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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Feb 16. 2022

6년 만에 보는 스웨덴어 승급(?) 시험

Sfi- c코스 national  test 후기

스웨덴 정부에서는 외국인들을 위한 스웨덴어 강좌를 운영한다. 제일 먼저 듣는 것이 Sfi(svenska för invandrare: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이다.

A, B, C, D반이 있지만 대학 졸업자들은 대부분 C반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가 B 아니면 C반부터 운영한다. 그리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과정인 만큼, 반을 올라갈 때는 국가시험을 본다.


16년 처음 왔을 때 sfi를 몇 달 동안 다녔는데 스트레스가 컸다. 학창 시절 100점을 목표로 하는 모범생이었는데 돌쟁이 아들과 함께 있으니 복습하지 못 한 채 모르는 게 쌓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육아휴직 막판에는 영어나 집중하자 하면서 아무 결실을 맺지 못 한채, 스웨덴어를 그만뒀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육아휴직으로 스웨덴에 와서 우연히 예전에 같이 sfi 다니던 분을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싱글맘으로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십 대 아들을 키우고 있던 그녀는 사실 나만큼이나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이해 못 하는 것도 많았고 모르는 단어도 많았지만 따로 복습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유창하게 스웨덴어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있던 2년 동아, 그녀는 sfi를 졸업하고 그 뒷 단계인 sva grund 2,3,4와 sva1까지 마치고 sva2를 듣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완벽하지 않아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잘하게 되는구나!


작년에 다시 스웨덴어를 시작할 때 목표는 너무 잘하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꾸준히 해내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9월 말부터 약 5개월을 다시 들은 끝에 sfi -c 시험을 치게 되었다. 여전히 따로 공부할 시간은 많지 않아서 배운 걸 잘 안다는 느낌도 자신감도 크지 않았다.


어제 본 말하기 시험은 먼저 '나의 특별한 날'에 대해서 선생님에게 말하는 걸로 시작했다.  지난주 sfi 수업시간에 아들의 생일잔치로 글쓰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썼던 문장들을 떠올려가며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중간중간에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아 버벅거리고 시제도 엉망이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긴장한 거 같다며 심호흡을 하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른 학생을 불러 '작은 도시에 사는 게 좋은지 큰 도시에 사는 게 좋은지'에 관해 함께 토론하라고 했다. 원래는 질문을 서로 읽어주고 주고받으며 대화했어야 하는데 내 짝꿍은 긴장했는지 질문지를 혼자 독백을 시작했다. 자기 얘기가 끝난 후에 가만히 있길래 결국 나도 줄줄줄 내 얘기를 하고 끝냈다. 대화를 시켰지만 서로 상호작용은 하나도 없었던 좀 이상한 시험.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한 명이 말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죠'라고 코멘트를 하더라.

그래도 짝꿍이었던 애가 내가 나간 후  '특별한 날 이야기'를 하고 나서 합격이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한 걸 봐서, 상호작용은 당락에 크게 영향이 없던 듯싶다.




오늘은 듣기-읽기-쓰기 시험을 봤다. 그래도 나라 시험이라고 핸드폰의 전원을 끈 채 교실 앞쪽에 제출하고 자리 앉아서 듣기를 시작했다.


총 5개 타입의 문제들이 있고 각 타입 별로 정확하진 않지만 3~8개 정도의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그런데, 총 듣기 시간이 무려 40분! 수능 영어 듣기 평가도 그렇게 오래 안 했던 거 같은데. 생각해보니 토익 토플은 그렇게 봤던 거 같기도 한데 괜스레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마 내가 말하는 내용을 못 알아듣고, 지문과 답에 잘 이해하지 못해서 더 길다고 느꼈던 거 같기도 하다.


듣기를 마치고 든 생각은 바로

 '망했다'

합격기준이 65점이었나 70점이었나 그랬는데 찍은 문제가 절반 가까이 되었기 때문. 12월에 연습 시험 봤을 때도 듣기가 합격선 대비 한두 문제가 모자랐는데, 이번에는 집중도 더 안 되었으니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좀 힘들어 보였다.


심지어 읽기는 60분씩 두 번을 봤다. 읽기 A 문제지를 다 풀고 내면 읽기 B 문제지를 주는 식이었는데, 그냥 한 번에 합쳐서 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하는 건지. 지문은 오토바이 취미를 가진 60대 여성에 대한 인터뷰 기사, 지금 다니는 학교(평생학습원)에 추가 예산이 생기면 어디에 쓰는 게 맞냐, 여행 시 사용한 교통수단에 관한 표, 받은 문자 메시지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었다. 다행히 읽기는 모르는 단어가 있어도 다른 부분을 보면 추론할 수 있고 십수 년간 한국식 교육을 받으며 축적된 문제풀이 실력을 발휘한 결과, 듣기보다는 훨씬 나았던 듯싶다.


사실, 제일 걱정했던 건 쓰기였다. 영어로도 글 쓰라면 버벅거리는데 스웨덴 작문이라니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지 않은가.

내가 받은 쓰기 문제는  '이사를 앞두고 도움을 청하는 친구의 메일에 답장을 쓰는 것'이었다. 다행히 친구의 메일이 예시로 나와있었고 예문에 있던 단어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구조를 그대로 따서 답메일을 작성했다. 내가 더 넣은 건 영어로 치면 'need', 'sick' 정도로 진짜 기초적인 단어들 뿐이었다. 내 마음은 단어를 다양하게 써서 멋지게 쓰고 싶은데, 막상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스펠링이나 문법이 틀릴까 봐 쓸 수가 없었다. 대신 문장 구조를 좀 다양하게 쓰려고 노력했고 문법이 틀린 데가 없는지 한번 더 확인했다.




원래 나는 시험 볼 때 시험시간을 꽉 채워서 쓰는 사람이다. 어릴 적, 시험 시간에 문제를 다 풀면 종 칠 때까지 검토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원래 헷갈리던 것들은 오래 고민해봐야 여전히 헷갈리더라. 오래 고민한다고 성적에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 것 같다. 많아봐야 한두 문제 더 맞는 정도?


학교 다닐 때야 한두 문제가 엄청 중요했지만, 스웨덴어 공부에서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저 합격이냐 불합격이냐가 중요하지. 더욱이 나는 내일 아침 대학원 수업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공부도 제대로 못 한 상황. 그래서 과감하게 읽기는 두 개다 검토 따위를 하지 않고 바로 시험지를 제출했고, 시험시간이 1시간 20분이나 남았을 때 시험장을 나올 수 있었다.


아직 결과를 받지 못한 터라 합격여부는 알 수 없다. 비록 다음번에 재시험을 보더라도 뭐 어쩔 수는 없지 생각하고 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원래 우리 반이 사람이 적어져서 없어졌다는 것. 그래서 원래 우리 반 애들 중에 아직 잘 못하는 사람은 다른 C반으로 옮겨졌고, 나처럼 시험 볼 애들은 미리 D반으로 보내졌다. 시험도 보기 전에 말이다. 그래서 만약 시험에 불합격하면, 다시 아래반으로 내려가야 한다. 하하하.


아무튼 여건상 열심히 하지도 못하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느리게나마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포기하지 않아도 계속하면
적어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는 건
확실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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