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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Nov 22. 2022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써 썼던 글

11년 전 오늘

지금은 가끔 악기를 꺼내서 만지작하는 정도이지만,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진 악기에 꽤나 열심히였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몇 개씩 하던 그 시절에 썼던 글이 페이스북에 보여서 옮겨본다.


예전에 왜 피아노 선생님이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연습하라는지, 플루트 선생님이 메트로놈은 꼭 있어야 한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메트로놈 틀어놓고 피아노 치기 시작하면 나는 맞는데 메트로놈이 제멋대로 소리 내서  꺼버리곤 했던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오케스트라 할 때도 박자를 세서 정확히 하라는 말을 잘 이해를 못 했던 거 같다. 그냥 따안딴, 따단처럼 항상 리듬을 외워서 연주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된다.


정확하지 않은 리듬이 얼마나 못생기게 들리는지, 그런 제각각인 리듬이 모여서 하는 합주가 얼마나 어수선한지.


똑같은 4 음표 4개라도 다 채워서 레가토로 연주하는지, 악센트를 넣어서 연주하는지, 스타카토로 연주하는지, 마르카토로 연주하는지..

스타카토도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미련 없이 딴! 하는지, 손잡으면 마음 흔들릴 것처럼 딴, 하는지, 가볍게 튀기는 공처럼 딴/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것도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손가락만 돌아가고 끊기지 않고 부는 것 이상의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있다는 걸 이제 악기란 걸 배운 지 20년도 넘어서 알게 되었으니... 10년이 더지나 내 나이 40이 되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음악다운 음악을 하고 있으려나..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든다. 메트로놈에 딱 맞게 일정한 박자로, 아티큘레이션도 다 지키고, 곡의 흐름에 따라 아티큘레이션의 느낌까지 다 표현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진도를 나갔다면 과연 내가 악기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을까?

매우 자명하게 내 대답은 노!이다. 자기가 느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음악처럼 들릴 정도로 하고 넘어가니까 재미있어서 계속했지, 내 귀에 '딴!'이든 '', 이든 '!?'이든 다 똑같이 들리는데 자꾸 다르다고 했으면 짜증 나서 못 했을 거 같으니 말이다.


그래서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예전에 합주할 때, 아무리 다르다고 지적해도 인지하지 못해서 자꾸 지적하면 답답하기만 했었던 기억이 있던 터라, 똑같은 지적을 남에게 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냥 이 사람에겐 지금 상태가 듣기 좋은 상태인데 느끼지도 못하는 더 좋은걸 해내라고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서..

'괜히 지가 뭔데 지적질이야!'

 이렇게 반감만 살 수도 있고.. 사실 내가 그렇게 음악적으로 뛰어나지도 않기도 하니까..



11년이 흐르고 오케스트라 못 나간지도 7년이 다 되어간다. 이젠 막상 악기를 꺼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불지만, 막상 악기를 꺼내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나마 얼마 전에 아이들 핑계로 겸사겸사 구입한 피아노가 근근이 나의 음악활동을 유지하게 도와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같은 고민은 아이들의 피아노 연습을 봐줄 때도 계속된다. 어릴 적 나처럼 쉬운 부분은 빠르게 어려운 부분은 느리게 칠 때마다, 쉼표를 충분히 쉬지 않는 걸 볼 때마다 자꾸만 지적하고 싶어 진다. 나도 악기를 다룬 지 십수 년이 지난 스무 살이 넘어서야 깨달은 것을 겨우 피아노 배운 지 3개월 차 7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어 하다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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