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육아휴직

아빠와 바통 터치, 이퀄리티

by 노랑연두
지금 회사 입사했던 2008년.
회사에서
나라에 주는 1년의 육아휴직을
모두 쓰는 사람은 없었다.

2009년이었나. 한 선배가 회사의 끊임없는 설득에 지쳐,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3개월 밖에 안 된 갓난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출근했다. 대외적으로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라고 홍보하던 회사의 민낯을 본 것 같아 씁쓸해했던 기억이 난다.





스웨덴은 세계에서 성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에 하나이다. 게다가 요즘은 유럽 내에서 출산율도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커리어와 육아 모두를
어떻게 잘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앞서 말한 아이 친화적인 문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뿐 아니라, 잘 정착된 육아휴직 제도가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한 아이 당 480일(1년 6개월)이다. 이 휴직은 각자 쓰지 않으면 없어지는 2달씩을 제외한 1년 2개월은 누구나 사용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반 사용을 권장한다. 그래서 많은 부모는 탄생부터 8개월까지는 엄마가, 그 이후로는 아빠가 휴직을 사용한다.


처음 스웨덴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6개월 정도. 그때만 해도 오픈 유지원에서 같은 월령 때의 보호자는 80프로 이상이 엄마였다. 그러다가 8개월을 넘어가면서 아빠의 비중이 급격히 늘면서 돌정도 된 아기의 보호자는 60프로 이상이 아빠가 된다. 실제로 아기를 낳기 전부터 대부분의 엄마들은 8개월에 복직을 생각하며, 많은 아빠들이 8개월에 육아휴직을 생각한다.


둘째는 학기가 시작하는 8월에 어린이집을 시작했다. 같은 반 아이들 모두 같이 적응기간을 시작했는데 아이가 8개월이 지나면 아빠들의 휴직이 늘어서인지 아빠가 적응을 시키는 아이가 많았다.


그때 같이 아이를 적응시키던 아이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지금 비록 스웨덴에서 어린이집 적응을 시키고 있긴 하지만 내가 곧 복직이다. 그러면 한국으로 가야 하고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라고 하자, 그녀가 던졌던 단어가 아직도 그 톤까지 생생하다.


'Equality!(동등, 평등)'


당연한 거 아니냐며, 자기도 첫째 때는 8개월 때 바로 복직하고 남편이 아이를 봤다고. 이번에는 학업상의 이유로 자기가 더 길게 쓰고 싶어서 휴직을 했기 때문에 적응기간을 자기가 할 뿐이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당연하지가 않다.

복직해서 남편이 육아 휴직하고 아이를 본다고 하면 다들 놀라워했다. 남편이 대단하다. 회사가 어디냐, 좋은 회사 다니냐는 말을 덧붙이며 말이다. 이제까지 네가 봤으니 남편이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던 스웨덴 엄마의 반응과 대조적이다.


회사의 반응도 대조적이긴 마찬가지다. 남편은 스웨덴에서 첫째 때 17개월 때부터 4개월, 둘째 때는 15개월 때부터 5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육아휴직을 쓴다고 말했을 때 매니저의 반응은 두 번 다 비슷했다.

'당연하지, 너의 권리인데, 대신 3개월 전에만 알려줘, 대체인력을 뽑아야 하니까.'

요즘에는 한국에도 남성의 육아휴직도 늘어나고 있어서 종종 소식을 듣곤 한다. 하지만 회사의 반응 또한 대조적이다.'중요한 프로젝트 시작하는데 네가 빠지면 어떻게 하냐, ' '꼭 써야 한다면 기간을 줄여라', '아기에게 필요한 건 네가 아니라 좋은 이모님이다, 너는 돈을 열심히 벌어라' 등등.



사실 육아휴직제도 자체는 스웨덴보다 한국이 잘 되어있다. 출산휴가 90일에 육아휴직이 각각 1년이니 한 아이당 주어지는 아이 출생과 육아로 받을 수 있는 휴가가 27개월인 셈이다. 이 건 스웨덴에서 만난 다른 어떤 외국인보다 긴 기간이었다. 영국은 6개월, 미국은 몇 주라던가.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남성의 육아휴직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도 출산휴가 후 바로 복직하는 회사들도 많다.


사실 스웨덴도 이렇게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나라에서 꾸준히 개인의 육아휴직을 장려했고, 불이익을 주거나 못 쓰게 하는 회사에는 강력한 처벌을 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정착된 것. 한 손에는 라테, 다른 손에는 유모차를 모는 라테 파파도 최근 일인 셈이다.



부모 모두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건 여성의 사회활동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흔해진다는 것은 곧 육아가 더 이상 여성의 문제가 아님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가사분담을 크게 차이 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신혼 때 이런 가사분담으로 참 많이 싸운다. 당신도 벌고 나도 버는데 왜 집안일은 내가 더 많이 하냐, 예전에 엄마랑 같이 살듯이 생활하면 안 된다 등등. 결국에 어떤 합의점에 다다르고 어느 정도 균등한 가사분담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가사가 2~3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초기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히고 젖병을 소독하며, 이유식을 시작하면 매끼 이유식을 하느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잔뜩 어지르는 걸 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가뜩이나 처음 해보는 육아로 버거운데 집안일까지 늘어나니 더욱 정신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남편은 도와주는 보조자에 머무를 뿐 대부분은 아내가 담당하게 된다. 아무래도 아내가 휴직 상태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고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여자가 복직을 해서
둘 다 출근을 하게 되면 어떨까?



같이 출근을 하면 당연히 육아와 가사를 나눠해야 할 것 같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되긴 쉽지가 않다. 많은 맞벌이 부부들이 어린이집을 가기 전에 식판이나 이불 등을, 퇴근 후 아이를 챙기고 집에 모자란 식자재를 챙기는 것을 아내가 주도적으로 하기 쉽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는 엄마만 찾고 남편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내가 뱃속에서 10개월을 품고 있다가 나와, 길게는 1년 넘게 휴직을 하며 아이를 보다 보면 아이 생활에 관한 지식이 급격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아이가 무엇을 먹는지, 이유식은 어떻게 만드는지, 무엇을 챙겨줘야 하는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아이의 발달에 따라 업데이트하기 쉽지 않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와의 많이 친해졌다는 것이다.


엄마만 찾던 엄마 껌딱지, 첫째는 아빠와의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아빠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남편 또한 아이가 지금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파악하면서 하루 종일 아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육아와 가사에 대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스스로 세탁기를 돌리고 기저귀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남편은 일반적인 남자에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강해서 늘 나에게 나의 꿈을 펼치라고 응원해주지만, 결혼 후 몇 년 동안 스스로 빨래를 돌리고 갠 적은 손에 꼽았다. 빨래 바구니가 터져나가도 입을 옷이 없기 전까지는 빨래의 필요성을 못 느낀 탓이다.

놀랍게도 둘째의 육아휴직이 시작되자 남편이 달라졌다. 수시로 흘리고 적히며 옷을 갈아입혀달래는 탓에 더 이상 빨래를 미루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사회참여를 높이는데 남성의 육아휴직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아이와의 관계 개선과 가사의 분담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어나면 여성인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다.


기존에는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한 휴직으로 여성의 채용을 꺼렸다면, 성별에 대한 차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육아를 분담하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남성들이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쓰길 꺼려한다. 나갈 생각하고 쓴다고 할 정도로 커리어의 불이익이 큰 탓이다. 사실 한 해를 돌아봤을 때 12개월 일한 직원과 휴직으로 6개월만 근무한 직원이 있다면, 그 6개월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으로 좋지 않으면 12개 월내 내 일한 직원에게 좋은 고과를 줄 수밖에 없다. 조직으로 봤을 때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다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할 때쯤 매니저가 얘기했다. 네가 9월부터 휴직을 쓰지만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우리는 네가 8월까지 일한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12월까지 근무했다면 어땠을지를 예상해서 평가를 한다면서 말이다. 8월까지 한 것만 제대로 평가해주는 것도 감지덕지할 판인데 하지고 않은 일까지 반영해서 평가를 하다니. 스웨덴에서는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해 휴직자에 대한 평가 방침을 그렇게 마련했고, 지키지 않을 시에 나라로부터 강한 처벌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스웨덴에서도 물론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상의 불이익이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다. 작년 말 진급 발표가 있을 때 남편은 명단에 없었다. 몇 년째 매니저로부터 시니어로 올라가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남편은 아마 휴직을 안 해서 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면 작년에는 진급을 하지 않았겠냐는 말을 했다. 남편은 지금 회사를 다니며 총 3번의 육아휴직을 했다. 아무래도 휴직을 하면 업무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퍼포먼스를 내기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차이점은 너는 휴직했으니까 고과 나쁘게 줄 거야, 진급 누락시킬 거야 라고는 못 한다는 것. 나라에서 그런 점을 면밀하게 감독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자주 사람들이 쉬면
과연 일은 누가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같은 팀의 사람이 임신 소식을 알리면 축하 대신 업무 걱정이 앞서지 않는가.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이해심이 많은가? 스웨덴 사람들이 쿨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단기 계약직(컨설턴트) 공급과 이용이 매우 특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계약직은 보조적인 업무 중심으로 적은 월급을 주며 채용된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단순 사무뿐 아니라 개발, 마케팅 등 대부분의 업무에 컨설턴트들이 있다. 휴직기간이 협의되면 인력관리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이런 컨설턴트들을 채용하여, 휴직자의 업무공백을 매우기 때문에 동료의 휴직에 관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워낙 계획을 미리서부터 세우고 세워진 일정을 중요하게 관리하는 국민성 탓에 예상치 못하게 급히 처리해야 일들이 적은 것도 휴직을 부담 없이 사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육아휴직뿐 아니라 복직한 이후에도 육아에 대한 배려는 계속된다. 아이가 있는 부모 중 하나는 80%만 일할 수 있으며, 80%에 대한 방식은 부모가 선택할 수가 있다. 나의 첫 스웨덴 친구인 Titti는 복직 후 이 제도를 활용해서 매일 3시에 퇴근해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한 남편 동료는 따로 살고 있는 아기 엄마와 2주씩 아이를 케어한다. 아이를 보는 2주는 단축근무를 하고 다른 2주는 정상근무를 하는 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남자든 여자든 아이가 아플 때나 행사가 있을 때 휴가를 쓰는 건 당연하며, 아이가 아플 때는 개인 휴가가 아닌 꼭 아이 돌봄 휴가를 써야 한다. 이 돌봄 휴가는 1년에 14일 정도 부여된다. 예전에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 간 날, 남편은 개인 휴가를 써서 이 휴가로 변경해서 다시 올리라며 반려당한 일이 있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 덕분에 스웨덴의 출산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으며, 외국에서 일하고 있던 스웨덴인들도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자국으로 돌아와 직업을 잡기도 할 정도이다. 요즘 스웨덴에서 아이 셋 있는 집도 점점 흔해지고 있으며, 아이 셋 엄마가 회사에 다니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까지.


배울 점이 많은 나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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