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목공도 뜨개질도 해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케이크도 굽고, 가끔 술도 빚었다. 내게 허용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 시간이 내 안에 남는 게 좋았다. 완벽하진 않아도 두루 능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게으른 나를 채찍질하며 매해 목표를 하나씩 정해 내달렸다. 어떤 해에는 DELE (공인 스페인어 인증 시험)를 보고, 작년에는 WSET (와인) lv.3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로워 보였고, 일단 해볼 수 있으면 다 해봤다. 연말이 되어 앨범에 넣을 사진을 정리할 때면 아, 올해는 이걸 해냈다 하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리 한 게 없다.
되돌아보면 올해 초에는 그 어떤 목표조차 세우지 않았었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이 잦기도 했고, 먼 통근거리 탓에 지치기는 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퇴근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만 보다 잠든 것도 사실이다. 잠시 쉴까, 하며 가볍게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잘 때까지 그것만 봤다. 허송세월하다 잠드는 날들이 쌓이면서 물감이나 뜨개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결국 손에서 완전히 놓게 됐다. 분명 재작년에 양말을 몇 짝 떴었는데, 지금 다시 해보려니 유튜브를 보면서 해도 긴가민가하다. 글을 꾸준히 못 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집중하려면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별생각 없이 지내다 연말이 오니 마음이 다소 조급해진다. 현대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불안”이라는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도태될까 두려워하는 그 마음이 우리를 몰아붙여 스스로 발전하게 한다고. 되돌아보면 항상 그런 불안이 내가 성장할 수 있게끔 드라이브를 걸어준 것은 사실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런 목표도, 성과도 없이 보낸 한 해는 나를 확실한 불안으로 내몬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회사를 떠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이 있을지 같은 불안들이 줄줄이 굴비처럼 딸려왔다. 불안은 항상 다른 불안을 손잡고 같이 데려온다.
괜히 불안에 잠식되지 말고, 다시 내 페이스를 찾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좀 지칠 때도 있는 거지, 뭐 어떻게 매 해 뭘 하나?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 목표는 “퇴근 후 취미 슬럼프” 넘어서기가 될 수도 있겠다. 다시 양말도 뜨고, 글도 쓰고, 내년엔 FWS나 DELE 다음 레벨도 준비해 봐야지.
내일은 퇴근하고 남편과 바로 뛰러 나갈 계획을 세웠다. 사실 목표는 여의도한강공원에 새로 생긴 기린 생맥주바이지만, 뛰는 것에 좀 더 강조점을 두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퇴근 후 내 삶의 범위를 이것저것 늘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