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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Oct 08. 2021

린다의 시간의 금을  넘어서

린다 시리즈 시인 임화의 '자고 새면'처럼

 인디언들 달력 이름에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블랙프트 족은 4월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체로키 족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라고 부른다. 나는 오를라라 라코타 족의 ‘잎사귀가 인사하는 달’의 이름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린아이 한 뼘만큼 자란 쑥이 널려있을 즈음 봄바람은 포근하다. 봄이면 꽃 축제로 주말에 도로가 정체되었다고 저녁뉴스에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을 질색하는 터라 사람에 치일까 미리 겁을 먹고 꽃놀이를 마다한다. 다행히 주말에 들어가 쉴 수 있는 시골에  작은 집이 있어 동네에 피어있는 꽃으로 만족한다. 뒷산에 오르면 산 벚꽃은 숲 속을 하얗게 분칠하고 진달래는 연지 곤지 바른 듯하다. 봄바람이라도 불면 꽃비가 날리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가만히 서있다.      


 한 달 전 시골에 놀러 오고 싶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았다. 4월 중순쯤 날을 정하고 ‘쑥 캐기 봄놀이’라고 이름까지 붙이며 호들갑들이다. 그때쯤이면 뒷산에 두릅, 엄나무 순, 취나물이 나고 마당에 있는 돌나물, 오가피 순, 달래, 민들레 잎을 먹을 수 있다. 4월의 산과 들은 새 순이 머리를 내밀고 인사를 한다.     


 사실 나도 서울 토박이인지라 시골 생활하기 전 에는 땅에서 자라는 풀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듯했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땅에서 나물을 캐고 나무에서 새 순을 따서 먹는다. 데친 취나물과 오가피 순을 섞어 무쳐 먹으면 보약을 먹는 기분이다. 진달래가 피면 산은 솜털 같이 가벼운 연두색으로 변하고 가슴은 울렁거린다. 봄인가 싶더니 수선화가 지고 매화꽃이 날리고 벚꽃도 춤을 춘다. 진달래가 피면 산은 맥주 거품이 올라오듯  나무들은 연두색 물결로 일렁거린다.      

 

 시골의 봄은 매번 새롭고 경이롭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반갑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니 잡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일 것이다.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서글픔이 느껴지면 ‘벌써 내 나이가’하며 지난 세월에 한숨 쉰다. 나이에 대한 이런 기분을 잠시 제쳐 두는 것은 젊음을 같이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시간이 그어놓은 금을 뛰어넘어 잠시 옛 시절로 돌아갈 것 같은 날이다.     


 이른 아침 친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다. 미리 한 친구가 부침개를 먹자고 전화를 했다. 마당에 부추를 잘랐고 쑥과 두릅도 씻어 부추와 섞어 놓는다. 정오쯤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친구들이 벌써부터 시끄럽다. 우리의 오락부장, 잔소리 대왕도 왔다. 반가워 서로를 한번 안아보고 안부를 묻는다. 30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왔다. 짐을 풀고 뒷마당에 나와 부침개를 부친다.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부쳐지는 부침개에서 고소한 냄새와 쑥 향이 난다. 지금 우리의 만남이 그렇다.      

 

 대학 때 10명의 친구 모두가 끈끈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빈 세월이 어색하지 않다. 우리들의 시시한 이야기는 비어있던 시간을 메우고도 남았다. 내가 그렇듯 친구들의 삶도 까무러치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해직되었다 복직된 남편 이야기, 결혼 7년 만에 아이를 가진 사연, 군 생활하는 아들 이야기, 해외에 혼자 있는 남편 걱정 등 사실은 서로가 별 관련이 없는 듯하지만 50 넘게 살아오면서 비슷한 내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지 않았을까 한다.      

 

 인생이 늘 등 따습고 배가 불렀겠는가. 때로는 심한 독감으로 온몸이 쑤시고 죽을 만큼 아프듯 욱신거리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30년의 이야기를 어찌 세세히 다 끄집어낼 수 있겠는가. 그저 그렇게 흘러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찬란했던 추억은 별것도 없다. 지난날 우리의 소소한 행복했던 기억들을 가지고 이렇게 먼 길을 같이 온 것처럼 지금 햇살 아래 자글자글 부쳐 먹는 부침개가 행복한 추억으로 먼 길을 함께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시간의 금을 넘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들어가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났다.     

 

 시인 임화의 ‘자고 새면’에서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라고 썼다. 지금처럼 무사한 하루하루를 지내며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시간의 금을 넘어 즐길 수 있다면 이것도 큰 행복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봄은 짧지만 다시 올 봄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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