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차별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질문을 바꿔서 차별대우를 받아본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이 책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차별을 통해 이득은 얻는 쪽은 그게 차별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미국에서 백인 남성이 이제 더 이상 어떤 기득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투덜 되지만, 그들은 어떤 업적을 얻었을 때 피부색이 거론되지도(인종) 않고, 밤늦게 나갈 때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도(성별) 훨씬 적다.
사람들은 그 안에 있을 때 자신이 차별적 우위에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꼭 한 가지 잣대로 규정되는 건 아니다.
나는 여자고 엄마이기 때문에 주류에서 소외되지만, 한국에 사는 한국사람이고 서울에 살고 대기업을 다니기 때문에 얻는 우위들이 있다.
하지만, 이 것들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스웨덴에 갔을 때 나는 더 이상 자국민도 아니었고, 학위나 직업을 통해 인정을 받을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재직증명서만으로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소득증명이 불가능해 카드 하나도 만들기 힘들었다.
아마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도 혹은 프리랜서들도 같은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성차별
이제 남녀차별 같은 건 옛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나 대졸 취업률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가끔씩 나오는 여성 임원에 대한 기사도 그 착각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아직도 성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여자들은 수학을 기피하고, 임금이 적은 분야에 지원한다.
사실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어울리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직업군은 임금이 적다.
심지어 공정해보이는 성과주의조차 성차별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의도했건 안 했건.
누구를 거부하는가.
노 키즈존 이슈가 크게 부상했을 때가 있다. 애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가 잘못이다. 내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온 곳에서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 혹은 나의 원활한 영업을 위해 타당하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 그룹의 소수가 잘못된 행동을 한다고 그룹 전체를 차별하는 게 옳은지 반문한다. 그리고 그룹을 선정하는 게 과연 공정했나를 묻는다.
종업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폭언을 하는 중년의 남자들이 많다고 해서 40대 이상 남자 금지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힘이 있고 구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노 키즈존을 표명할 때는 아이들이 크게 매출이 안 되고 아이들 자체는 목소리를 높여 불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은연중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시설이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아이 둘과 킥보드 2개를 들고 아이들과 마을버스를 탄 적이 있다. 아직 4살인 둘째는 높은 마을버스 계단을 혼자서 잘 오르지 못한다. 출발해버릴까 두려워 거의 떠밀듯이 위로 올려놓고 킥보드 두 개를 들고 흔들리는 버스 안을 걸어갔다. 아이가 넘어질까 두렵지만 내 손에 있는 두 개의 킥보드 때문에 잡아주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과 대중교통은 정말 도전이다. 건강한 청소년, 성인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버스의 계단이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혜택을 받는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