좀 좁게 만들어졌지만, 서툴게 발목 부분을 틔워 신을 수 있게 만들면서 나름 몇 가지 응용도 할 수 있게 되고, 신다가 닳아 헤진 부분(울 100% 두꺼운 실을 썼더니 다소 내구성이 낮다) 메우는 방법도 어설프게 따라하며 조금씩 재미를 붙였다.
이번 겨울 내내 양말공장을 돌리다가 (그래봐야 세 켤레지만 초보자에겐 대단한 업적이다) 조금 질려서 새로운 걸 도전해보자 싶어 바라클라바 도안+실 세트를 구매했는데, 사용하는 기법이 양말과는 조금씩 달라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거실에서 흰색 털실을 교차시키며 모자를 뜨는데 문득 평화로워서, 아 이런 일요일도 참 좋다 싶었다.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그 느낌도, 뜨개거리에 집중해서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는 그 명상감도, 따가운 햇볕도 너무 좋았다. 물론 목과 어깨는 좀 아프다, 스트레칭해야지. 빨리 다음 주에는 완성해서 출근할 때 쓰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