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시리즈 생선은 죽은 후에도 눈을 뜨고 있다.
생선은 죽은 후에도 눈을 뜨고 있다. 얼음 위에 생선은 반듯하게 누운 것인지 옆으로 누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모조리 눈을 감지 않고 있다. 싱싱한 생선을 고르기 위해 살은 잡아당긴 고무줄처럼 탱탱한지 눌러보고, 눈이 맑고 선명한지를 보라고 한다. 죽어 눈뜨고 평가받는 생선은 뭐라 생각할까.
나는 엄한 엄마였다. 어릴 적에 가르치지 않으면 커서는 가르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여러 번 말로 해서 고쳐지지 않으면 매도 들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아이 친구와 함께 엄마가 집에 놀러 왔다. 6살쯤 보이는 남동생도 왔다. 남매는 소파에서 놀이기구 타듯 마구 뛰었다. 나는 넌지시 뛰지 말라는 말을 했다.
아이들 엄마는 나긋한 목소리로 “뛰면 안 되지”라고 말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인정사정없이 부서져라 뛰었다. 참다못해 “내려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 엄마는 가만히 있었다. 물론 그 엄마와는 더 이상 친해지지 않았다.
불쾌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저녁에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나라면 혼을 내서 뛰지 못하게 했을 텐데’ 소파를 눌러보며 꺼진 것 같아 씩씩거렸다. 앙팡 루아(enfant roi)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왕 아이’, 가족 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이를 말한다. 언제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고, 떼만 쓰면 세상에서 뭐든 허락되는 아이다.
프랑스의 아동발달 심리학자 디디에 플뢰는 좌절과 결핍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빠른 시간 안에 부모의 권위를 빼앗고 ‘폭군’이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 애는 아무도 못 말려요, 크면 나아지겠죠"라며 쉽게 항복하고 아이의 비위를 맞추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자제력 부족으로 충동적인 성인이 된다고 한다.
분노, 우울, 불안 감정과 다르게 부끄러움은 인간만의 감정이라 한다. 옳지 않은 행동이나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을 했을 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기 힘들다. 빵집에서 빵을 손으로 만질 때, 공공장소에서 뛰어다닐 때 부끄러움과 염치를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시아버지는 6.25 참전으로 훈장을 받아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전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릴 적 잠자리에서 들었던 할아버지 옛날이야기를 기억한다. ‘허허’ 거리는 웃음으로 바라보던 인자한 모습도 머릿속에 담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아버지가 무서웠었다고 말한다. 형제끼리 싸우기라도 하면 아주 무섭게 혼을 냈다고 했다. 어려운 시절 7명이나 되는 형제가 복닥거리고 살아야 하니 불편함에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형의 문제집을 물려받아 써야 하고 형이 입었던 옷을 입어야 하는 싫지만 해야 하는 일들 말이다. 형과 누나는 동생들에게 더 많이 양보도 해야 하니 서로 불만이 왜 없었겠는가. 싸우지 않기 위해 형에게 양보하고 동생에게 양보해야 하는 물고 물리는 관계 속에서 배려를 터득했을 것이다. 배려와 양보는 어려운 시절 결핍을 이겨내는 힘이었을지 모른다.
벽에 걸린 사진 속 시아버지는 감지 않고 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내 말 명심하고 있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힘든 일이 있으면 참을 ‘인’을 세 번 말하며 살라고.'
살아서는 자식들을 바르게 살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배운 그들은 그들의 자식에게 가르치고 있다. 돌아가신 분 말이 더 마음에 와닿으니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놀랄 일도 아니다. 무려 기원전 소크라테스, 플라톤 말들이 여전히 명언이고 감명받는 살아있는 말이지 않는가.
우리는 종종 연속극에서 ‘하늘에서 엄마 혹은 아빠가 지켜보고 계실 거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힘들었지만 반듯하게 살다 가신 부모님, 가까이 존경하는 분, 내 안의 눈 즉 양심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부끄럽거나 염치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부끄러움과 염치의 기준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게 해서도 안 된다.
아이들도 언젠가는 나의 사진 속 눈을 볼 것이다. 그때 ‘부끄럽지 말고 염치 있게 살라는’ 말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