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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밑천이 드러나는 청음시간과 첫 리듬연습시간

음악은 넓고 방법은 다양하다.

by 노랑연두

지난 금요일 청음 시간에는 특별한 숙제가 있었다. 바로 세 개의 노래를 듣고 코드를 분석하는 것. 기초단계라서 그런지 문제로 내준 곡에는 주요 3화음 중에서 두 개, 1도와 4도 또는 1도와 5도만 쓰이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For What it´s Worth​ by Buffalo Springfield

2마디 주기로 코드가 반복되고, 곡은 마(E)장조 곡이며 주요 3화음은 E, A, B.

=> 대전제가 1도와 4도만 쓰이던지, 1도와 5도만 쓰인다고 했으므로 이 곡은 E-A이거나, E-B로 구성되어야 한다.

https://open.spotify.com/track/1qRA5BS78u3gME0loMl9AA?si=ce98af0cc9d94fa5


https://youtu.be/80_39eAx3z8?si=2Zkm_7RA8p4LWzmu



2. You Never Can Tell (Cést la vie)​ by Chuck Berry

16마디 주기로 코드가 반복되고 곡은 다(C)장조 곡이며 주요 3화음은 C, F, G이다.

https://open.spotify.com/track/6FT83pFXKhDlXDsNJFAHWz?si=ed772cbf2de14119


https://youtu.be/55_9o8LoWiw?si=E4zSgcfdrNz2zhCG


3. Silence Is Easy​ by Starsailor

4마디 주기로 코드가 반복되고, 곡은 마(E)장조 곡이며 주요 3화음은 E, A, B.

https://open.spotify.com/track/1oPuQTM7LExPzaFrF0DXzD?si=aedb30dc3d564f82

https://youtu.be/fglU5Ngd-Pk?si=jTI0paZ7hYexwIp9


노래를 들으며 코드를 알아내면 되는데 첫 번째 곡을 들어보니 신디사이저 같은 악기가 미-시-미-시를 연주하는 게 아닌가. 어차피 2마디 간격으로 반복된다 했으니 화음이 E-A 아니면 E-B인데 너무 선명하게 미(E)-시(B)가 들려서 당연히 화음이 E-B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곡부터는 나중에 해야지 하다가 카린과 아스트리드와 청음 연습 같이 할 때 처음 들어봤다. 노래를 몇 번 들으며 피아노로 코드를 쳐보니, 두 번째 곡은 CCGGCCGGGGGGGGCC, 세 번째 곡은 EEAA 같더라.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난 뒤부터는 아무리 다시 들어도 내 생각이 맞는것 같은데, 카린과 아스트리드는 계속 음악을 다시 들으며 뭐라 뭐라 얘기를 하는 거다. 스웨덴어가 이해도 못 하겠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옆에서 너무 명백한데 왜 그렇게 논의할 게 많을까 답답해하며 멍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시작해서 숙제 검사를 하는데, 내가 틀린 게 아닌가? 특히 내가 너무 자신 있게 E-B라고 말했는데, 그건 신디사이저가 미-시를 친 것일 뿐, 실제 코드는. E-G란다. 코드(화음)를 알려면 멜로디가 아니라 아래에 깔리는 근음을 들어야 한단다. 베이스가 연주하는 낮은음이나, 기타의 코드를 들어야 했는데 잘 안 들렸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카린과 아스트리드가 몇 번이고 다시 들으며 이게 맞니 저게 맞니 했던 게 사실은 제대로 숙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CCCCCCGGGGGGGGCC였단다. 와.. 나 생각보다 화음 너무 못 듣네. 고작 3개 화음 중에 하나 고르면 되는데 이렇게 다 틀린다고? 싶더라. 마지막 곡 하나는 맞추긴 했지만 플루트를 오래 불었고 오케스트라 활동도 많이 했으니 당연히 내가 음악적으로 많이 알 거라는 착각이 깨진 순간이었다. 이런 오만함이 꺾이는데 쐐기를 박은 게 바로 다니엘의 기타였다.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하는데 거기서 기타를 친다고 했었다. 교수님이 숙제 검사를 할 때 노래를 틀어주며 4명씩 피아노로 코드를 치게 할 때, 다니엘은 기타를 가져와 쳤는데 숙제로 내준 코드뿐만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기타 솔로까지 듣고 따서 연주하는 게 아닌가. 다른 거 배울 때 초등학교 때 배우던 거 한다고 못하는 애들 살짝 무시했는데, 화음에 있어서는 내가 바로 그 못하는 애들이었나 보다. 음악의 세계는 넓고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에 배운 것이 리듬훈련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강의실에는 잼배와 마림바 같은 악기 외에도 훌라후프와 빗자루 같은 다양한 물건들 놓여있었다. 스터디 테크닉을 알려주는 할머니 선생님이 우리를 반겨주셨다.


이 수업은 몸으로 리듬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는데, 음악에 몸을 동기화시키려 그러는지 노래를 틀어놓고 걸어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다. “Isn’t she lovely”에 맞춰서 앞으로 그래도 옆으로 걷고 뒤로 걸으라고 하더니, 멜로디가 안 나오는 부분에서는 제자리에 멈추라란다. 그러고 나서는 둘씩 짝을 지어서 서로를 따라 하는데, 노래 분위기가 변화하는 시점에 맞춰 걷는 방향도 바꾸고 멜로디가 안 나오는 부분에서는 멈추란다. 그때부터 열명도 넘는 어른들이 짝을 지어 강의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단순한 동작을 하지만 음악에 맞춰서 하니 신이 났다. 리듬을 타기 시작한 한 커플은 손동작까지 하며 음악에 맞춰 걸어가더라. 아무튼 그렇게 박자와 phrase를 몸으로 익혔다.


그다음에는 동그랗게 서서 손으로 박자를 치기 시작했다. 마치 술게임 마냥 한 명씩 순서대로 돌아가며 손뼉을 치기도 하고 온 방향으로 다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는 두 그룹으로 원을 만들어서 아이엠그라운드 마냥 박수를 다른 사람한테 보내기 시작했다. 원래는 짠짠하고 정박에 치다가 다른 사람한테 공을 주듯 박수를 넘기면 받은 사람이 박자에 맞춰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는데, 장난기가 가득한 애들이 짜짜짝짜짜작 이런 식으로 리듬을 넣어 보내기 시작했다. 박수를 주고받는 게 어색한 한 명은 자기한테 박수가 넘어올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다들 웃음이 가득했다. 예전에 대학교 때 오케스트라 동아리에서 회식하거나 엠티 가면 진짜 이런 게임을 많이 했더랬다. 아이엠그라운드부터 시작해서, 태권브이, 공공칠빵, 쇼크, 바니바니 등등.. 나중에는 과에서 술게임하면 시시할 정도로 술게임에 단련되어 웬만해서는 안 걸리는 경지에 왔더랬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우리 같이 본의 아니게 리듬연습하고 있었구나 싶더라.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네 히유.. 세월이 참 빠르다.



다음에는 몸으로 박자를 치는 것이었는데, 청음시간에 했듯이 무릎-손뼉-어깨-머리 순으로 손을 치면서 4분의 4박자를 쳤다. 그 와중에 2번째 박자에 쉼표라고 치라고 하면 2번째에 박수 없이 가고, 3번째 박자에 더블이라고 하면 짝짝짜짝짝하고 3번째에 어깨 두 번을 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말로 하다가 나중에는 칠판에 있는 사분음표 네 개 위에 쉼표와 8분음표 두 개가 그려진 종이를 올려놓으며 보고 치게 했다. 음표를 읽는 연습도 같이 하게 해 줄려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는 음을 손으로 표현하는 solmisation(solfege)를 배웠다. 합창노래 시간에도 알려줬던 건데, 이번에는 시도레미까지만 하고 대신 다양한 방법으로 솔페기를 연습했다. 선생님 손만 보고 음 내기, 둘씩 짝지어서 서로 손모양보고 음 내기 등등.

마지막으로는 네박자에 맞춰 한 발씩 앞으로 걸어가면서 손뼉 리듬을 듣고 네박자 뒤로 가면서 따라 치는 연습을 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앞으로 갈 때 선생님이 딴 딴 따라 딴 이라고 나머지가 박수를 치면 돌아올 때 박자를 치는 식이다. 이것도 나중에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선생님처럼 리듬을 제안했는 역할을 했는데 게임같이 재밌었다. 아이슬란드 학생은 자기 차례 때 뭔가 까다로운 리듬으로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알고 보니 4박 대신 5박을 걸어가며 리듬을 줬던 것, 재즈 피아노를 오래 쳤다더니 그런 데서 티가 나나보다.


끝나기 전에는 둥그렇게 앉아 돌아가며 오늘의 배운 점 한 문장으로 말했다. 처음에 뭐를 말하는 건지 몰라서 앞에 사람들 말하는 것 듣고 내 모국 게임 같아서 재밌었다며 막 몸으로 보여줬는데, 나중에 한 문장만 말하는 거라는 걸 전해 듣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뭐 그래도 뭐라도 말했으니 흠…


이렇게 몸으로 배워보니 우리 아이들도 이렇게 재밌게 음악을 몸으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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