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과 음악이론 시간
지난주 금요일, 9월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다. 청음 수업은 토 늘 좁은 교실에 복작거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웬일인지 5명이나 수업에 빠져 7명이 단출하게 수업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 숙제 검사 및 복습으로 수업의 문을 열었다. 먼저, 지난주에 배운 리듬 연습 과제를 하나씩 연습해 보았다. 몸으로 박자를 치면서 입으로 리듬을 노래하는 식이었는데, 한참을 리듬 연습하다가 마무리될 무렵 나를 보고 "berätta historia"라는 게 아닌가? 리듬연습하다 말고 역사? 이야기?를 말하라는 게 뭔지 몰라 벙찐 채로 옆에 아스트리드를 보니 다시 한번 말해준다. 못 알아들으니, 영어로 "tell a story"란다. '응?' 갑자기 무슨 이야기라는 거지? 못 알아들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으니, 교수가 이번에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데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듬을 그냥 치지 말고, 이야기를 하듯 해야 된다는 말인가? 마지막 리듬을 보고 "마치 행진을 하는 느낌이에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라는 건가? 이러면서 지나갔었다.
나중에 수업 다 끝나고 테이블에 앉아 얘기하다가 생각나서 아스트리드에게 물었다. 리듬을 이야기하듯 표현하라는 내 추측과 달리 교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몸으로 박자를 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라는 이야기였단다. 그러니까 이야기해 보라고 할 때 나는 손으로 4분의 4박자에 맞춰 무릎, 박수, 가슴, 머리를 치며 아무 이야기나 했어야 했던 것. 이상하게 알아들은 것도 그렇지만, 알아들었어도 뻘쭘하게 그걸 했을 생각을 하니 좀 웃겼다.
다음번에 확인한 숙제는 첫 시간에도 있었던 악보 보고 음정 맞춰 부르는 숙제다. 두 번째인 만큼 조표가 생겨서 조금 더 까다롭긴 했지만, 아직은 연습으로 커버가능한 난이도였다. 이번 숙제에서 중요한 건 "기준음을 찾는 거"란다. 즉 높은 음자리표나 낮은 음자리표 옆에 조표를 보고 으뜸음을 찾으라는 것. 예를 들어 샵이 하나 파에 붙어있는 경우에는 으뜸음은 솔이다. 솔을 1번으로 잡고 거기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생각해서 음 간격을 잡아서 부를 수 있어야 한단다.
하지만 중간에 크게 점프하는 음들이 있으면 음 간격이 제멋대로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도레파솔시'라는 악보가 있다고 치고 불러보자. 그리고 피아노를 쳐서 나의 음을 확인해 보면 도약음인 '파'나 '시'가 높거나 낮게 내기 쉽다. 하지만 '레'와 '파'의 사이 음인 '미'를 마음속으로 낸 뒤에 '파'를 내면 음정이 훨씬 정확해진다. 그래서인지 이번 악보에는 "도레(미)파솔(라)시"처럼 마음속으로 내는 음이 적혀있다. 청음 시간 끝나고 점심 먹은 뒤 또 카린과 아스트리드와 같이 연습해 봤는데 좀 까다롭긴 하더라. 이제까지 연습할 때 시시해했던 나도 한 번에 제대로 음을 내기 힘들었고, 어떤 문제는 예닐곱 번을 불러도 계속 틀려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음 간격을 익힐 수 있구나 싶어 새로웠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수업 이름은 청음이지만 아직까지 시창에 가깝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청음(듣고 음을 알아맞히는 것)을 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음정을 익혀서 기본을 다져야 진짜 청음을 배우는 건가 싶긴 하다.
점심 먹고 연습도 하고 보람차게 공강을 보낸 뒤에 음악이론 수업에 들어갔다. 나름 기대했던 코드 분석해서 합주 숙제가 있던 터라, 아침 9시부터 카린, 아스트리드, 산트리나가 함께 모여 연습을 하기도 했었다. 워낙 짧은 곡이라 한 번만 하기 심심하긴 했지만, 산트리나가 3번이나 반복하잖다. 계속 점점 커지면서 클라이맥스를 줘야 한다며 처음에는 내 플루트. 아스트리드의 트럼펫, 산트리나의 피아노 반주, 두 번째는 거기에 카린이 저음으로 멜로디를 더하고, 세 번째는 산트리나까지 높은음으로 멜로디를 같이 부르며 말이다. 아무리 구성을 바꿔봤자 똑같은 곡이라 3번은 너무 쳐지는 느낌이었다. 나와 아스트리드는 2번만 하자고 했건만 산트리나가 고집을 꺾지 않는 통에 결국은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카린이 불안했다. 두 번째 연주할 때 혼자 멜로디를 해야하는데 당김음으로 시작하는 노래 시작 부분에 잘 못 들어오는 데다가 음도 저음으로 내기로 해서 멜로디가 잘 들리지 않는 것.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연주가 끝나면 한마디만 같은 코드를 연주하고 바로 처음 멜로디를 들어가야 하는데 카린이 못 들어가는 게 아닌가. 카린이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며 같은 코드를 서너번 연주하고 난 뒤에도 실퍄해서 결국 산트리나의 신호를 줬다. 살상가상으로 교실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연습할때 쳤던 디지털 피아노와 달리 소리가 엄청 컸다. 악기와 사람을 추가해서 음악이 커지게 만들겠다는 산트리나의 계획과 달리 카린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난 뒤 똑같은 곡을 산트리나가 높은음으로 멜로디를 부르니, 듣기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제일 먼저 연주했었는데, 끝나고나서 보니 우리 빼고 다른 팀은 한번 부르거나 아무리 많이 불러도 두 번이 최대긴 했다.
처음 과제를 받을 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주할지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기대에 미치진 않았다. 그나마 정년퇴직하신 희끗희끗한 머리의 아버님께서 우쿨렐레를 치고 노래하면서 합주하셨는데, 그 팀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특히 수업 끝나고 나면 강의실에서 맨날 피아노 치고 놀던 남자애들이 피아노 연주하는 걸 기대했었는데, 어려운 곡도 아닌데 처음 보는 악보처럼 계속 틀려서 실망스러웠다.
모든 팀이 연주를 마치자 다른 숙제를 확인했다. 답안지도 같이 올려주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틀린 답이 있다. 매 가을학기마다 하는 수업이라 답안지를 수정해서 올릴 법도 한데 계속 틀린 게 있는 걸 보면 답까지 맞춘 뒤에도 틀린 걸 찾아내라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된다.
교수는 또다시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Dona Nobis Pacem(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곡이었다. 지난번처럼 듣고 따라 하고 듣고 따라 하고를 반복해서 노래를 익히고 으뜸음을 찾아서 노래의 음정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새롭게 배운 건 바로 다이아토닉 화음(diatonic chord, Diatoniska ackord)이다. 아래 악보처럼 도레미파솔라시라는 “온음계”를 기준으로 음표를 한 칸씩 올려 두 개를 더 그려 3 화음을 만든 것이다.
다장조를 기준으로 할 때 피아노 흰건반(반음이 없이 온음만 쓰므로)만 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도, 파, 솔이 제일 아래음(근음)으로 해서 올린 3화음은 장조화음(major chord) 된다. 이게 지난 시간에도 배운 기본 3화음이다. 레, 미, 라를 젤 아래음으로 해서 올린 3화음은 단조화음(minor chord)되며 시를 젤 아래음으로 해서 올린 3화음은 시레파로 시와 레사이도 반음이 껴있고 레와 파도 반음이 껴있는 감화음(diminished chord)이 된다.
여기서 다장조 음계 내에서 같은 화음들을 부르는 세 가지 방법이 적혀있다. 맨 위에 C, Dm 같은 코드 이름이 있고, 중간에는 이 음계 내에서 각 화음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주는 기능적 표시가 있다. 그 아래에는 로마자로 1, 2, 3을 표시한 로마자 표기가 있다.
먼저 C, Dm 코드 같은 경우는 무슨 조표가 있던 바장조이건 사장조이건 관계없이 화음의 절댓값을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기능적 표시와 로마자 표시는 조표를 보고 으뜸음을 찾아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 조에 따라 바뀐다. 으뜸음 위로 음표를 두 개 더 그려 만든 첫 번째 화음인데, 이건 노래의 마무리를 할 때 쓰는 안정적인 화음이다. 이때 첫 번째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한 게 I도 화음이고, 안정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춰서 으뜸화음(tonic, tonika)이 되는 것이다.
이제 점점 헷갈리는 화성학의 세계로 한 발짝 다가오게 되었다. 그래도 예전에 웁살라대학 온라인 강의로 들었던 덕분에 보면 아직까지는 들으면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암기과목 외우듯 외운 덕분에 응용을 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가능하면 코드가 쓰인 악보들 피아노로 좀 쳐보려고 한다. 피아노로 코드를 치면서 노래 부를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