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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Sep 28. 2021

엄마, 저 사람은 무슨 나라 사람이에요?

쉬운 듯 쉽지 않은 질문

요즘 첫째는 국적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유치원에서는 아무도 한국어를 못 알아들어서 불편했는데 한국인을 만나니 스웨덴에서도 한국어가 통하는 게 신기한가 보다. 그래서 아시아 사람만 보면 저 사람이 한국사람 아니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엄마, 저 사람 한국사람 같아!

아니 저 사람은 중국 사람인 거 같은데

왜?

중국어를 쓰고 있으니까

왜?

중국어를 쓰면 중국사람이야, 우린 한국사람이라서 한국어를 쓰잖아


그리고 난 뒤부터 첫째는 아시아인을 보면 유심히 말하는 걸 듣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옆에 있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엄마 저 사람은 중국사람인거 같아. 중국말하잖아. 맞지?


그런데 국적의 문제가 생각보다 단순하지가 않다.


첫째 아이네 반에는 중국인 두 명과 중국-스웨덴 혼혈 두 명이 있다. 중국 사람이야 그냥 중국사람이지만, 혼혈 친구는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지 애매하다.


릴리는 엄마는 중국, 아빠는 스웨덴 사람이다. 릴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릴리는 아빠도 스웨덴 사람이고 스웨덴어를 하니 스웨덴 사람이라고 할거 같다. 하지만, 중국인 외할머니가 데리러 와서 릴리와 중국어로 소통을 하니 스웨덴사람이라고 해야할지 중국사람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하다.



그러다가 새로운 친구가 왔는데 이름이 Benhao였다.


엄마! 유치원에 Benhao가 새로 왔는데 아빠랑 한국말로 해. 그럼 한국사람이지?


한국말로 하면 한국사람일 텐데.. 원아 명단을 보니 아이 이름도, 아빠 이름도 너무 중국식이다.


진짜 한국어로 했어?
 이름이 중국사람 같은데?


그러던 중 어제 드디어 Benhao네 아빠를 만났다. 애들이랑 이야기하는 걸 들으시더니 물었다.


 한국분이세요?


네, 한국분이셨네요. 안 그래도 아이가 한국말하신다고 했는데 이름이 너무 중국 이름이라서...


아, 조선족이라서요.
 한국 이름은 번호예요.



여기서 더 복잡해진 국적 문제. 과연 벤하오=번호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일단 첫째에게는 벤하오는 원래 한국사람인데 중국에 살고 있다가 스웨덴으로 온 거라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나라가 세 개가 뒤섞이니 첫째가 이해하기가 힘든가보다.


그래서 벤하오는 어느나라 사람이야?


그런데 나도 헷갈린다. 분명 벤하오네 아빠는 중국에서 태어났을 테고 국적도 중국일 텐데, 그런데 원래는 한국사람이고 게다가 지금은 스웨덴에 있다. 여기서 스웨덴 시민권까지 땄다면 그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해외생활이 길어지고 아이들이 외국생활을 오래 하게 되면 자신의 국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이민자들은 자신을 스웨덴인으로 인식한다. 아빠는 보스니아, 엄마는 크로아티아 출신인 즐라탄도 스웨덴에서는 스웨덴 사람이라고 인식한단다.



34살까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에서만 살아와서인지, 뒤늦은 외국생활은 기존에 당연했던 개념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국적은 언어와도 큰 관련이 있어보인다.


많이들 영어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생활을 택하지만, 언어습득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4살 때 온 지인의 아이는 처음에 스웨덴에 와서 영어 어린이집 갈 때 생각보다 적응을 잘해서 기뻐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영어단어를 섞어 쓰는 교포식 한국어를 쓰고 있다. 영어를 배우러 왔지만, 한국어를 잃어버릴까 걱정된다.




지금 다니는 대학원 같은 과에는 중국인이지만 두바이와 미국에서 오래 산 Eric이 있다. 겉모습은 중국인인데 언어는 영어가 가장 편하고, 또 국적은 부모님이 스웨덴에서 오래 사셔서 국적은 스웨덴이다. 스웨덴어는 거의 못 하고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데, 잠깐 들으니 중국어가 어눌하다. 가수 제시가 한국말할 때 느껴지는 그런 어색한 중국어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아이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Eric는 중국이랑 스웨덴 중에 국적을 택해야 할 때 바로 스웨덴을 선택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1~2년 정도밖에 살지 않기도 했고, 중국의 제재들 때문에 스웨덴 국적을 선택하는 건 너무 쉬운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동생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 스웨덴, 중국 중에서 국적을 골라야 했단다. 미국과 스웨덴은 상대적으로 훨씬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미국을 골랐단다. 아마도 부모님은 스웨덴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과 미국 국적을 가진 채 세계 각지를 돌며 살고있는 Eric과 그의 동생은 어떨까?




흔히들 헬조선이라고 이민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한국인이 살기에 한국만큼 편안한 곳도 없다. 아무리 외국에서 영주권을 따고 시민권을 따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나그네 같은 느낌이라면, 한국은 외국에 한참 있다 와도 그냥 내 나라 같은 느낌이랄까. 그 안정감이 외국 나와보면 참 든든하다.


하지만 외국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어떨까?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리고 외국도 이곳저곳을 옮겨다닌 사람들은?


역으로 한국에서 오래 산 외국인들은 한국인인가? 귀화를 했다면? 그들의 자녀는 한국인인가?


점점 다양한 케이스들이 눈에 보이면서 언어와 국적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이에게 처음 했던 말이 다시 머릿속을 맴돈다.


중국말하잖아 그러니까 중국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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