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카톡
적당한 거리, 아직도 남아있는 직장인 자아
어제 예전 회사 연구원분에게 카톡 하나가 왔다. 내가 연구소에서 떠나온 후에 입사해서 얼굴도 못 봤으니 최소 4년 이상 후배.
회사를 오래 다녔다는 건 때때로 힘이 되곤 한다. 조금 무리한 일정도 예전에 함께 했던 시간의 힘으로 도와줄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연구소분들도 대부분은 함께 했던 시간 덕분에 다른 마케터보다는 나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셨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같이 일했던 어떤 연구원보다 마케팅에 적대적이었다. 늘 업무에 보수적으로 접근했던 터라 같이 일하기가 힘들었던 사람이었다. 웬만하면 안 된다고 하고, 일정을 같이 못 챙겼어도 본인이 놓친 건 미안해하지 않고 상대편 잘못만 탓했다. 그러다 결국 막판에 문제가 있다며 출시 일정 연기해달라고 해서, 1년 가까이 힘겹게 끌고 오던 신제품는 출시도 미처 못 보고 퇴사했었다.
한참 신제품 때문에 자주 연락하던 시절에도 하지 않던 카톡을 보내서 무슨 내용인가 하고 봤더니, 그녀가 마케팅으로 오게 되었단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했던 마케팅 업무 관련해서 해줬던 이야기가 용기와 도움이 되어서 감사했다며 연락했단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줬을까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내가 이름을 헷갈렸나? 내가 생각한 사람이랑 다른 사람인가? 참 이상하네.. 우리가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데..
만약 내가 생각한 그녀가 맞다면, 이 직무 변경이 참 쉽지 않긴 했을 거다. 그 회사에서 마케팅의 주 업무는 안 된다는 사람 설득하러 다니고 해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그녀는 안 되는 이유를 찾는 사람이자 젤 설득하기 힘든 사람이었으니. 그녀가 아무리 심한 사람을 만난 들 그녀 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스탠스를 가진 사람을 상대하려니 "쉽지 않지? 본인 행동이 돌아봐지려나? 생각했지만, 아무 메시지도 보내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하루동안 묵힌 카톡에 직장인 자아를 꺼내 답장을 썼다. "힘든 점도 많겠지만 새롭게 알아가는 것도 많고 재밌는 부분도 있을 거라며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이미 회사 떠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아직도 나이스한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그녀에게 짧은 답장이 왔다. 그런데 답장에 있는 '**님도'라는 말을 보니 응? 싶었다. 원래 호칭을 '이름+님'으로 부르는 회사가 아니라, 회사에서 모든 호칭은 '직함+님'이었고 첫 메시지의 호칭도 역시 '직함+님'이었다. 그런데 성도 없이 이름만 넣어 '**님도'라니... 내가 자기 친구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뭐지? 그러다가 이내, 회사 떠난 마당에 직함이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냐.. 이게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 싶어 더 꼰대같은 생각이 들지 않게 그 채팅창을 안 보이게 해 놨다.
나는 뭘 기대하며 보냈던 걸까? 남편 말대로 그냥 아무런 답변도 보내지 말걸 그랬나.. 지난 일은 지나간 데로 못 본 척 흘려보내야 했었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