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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Jan 20. 2021

20년 전 유럽여행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워진다.

엊그제 보니 TV 옆에 못 보던 액자 하나가 있었다. 엄마가 집 정리를 하시다가 꺼내놓으신 액자였다.


우애가 좋았던 외갓집 식구들은 돈을 모아 함께 여행가자며 계를 다.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십여 년 동안 매달 낸 돈을 모아, 2000년 유럽여행을 떠나셨다. 그 때 런던 브릿지가 보이는 잔디밭에 2열로 맞춰서 찍은 사진을 보니 여러 가지 이유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해외여행여서일까? 힘겹던 IMF를 견딘 직후여서일까. 엄마의 표정이 밝았고 얼굴에 젊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남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조금은 허름한 잠바가 아쉬웠다. 여행 다녀오신다고 하면 옷이라도 하나 사서 입고 가시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그 시절 나는 그런 생각을 못 했다. 물론 돈도 없었지만..


둘째외삼촌

그리고 거기에는 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둘째 외삼촌이 환하게 웃고 계셨다. 젊은 시절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던 외삼촌의 웃음이 참 반가우면서도 때 이른 장례식에 우왕좌왕했던 일이 생각나 마음 한편이 아팠다.




요즘은 나이듬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에게 뭐가 필요한 게 있느냐 물었을 때

 물건은 필요 없어
돈이 있으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네
칠십이 넘으면 몸이 불편해서 가고 싶어도 다니기가 쉽지가 않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지

고 하셨는데 올해 엄마 연세도 66살이 되었다. 갑자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초조해진다. 엄마에게 남은 여행 시간이 코로나로 발목 잡힌 것만 같다.




아버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시아버님은 출장으로 해외에 자주 다니셨다. 하지만 30년 전, 시어머니가 아프시고 나서는 해외에 나가실 엄두도 못 내셨고, 그 이후로 쭉 해외여행은 남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어머님 직장에서 부부동반으로 보내주던 유럽여행을 어머님 건강 때문에 못 간 게 아쉽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단다.


5년 전, 남편이 네덜란드로 면접을 보러 갈 때, 아버님과 함께 가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호텔 관련 기업이라 호텔을 좋은 곳으로 잡아줬기 때문에, 비행기표만 더하면 아버님과 함께 며칠 여행을 하다가 올 수도 있었다. 긴 비행에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아버님은 수십 년 만에 다시 유럽 땅을 밟을 수 있으셨다.


그 후로 고작 5년이 흘렀다. 그때 같이 보내드렸던 게 다행이다 싶게 아버님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그 사이 아버님은 항암치료를 시작하셨고, 무릎이 안 좋아지셔서 걸음이 불편해지셨다. 움직임이 줄어든 탓에 부쩍 살이 붙으신 아버님 얼굴이 안타깝다.

올해 일흔넷. 또다른 해외여행이 아버님에게 있을까..





친정집 TV 옆에 놓인 사진 속에는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는 분들이 계셔 마음 한편이 찡해지지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보면서

그 시절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로 한 어른들을 칭찬해드리고 싶어 졌다.


 세월은 흘러가고 그때가 아니면 못 올 순간. 이제는 돈으로도 못 살 경험을 만들고 오신 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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