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작은 공연도 공연이라고 긴장했는지 실수를...
지난주 수요일, 드디어 합창 노래 시간의 공연시험날이 밝았다. 학교 지하에 있는 svarta ladan에서 공연을 하기로 한터라, 같은 곳에서 10시부터 12시까지 마지막 연습을 하고 1시부터 공연을 하는 스케줄이었다.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해도 좋다고 했지만, 평일 낮 1시에 올 만한 사람이 없어서 따로 관객을 부르지는 않았다. 10시부터 시작된 연습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공연시험도 공연인지 곡 순서, 입장 방법 및 대형 등을 정해가며 연습을 했다. 2시간에 걸쳐서 연습을 하고 점심을 먹은 뒤 공연이 시작했는데, 채점을 하는 교수 두 명을 포함해 열명 남짓한 조촐한 관객 앞이었다.
총 6곡 중 제일 먼저 부르기로 한 것은 "라디다디다히 담다디다디다이히담다"로 시작하는 Kom!.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스웨덴식 "걷는 곡(gånglåt)"으로 일반적인 행진곡보다는 여유롭게 걸어서 산책 노래라고도 번역된다. 걷는 노래인 만큼 이 곡을 부르면서 공연장으로 들어오잖다. 공연하는 곳 입구는 학생용 키친으로 음식도 해 먹고 싸 온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이라 좀 민망할 것 같은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연습할 때부터 시선집중. 그래도 음악학교라 그런지 다 그런갑다 하는 분위기다. 키친에서 다 같이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공연장으로 들어와서 대형을 잡고 나면,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같은 곡을 다시 부르되 화음을 나눠서 부른다. 이 화음이 1주일에 한 번꼴로 한 달 반 연습한 것치고는 소리가 괜찮다. 악보도 잘 못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에 완전 문외한은 아닌가 보다.
그러고 나서 가사와 음정이 좀 까다로운 두 곡, jag går i tusen tankar와 Vara ingenting을 불렀다. 두 곡 다 멜로디와 화음을 오가는터라 음정이 어려운 데다가 스웨덴어 가사가 입에 안 붙어서 전날 피아노 치며 연습을 했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내 솔로가 있는 Regnbågen. 이 곡부터는 2줄이던 대형은 넓게 펼쳐서 1줄로 만들었다. 노래를 3파트로 나눠서 처음에는 솔로 세 명이 나눠 부르고 그다음부터는 세파트로 나눠서 돌림노래를 하는 터라 다른 소프라노들과 떨어져 알토 몇 명과 같이 서게 되었다. 연습 때 솔로 부분을 부를 때 큰 문제는 없었는데, 피아노 반주가 약간 저는 느낌이라 그거에 맞추느라 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가사를 외워서 악보를 보지 말고 부르라고 한 터라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공연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내 부분을 반복해서 부르며 입에 붙였다. 하. 지. 만. 정작 실전에서는 다른 데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음정. 긴장을 했는지 처음을 너무 높게 잡은 것. 바로 낮추긴 했는데 연습 때는 없던 실수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음 곡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전형적인 4부 합창의 형식을 띤 river song이었다. 그런데 아까 바꾼 대형대로 하면, 나 혼자 떨어져서 소프라노를 부르는 게 아닌가. 이상함을 느낀 선생님은 소프라노가 시작하자마자 멈추더니 나를 왼쪽 구석에 있던 소프라노 쪽으로 보냈다. 이곡에도 곡 후반부에 짧은 솔로가 있다. 4마디는 네 명이 같은 멜로디를 부르고 두 마디는 둘씩 나눠서 멜로디+화음으로 부르는 터라 완전 혼자서 부르는 Regnbågen에 비하면 부담이 적었다. 그런데 이 솔로를 할 때는 또 앞으로 나오라는 게 아닌가. 앞에 곡에서는 솔로 때 나갔다 제자리로 들어와서 노래 부르고, 이 곡시작하면 소프라노 쪽으로 이동했다가 곡 중간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들어오게 생긴 것. 혼자 솔로 둘 다 손들어서 하는 것도 조금 부끄러운데, 자꾸 왔다 갔다 하니 민망하더라. 그래도 이 곡에서는 내 옆에 있는 (피어싱 잔뜩 하고 두꺼운 아이라인을 그렸지만 행동이 귀여운) 소프라노아이와 함께 이동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 곡은 공연 때도 실수하지 않고 잘 마쳤다.
마지막곡은 앙골라 전통 민요에서 시작된 Wongol. 피아노 없이 목소리만으로 공연장을 꽉 채운 뒤 공연이 끝났다. 온 사람들에 인사를 하고 난 뒤 선생님 두 명은 학생들을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게 했다. 각자 돌아가면서 이 수업에서 배웠던 새로웠던 것과 감상을 말했다. 합창을 처음 해본다는 사람도 둘이나 있었는데, 합창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단다. 반면 밴드 보컬을 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늘 혼자 부르다가 이렇게 같이 악보를 보면서 부르니 다른 면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단다. 이 수업은 점수가 없이 누가 잘했는지 따질 필요 없이 통과와 미통과만 있는 수업. 합창노래 수업의 경우에는 공연 참여와 악보책에 있는 빈칸을 채워서 제출한 걸로 평가한단다. 악보책에는 곡마다 곡에 대한 설명과 감상, 마지막에는 매 수업마다 새로웠던 것, 어려웠던 것, 앞으로 어떤 게 필요할지를 적는 양식이 있다. 스웨덴에서 대학과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새로웠던 게 이런 것들이었다. 한국은 습득할 학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스웨덴은 개인의 성장, 깨달음에도 초점을 맞춘다는 것.
이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첫 앙상블(합주) 수업이 있었다. 연습-공연-새로운 수업이라니 꽤 빡센 날. 앙상블은 어떻게 수업할지 궁금했는데, 첫 시간에는 모두 다 함께 모여서 개론처럼 듣고, 그다음부터는 4개의 그룹으로 나눠서 그룹끼리 합주를 한단다. 그룹을 나누기 위해서 내 주요 악기 이름(노래 포함), 수준, 합주 경험, 기타 설명, 그 외에 할 수 있는 악기, 수준, 경험, 청음 수준 등을 묻는 질문지를 써내란다.
그걸 다 쓰고 난 뒤에는 world music이라는 단어를 크게 적더니, 5개의 음악을 들려줄 테니 어떤 나라 음악인지 추측해 보란다. 처음에 나오는 건 라틴느낌이 나는 곡이었고, 다음 곡은 레게였다. 그다음부터는 엄청 헷갈렸는데 아라비안 음악, 아프리카 음악, 아일랜드 아니면 스웨덴 음악 같은 노래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알고 보니 처음 곡은 세네갈 팝이란다. 세네갈은 축구할 때나 봤지 정말 낯선 나라인데 라틴과 아랍과 팝의 영향을 받았다는 세네갈 팝을 다 들을 줄이야. 두 번째는 앞 구르기 뒷구르기하고 봐도 레게였기 때문에 정답. 세 번째부터는 예상 밖이었는데, 바로 발칸반도 음악이라는 것. 지금 세계 지리시간도 아니고 음악수업에서 발칸반도를 듣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중에서도 불가리아 음악이란다. 그러면서 이 음악의 특징은 한마디가 9박이나 11박으로 치는 거란다. 11박의 경우 5,6으로 나눠서 세는데 그러면 쿵짝짝짝짝쿵짝짝짝짝짝쿵짝짝짝짝쿵짝짝짝짝짝 이런 느낌. 너무 낯선데. 네 번째 곡은 아프리카가 아닌 인도음악. 탬버린과 어쩌구저쩌구가 전형적인 인도음악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잘 못 알아들어서 찾아보니 인도음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녔단다.
글라이드와 즉흥적 변주가 많은 독특한 선율 진행.
3, 5, 7박 등 비정형 반복 리듬과 타악기 중심의 탈라.
보컬 장식음과 높은 음역으로 감정과 영적 느낌 강조
아일랜드 분위기라고 생각했던 마지막 음악은 스웨덴에서도 들어본 듯하더니 스웨덴 전통음악이 맞았다. 약간 브레이브 하트 같은 데서 나올 것 같은 느낌으로 왠지 전통의상 입고 춤출 것 같은 그런 곡. 이 학교에서는 이런 스웨덴 전통 음악도 가르치는데, 금요일날이면 바이올린, 기타뿐 아니라 독특한 전통 현악기를 든 아이들이 로비옆 의자에 앉아 연주하곤 하더라.
그러면서 독특한 박자들을 연습해 보기 시작했는데, 바로 7분의 8박자와 11분의 8박자. 7분의 8박자는 1231212로 카운팅을 하며 1마다 박자를 친다. 쿵.. 쿵. 쿵. 이런 박자인 셈이다. 11분의 8박자는 12121231212로 카운팅으로 해서 쿵. 쿵. 쿵.. 쿵. 쿵. 이런 식으로 치는 것. 강약중간약 강약약 같은 서양식 박자에 익숙했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런 다양한 음악을 듣고 박자를 쳐보니 강의 소개에서 합주라는 단어를 봤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게 얼마나 좁았는가를 새삼 느꼈다. 솔직히 나는 합주라고 할 때 클래식에서 하는 소나타, 4중주, 오케스트라나 기타, 베이스, 드럼등이 있는 밴드 음악만 생각했었기 때문. 그리고 지역별로 음악에 독특한 박자체계가 있다고 하니 새삼스럽게 우리나라 종묘제례악 같은 건 어떤 특징이 있는지 궁금해지더라.
아무튼 첫 시간은 이렇게 끝. 다음 주부터는 수준별로 나눈 그룹별로 앙상블 수업을 한단다. 무슨 곡을 할지 어떤 걸 배울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