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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Jul 31. 2021

직업병 현타 타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싶은 순간들이 있다.


나의 첫 번째 회사는 반도체 메모리를 만들었는데, 그 당시 '황의 법칙'이라고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상한 법칙을 만들어놓고 그걸 맞게 하기 위해 온 사업부가 달리고 있었다. 같은 공간 안에 메모리를 2배가 더 저장하기 위해 다들 야근을 하고 주말 출근을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입사 초기 몇 달 동안 코피가 안 난 날이 거의 없다던 선배, 365일 중에 설과 추석 당일 제외하고 363일 출근한다는 과장님.


도대체 메모리 용량이 두배가 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길래 저렇게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건지 1도 공감이 가지 않았고 대학원에 합격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두 번째 회사는 화장품 회사의 연구소였다. 기초화장품 제형팀에서 일했는데, 이 때는 그런 게 불만이었다. 기초 화장품은 효능 때문에 사는 건데 자꾸 사용감이랑 안정성만 얘기하는 것이었다.


사르르 녹듯 발린 후 부드럽고 끈적임 없이 마무리되는 아이크림이 아니라 다크 서클을 없애주는 아이크림을 만드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당시 화장품을 사게 만드는 요인 중에 극히 일부분인 사용감에 모든 사활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여 답답했다. 사실 효과를 연구하는 팀은 따로 있었고 제형팀은 거기서 찾아낸 효능 물질을 넣는 틀을 만드는 팀이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역할이기도 했다.


이런 고민은 마케팅으로 오고 나서 제품 기획 단계에서 콘셉트, 제형, 패키지, 홍보문구까지 모두 관여하면서 사라졌다.


대신 구색 맞추기용으로 내는 제품들에 대한 회의가 커졌다.

이미 세상에 제품이 많은데
우리가 또 만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는데 계속 사게 만드는 게 맞을까? 우리가 조장하는 과잉소비가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는 건 아닌가?


라는 근원적인 고민에 빠졌다.



정말 재밌게도 최근에 만난 지인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행을 다니는 지인은

물건도 아닌 돈으로 돈을 버는 게 과연 맞는 일인가,
이 일을 하면서 이만큼 월급을 받는 게 맞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의학연구소에 다니는 지인은

이미 사람들은 충분히 오래 살고 있는데 생명 연장을 위한 연구가 무슨 소용인가

라는 생각을 한단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면 쓸데없어 보일지 모르는 그 질문들이지만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톨스토이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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