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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Oct 15. 2021

린다의 시골 여자 되기

린다 시리즈 여전히 시골 인심은 변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시골 남자이고 나는 서울깍쟁이라고 하는 서울 여자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다른 둘은 마음에 간직한 추억도 달랐다. 재미로 타던 자전거와 교통수단으로 타는 자전거처럼 말이다. 시골에서 자란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종종 있다. 도시에서 별다른 추억 없이 자란 나는 재미난 추억을 가진 남편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남편은 어린 시절 학교 뒷마당에 토끼를 키우던 일, 버스가 없는 동네에서 자전거로 중학교를 다녔던 일, 과수원에서 떨어진 사과를 주워 잼을 만들었다는 일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곤 하였다. 시골에서 순박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편은 노후를 자연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다. 둘째가 대학에 입학하자 남편과 나는 적극적으로 시골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원하고 바라면 기운이 모인다고 했던가. 그해 봄, 마당 한쪽에 여러 그루 매화꽃이 활짝 핀 곳을 소개받았다. 남편은 첫눈에 마음에 들어 했다. 마당에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올라온 부추와 상추가 있고 오래전 옛 주인이 지은 허름한 집도 있는 시골 땅이었다.


 나는 서울 여자이다. 내 기억의 시골은 아침 안개 같은 뿌연 모습으로 남아 있는 시골 외할머니 댁이 전부이다. 땅을 산다는 것은 선물을 사러 다니는 아이처럼 신이 났었다. 하지만 땅을 사고 주말마다 가서 일해야 한다는 말에는 덜컥 겁이 났었다. 1년은 시골마당에 있는 벌레들과 조그만 텃밭을 가꾸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는 친환경 텃밭농사를 짓는다고 잡초와의 전쟁도 치러야 했다. 처음 만나는 시골사람과의 어색한 인사도 불편했다. 침입자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그들의 경계 태도에 숫기 없는 어린아이가 인사를 하듯 수줍고 멋쩍은 인사를 했다. 


 남편은 달랐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도 마치 여러 번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를 했다. 봄에 땅을 샀으니 당장 시골 마당에 씨를 뿌려야 했다. 시골에서 자랐어도 농사는 짓지 않아 남편에게도 농사는 어려운 수학 문제 같았다. 이웃 분들에게 땅에 퇴비주기, 땅 고르기, 모종 심는 법 농사에 필요한 것들을 배웠다. 상추, 토마토, 고추, 가지, 고구마 모종을 욕심껏 사다 심었다. 마을 이장님이 땅콩 모종도 조금 주었다. 도시 생활이 그렇듯 땅콩을 사 먹기만 했지 땅콩 모종도 처음 보았다. 심는 방법을 모르니 또 물어보아야 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물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을 즐거워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경계심이 있다. 시골 사람들의 경계심은 더 큰 것 같다. 아마도 도시 사람들보다 순수함이 더 큰 것만큼 경계심도 크지 않을까 한다. 운이 좋게도 옆집에 순박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선 나보다 6살 많은 아주머니를 언니라고 불렀다. 언니라고 부르니 어색한 마음이 없어지고 친근한 마음이 생겼다. 나는 동생이 된 것이다. 옆집과 친하게 되니 점점 마을 사람들과도 친하게 되었다. 크지 않은 시골 동네는 전부가 가족 같이 지내고 있다. 이미 그들은 그곳에서 몇십 년을 같이 지내온 가족과 같은 이웃들이다. 멀리 떨어져 사는 형제보다 더 많은 세월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1년의 시간으로 계산해 보니 멀리 사는 형제자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시골 이웃들과 지냈다. 앞으로도 그렇게 저물어 가는 시간을 이들과 함께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울 여자인 나는 처음에는 시골의 정서에 적응하기가 조금은 힘들었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명확하고 내가 손해 보는 일이 없어야 하는 팍팍한 정서에 익숙한 나 아니던가. 대가 없이  무엇이든 돕고 나누는 것에 어색했다. 어느 날 마당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다. 수도꼭지 고치는 남편 옆으로 집 앞을 지나가던 이웃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6명이 되었다. 말로 도와주고 손으로 도와주고. 그날 나는 ‘시골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간섭이라고 여겼던 도시 생각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요즘 시골 인심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시골은 정 있고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내가 꼭 닫아 놓은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열어 놓고 있었던 것이고 따뜻한 손도 내밀고 있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간섭이라고 말하는 것이 따뜻한 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말에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남편은 주중에도 시간의 여유가 되면 시골집으로 간다. 오늘 저녁에도 서로의 담에 걸쳐있는 호박도 나누고 마당에 있는 상추도 고추도 가지도 오이도 나눈다. 도움도 웃음도 나누고 걱정도 나누고 있다. 빠르게 계산해야 할 계산도 없다. 도시에서의 약삭빠른 계산은 필요하지 않다.  


 남편은 서로 나누는 관심의 마음을 원했는지 모른다. 노란색 흰색 선을 그어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아스팔트 도로처럼 메마른 인심이 아니라 사람과의 정이 느껴지는 흙냄새 사람 냄새나는 간섭이 그리웠을지 모른다. 이제는 하얀 천에 쪽 빛 염색을 하듯 내 마음에도 예쁜 시골인심이 물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아직도 산과 들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골 인심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이제 도시 여자가 아니라 시골 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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