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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Oct 08. 2021

린다의 밥그릇

린다 시리즈 구석에서의 발견

 그릇은 비어 있다. 그릇 가게에서는 비어 있는 그릇을 팔지 음식을 담아서 팔지 않는다. 무엇을 담는가는 그릇을 산 사람 마음이다. 그릇을 만드는 일도 그렇다.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들도 빈 그릇을 만들어 낸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얼마 전 친정 엄마가 이사를 했다. 이삿짐 정리를 하다 싱크대 구석에서 어릴 적에 쓰던 뚜껑 있는 스텐 밥그릇과 국그릇이 눈에 띄었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오래된 그릇이었지만 여전히 반들반들했다. 나는 엄마에게 갖고 싶다 말하며 한쪽으로 밀어냈다. 엄마의 금반지보다 40년도 훌쩍 넘긴 그릇이 더 좋았다. 밥을 담던 엄마의 모습과 뜨끈한 밥을 넣어 따뜻해진 작은 밥그릇을 두 손으로 잡던 기억이 떠올랐다..      


 세상 살면서 좋은 것만 그릇에 담을 수 있을까. 살짝 태운 음식, 좋은 재료는 다 넣었는데 맛이 나지 않는 음식도 그릇에 담아내지 않는가. 사람 마음에도 담는다. 힘든 시간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일들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 마음의 그릇에는 욕심 질투 사랑 배려 슬픔 기쁨  추억 불평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다행히 타고난 그릇이 크면 욕심보다 사랑 배려가 더 많지 않을까 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타고나지 않아 부단히 노력하여 그릇을 키우려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마치 어릴 적에 입던 바지가 키가 커서 밑단을 늘려 입듯 나의 그릇을 늘려보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바다와 같은 마음은 자신 없다.        


 어떤 사람보고는 간장 종지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말한다. 느낌 그대로 속이 좁거나 마음 씀씀이가 야박한 사람을 말한다. 무엇 하나도 제대로 품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는지. 다른 사람의 진심 어린 충고에 화를 내는 사람이라 아닐까 한다. 충고를 좋아하는 사람이 뭐 그리 많겠는가. 유달리 자신의 생각만 옳다며 말하는 사람 말이다. 그릇도 작은데 거기다 단 하나 생각만 꽉 채우니 정작 필요한 것은 담을 수가 없다. 마치 여행용 작은 가방에 짐을 넣을 때처럼 꼭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하는데 짐만 되는 것을 넣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떼쓰는 아이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흔히 타고난 그릇이 있다고 말을 한다. 타고난 거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냉장고 정리하여 빈 공간을 만들듯 스스로 비우고 살면 타고난 그릇보다는 나아지질 것이다. 우리는 비우고 살아야 한다는 말하지만 나쁜 것은 덜어내고 빈자리에 좋은 것으로 채우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빈 그릇을 바라보며 다시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따뜻한 밥과 국을 담는다면 다시 온기가 도는 그릇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무엇을  담아내야 따뜻한 사람이 되는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덜어낸 것은 자꾸 돌아오려고 하고 채운 것은 달아나고 있으니 힘들 뿐이다. 구석에 있었던 오래된 그릇을 보며 “삶의 구석구석에 배울 것이 많다.”는 작가 정호승 산문집의 한 구절이 떠 올랐다. 한쪽으로 밀어두었던 그릇을 만지니 차갑다. 혹시 내 마음이 아닌지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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