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두 번의 복직, 한국에서의 육아

by 노랑연두
다시 한국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

그리고 나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 모든 간판과 표지판들을 무리 없이 읽어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곳. 그래서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오는 곳.

한국이다.


도심 한복판 빌딩에 있는 사무실에 내가 일할 책상이 있는 곳. 스웨덴 생활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득하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사무실을 가서 일을 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며 일할 수가 없기에 때로는 육아 휴직한 남편이, 이제 환갑이 넘으신 엄마가 애들을 봐주신다. 신세를 지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한국에서의 직장맘의 커리어. 가끔 못 따라가는 업무에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이를 위해 늦어도 1시간 이내에는 퇴근하려고 한다. 이런 내가 열정이 없어 보이는 게 아닐까,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걱정하게 만드는 곳. 아이가 있지만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길 바라는 곳. 한국에 돌아왔다.



첫째와 함께 8개월을 스웨덴 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둘째까지 데리고 11개월을 있다가 왔을 때.

한국은 여전했다.

빠르게 바뀌어서 예전 가게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가게들이 생겼지만 그 '빠른 변화'보다 더 한국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1년 반 만에 다시 스웨덴에 갔을 때 새로 생긴 가게들은 손에 꼽았다. 마치 어제도 스웨덴에 있었던 것처럼 모든 게 그 자리에 있었다.



이 글에서 나는 스웨덴 육아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스웨덴과 한국이 제일 다른 건 속도에 대한 차이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빨리, 당장이 급한 한국.

마트에서 카드를 못 찾아 헤매고 있거나 문의사항이 있으면, 계산원이 재빠르게 다음 손님의 물건의 계산을 도와주려고 하는 곳. 지하철이 들어오면 너도나도 뛰는 곳. 좁은 골목길에서 늘 사람이 차가 갈 수 있도록 비켜주는 곳.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휴가 넣기를 마지막까지 망설이는 곳.


아침에 산 책이 오후에 도착하고, 전날 시킨 신선식품이 새벽에 현관문에 걸려있는 곳. 운전면허증 재발급을 그 자리에서 해주는 곳. 언제든 내가 원하는 때 예약 없이 병원과 은행을 갈 수 있는 곳.


급해서 힘들고 빨라서 좋은 곳. 한국.




아이와 함께 한다는 건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양발에 차고 걷는 것처럼 느린 일이다. 몇 개뿐인 계단 앞에서 유모차를 세워놓은 채 발이 묶이기도 하고 우는 아이 때문에 몇 번이고 멈춰 서야 하는 느린 일. 그러면서도 쉬지 않는 질문과 계속 떨어뜨리는 물건 덕분에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든 정신없는 일 말이다.


유모차가 내리는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는 버스기사와 승객들, 먼저 도와주고 양보해주는 사람들의 여유.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건 이런 여유인지도 모른다.


약자에 대한 기다림이, 없었으면 하는데 자꾸 나타나서 속도를 늦추는 걸림돌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어떤 시기에 대한 인정이 되는 곳. 스웨덴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스웨덴 육아에 관한 글을 마칩니다.
5월에 써놓았던 글인데, 이제야 퇴고를 마치고 다 올렸네요.

글을 썼던 당시와 바뀐 상황은, 코로나로 한참 남편이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했다는 것과 얼마 전 남편이 이직을 했다는 것이네요. 드디어 남편은 늘 노래를 부르던 3개의 회사 중 하나인 아마존으로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 스웨덴이기 때문에 스웨덴과의 인연은 계속될 듯합니다. 그리고 지금 퇴사와 입사를 위해 스웨덴에 갔는데, 새 회사에서 한국에서의 재택근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어젯밤에 전해왔습니다.

아이 둘과의 워킹맘이냐, 혹은 한국에서 둘, 스웨덴에서 둘의 이산가족이냐, 아니면 12년 반 동안 출근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 같이 스웨덴으로 가느냐..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네요.
일단 다시 한번 알아봐 달라고는 했다니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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