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보니 TV 옆에 못 보던 액자 하나가 있었다. 엄마가 집 정리를 하시다가 꺼내놓으신 액자였다.
우애가 좋았던 외갓집 식구들은 돈을 모아 함께 여행가자며계를 했다.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십여 년 동안 매달 낸 돈을 모아, 2000년 유럽여행을 떠나셨다. 그 때 런던 브릿지가 보이는 잔디밭에 2열로 맞춰서 찍은 사진을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첫 해외여행여서일까? 힘겹던 IMF를 견딘 직후여서일까. 엄마의 표정이 밝았고 얼굴에 젊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남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조금은 허름한 잠바가 아쉬웠다. 여행 다녀오신다고 하면 옷이라도 하나 사서 입고 가시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물론 돈도 없었지만..
둘째외삼촌
그리고 거기에는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둘째 외삼촌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던 외삼촌의 웃음이 참 반가우면서도 때 이른 장례식에 우왕좌왕했던 일이 생각나 마음 한편이 아팠다.
요즘은 나이듬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에게 뭐가 필요한 게 있느냐 물었을 때
물건은 필요 없어 돈이 있으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네
칠십이 넘으면 몸이 불편해서 가고 싶어도 다니기가 쉽지가 않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지
고 하셨는데 올해 엄마 연세도 66살이 되었다. 갑자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초조해진다. 엄마에게 남은 여행 시간이 코로나로 발목 잡힌 것만 같다.
아버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시아버님은출장으로 해외에 자주 다니셨다. 하지만 30년 전, 시어머니가 아프시고 나서는 해외에 나가실 엄두도 못 내셨고,그 이후로 쭉 해외여행은남의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이돌아가시기 전, 어머님 직장에서 부부동반으로 보내주던 유럽여행을 어머님 건강 때문에 못 간 게 아쉽다는말씀을 하시곤 하셨단다.
5년 전,남편이 네덜란드로 면접을 보러 갈 때, 아버님과 함께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호텔 관련 기업이라 호텔을 좋은 곳으로 잡아줬기 때문에, 비행기표만 더하면 아버님과 함께 며칠 여행을 하다가 올 수도 있었다. 긴 비행에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아버님은 수십 년 만에 다시 유럽 땅을 밟을 수 있으셨다.
그 후로 고작 5년이 흘렀다. 그때 같이 보내드렸던 게 다행이다 싶게 아버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그 사이 아버님은 항암치료를 시작하셨고, 무릎이 안 좋아지셔서 걸음이 불편해지셨다. 움직임이 줄어든 탓에 부쩍 살이 붙으신 아버님 얼굴이 안타깝다.
올해 일흔넷. 또다른해외여행이 아버님에게 있을까..
친정집 TV 옆에 놓인 사진 속에는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는 분들이 계셔 마음 한편이 찡해지지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보면서
그 시절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로 한 어른들을 칭찬해드리고 싶어 졌다.
세월은 흘러가고 그때가 아니면 못 올 순간. 이제는 돈으로도 못 살 경험을 만들고 오신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