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달간 커피를 끊어본 적이 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아침에 커피를 두세 잔 마셔도 잠이 깨지 않아서 카페인 민감도를 좀 올려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커피 없는 한 달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머리가 깨질 듯이 울려 매일 타이레놀을 달고 살았고, 나머지 3주는 지속적으로 멍하고 졸린 상태로 겨우 출근하며 살았다. 누가 말을 걸거나 업무 회의라도 있으면 뇌 주름 하나하나에 힘을 주고 집중해야 했다. 그래도 만 30일이 지나고 마신 커피의 효과는 확실했다. 단 한 잔만으로 정신이 또렷해지고 맑아졌다. 몸이 카페인에 즉각 반응했다. 사실 커피 없이도 정신이 맑은 수준까지 가면 좋으련만, 커피의 맛과 향을 포기할 수 없어 “중용”의 미덕을 지키며 살아가기로 했다.
결국 중독이라는 게 그런 것이다.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자극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되어 점점 더 강렬한 자극을 찾게 되는 것. 사회적으로 자주 이슈화되는 알코올중독이나 마약중독 문제, 흡연 이외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카페인이나 설탕,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든 요소는 결국 중독의 위험이 항상 있고, 우리는 자극의 밸런스를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최근 도파민 디톡스가 많이 언급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최근에 여행을 많이 다녔다. 양가 가족들과 일정을 맞추다 보면 부모님들 직업 특성상 대개 연말이나 연초에 가족 여행을 많이 가게 되는데, 남편과 둘이 가는 휴가나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가는 일정들이 우연찮게 겹쳐 지난 몇 달간 계속 해외를 다니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연차가 되냐, 너무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늘도 언니는 연차가 몇 개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드디어 16개야…”) 실상 최근 그 어떤 여행도 대단히 설레거나 즐겁지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가는 여행에는 설렘이 있지만, 반복되면 자극은 힘을 잃는다. 한동안 아무데도 가지 않고 있던 중에는 어디로든 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는데, 계속 가다 보니 거기가 거기 같아졌다. 물론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을 가는데 그게 그렇게 즐겁지 않다면, 그건 너무 가성비가 떨어지잖는가. 노는 것에도 종종 휴식이 필요하다.
이제 2월 말에 남편과 호주를 다녀오면 한동안 어디에 나갈 계획은 없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누적된 피로를 회복하며 여행 디톡스를 할 예정이다. 그렇게 참고 응축해서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값지고 즐거울까, 그 다음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
남편은 지난 한 달간 술을 끊었다. 다음 마라톤도 준비할 겸, 건강도 챙길 겸해서 2월 말까지 술을 끊었는데 피부도 좋아지고 수면의 질도 향상되었다고 한다. 두 달간 안 마시다 처음 마시는 맥주 한 모금은 어떤 맛일까, 나도 괜히 한 번 끊어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