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연두 Nov 02. 2021

넌 왜 다른 와이프들처럼 집에 있지 못하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

회사는 여자들이 많은 곳이어서 회사 다니며 맞벌이하는 사람도 많았다. 월급이 비슷비슷했기때문에 외벌이 동료를 보며 혼자 가계를 지탱하는 게 고되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육아와 회사 업무에 버둥대는 우리와 달리, 좀 더 회사 업무에 집중할 수 있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가끔씩 회사 업무에 지칠 때 우리는 종종

그만두고 집에 있고 싶다

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일하던 사람들은 관성이 있나 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으니 말이다. 회사에서 상사, 유관부서, 협력업체들에게 시달리고 각종 이슈을 처리하다보면 돈 몇푼에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야하나 싶다가고, 막상 일도 안 하고 다른 사람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하며 산다고 생각하면 공허하고 불안할 것 같다. 일생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힘들다 말하는 와중에 성취감을 느끼는 포인트들이 힘이 되었던 탓이다.


월요일에 만난 분은 남편 주재원 발령으로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오신 분이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지면서 쓸 수 있는 휴직이 끝났다. 학업 휴직을 쓰면서 스톡홀름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런데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던 사람은 그 기억으로 일생을 열심히 산다 했던가? 막상 시작하니 또 대충할 수는 없던게지. 생각보다 과제도 많고 조모임이 많아서 휴일에도 종종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하게 된단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남편이 했던 말이 바로 저거였다.


넌 왜 다른 와이프들처럼
집에 있지 못하니?


그분도 처음 스웨덴에 왔을때  주재원 모여사는 동네에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전업주부이신 주재원 와이프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지금 생활에 충분히 만족하시는 그분들과 달리, 육아만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며 자신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휴직기간 연장을 위해 대학원을 시작하니, 그냥 회사를 그만 두지 왜 이 나이에 힘들게 대학원까지 다니는지라는 이야기를 듣곤 하셨나보다. 그러다가 집 문제로 시내를 이사 왔는데 스웨덴의 수많은 맞벌이 부부들을 만나게 되면서 훨씬 이해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나도 처음 여기 왔을 때 싫었던 게 바로

'외국인 노동자의 아내'

같은 느낌이았다.


나도 한국에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하는데, 스웨덴에 오니 1+1으로 딸려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괜한 자격지심에 외국인의 '너 뭐해?'라는 질문에 구구절절 '나는 한국에서 화장품 회사 다니는데 육아 휴직해서 온 거야' 설명하곤 했다. 그리고 가끔씩 가족모임을 할 때면 스웨덴에서 일하는 남편들끼리는 회사 얘기하고 스웨덴 얘기하는데 아내들은 따로 애들 얘기하고 있을 때가 적지 않게 있었다.

나도 회사에서는 저 사람들과 함께
업무 얘기하는 사람인데
왜 여기에서는 남자들은 바깥일, 여자들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그럴때면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아무튼 회사는 그만뒀지만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비록 한국에서 인정해주는 이름 있는 대학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고, 멈추지 않고 무엇인가를 해내고 있다는 것이,  자존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구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 집 사기-첫 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