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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Oct 08. 2021

린다의 손뼉, 박수

린다 시리즈 주먹 말고 손을 펴서

 손을 펴고 주먹 쥐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없이 하는 동작이다. 바쁜 하루 중 힘들고 지칠 때 하늘을 향해 팔을 높이 들어 손끝을 쭉 편다.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면서 주먹을 쥐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힘내라 할 때도 주먹으로 등을 토닥이지 않는다.      


 뮤지컬 공연이 끝나고 손을 머리 위쯤 올리고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 적이 있었다. 커튼이 내려지고 조명이 꺼졌다. 공연장 관객의 감동은 한여름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는 열대아처럼 뜨거웠다. 이내 커튼은 다시 올라가고 꺼졌던 불도 켜졌다. 박수 소리와 함께 공연을 끝낸 배우들이 무대로 나와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주연 배우가 나오면 천둥 번개에 커다란 파도가 덮치는 소리 같다. 손바닥이 얼얼한 하게 박수를 쳤다. 배우들은 이 소리를 듣기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혼신을 다해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그들의 공연에 감동하고 배우들은 온몸을 휘감는듯한 손뼉 소리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삶의 이유이고 희망이 아닐는지. 주먹이 아니라 손, 손바닥의 힘이다.


 사람을 반길 때도 그렇다. 혹시 반가운 사람과 만날 때 주먹 쥐고 반가움을 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처럼 코로나 인사법은 제외하고 말이다. 친구 중에 오랜만에 만나면 언제나 활짝 핀 꽃 같은 웃음으로 팔을 길게 내밀고 열 손가락을 쭉 펴서 반기는 친구가 있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서로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잘 지냈냐는 안부를 묻는 것을 시작한다. 다음은 손을 잡는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인사지만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사소하지 않다. 가슴이 콩콩 뛴다. 청춘남녀의 만남만이 설렘일까. 오랜만에 보고 싶은 친구와 맞잡은 손바닥에서도 그렇다.        


 태어나면서부터 거칠고 두툼한 손바닥이었을까. 우리는 두부처럼 하얗고 몰랑한 아기의 손이었다. 인형 같은 작은 손에 손톱도 손마디도 있다. 이런 손이 점점 변해간다. 어릴 적에 뜨거운 부침개를 뒤집는 모습에 놀란 적이 있다. 한 손에는 뒤집기를 잡고 또 다른 손은 뜨거운 부침개에 살짝 손을 올려 날쌔게 뒤집는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뜨겁지 않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한다. 긴 세월로 손바닥은 뜨거움을 참을 만큼 두터워졌다. 나이가 들다 보면 웬만한 일에는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되듯 말이다. 세월이 마음만 단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도 단단하게 만들었다.      


 작가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처럼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뜨거운 박수, 힘든 사람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토닥이고 손, 무심한 남편이 아픈 이마에 손을 대는 따스한 손길에 얼마 전 서운함은 사라진다. 세월로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파이듯  손금은 고단했던 삶의 시간들이 비집고 들어가 더 깊어졌다. 얼굴은 성형해도 손바닥을 고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굳은살이 베긴 곳은 없는지. 주먹 쥐어 보고 손은 펴 본다. 어느 것이 더 편한지. 주먹 쥐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그렇다면 팔을 쭉 피고 손바닥을 짝짝짝 손뼉 한번 쳐보자. 건강도 기분도 좋아지고 힘이 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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