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단어- 만약
밤은 어둡다. 딸의 추전으로 읽었던 ‘7년의 밤’은 깊은 밤이었다.
작가 정유정은 인물들의 심리를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을 그려낸 세밀화처럼 그려냈다. ‘머리카락 한 올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구나.’하는 느낌처럼 말이다. 독자를 세령호에 옮겨놓았다.
제목처럼 어둡고 지쳐있는 인물들을 만난다. 엿보기조차 힘든 안개 자욱한 세령호와 수목원,고립된 장소에서 사건이 일어난다. 불안과 초조가 마을을 덮는다. 거대한 댐과 세령호, 안개는 사건에 뒤엉켜있다.
삶이 그렇듯 소설도 사실과 진실사이에서 갈등한다. 매일 찾아오는 밤과 동트는 세령호 앞에서 멈출 줄 모르고 찾아오는 불안은 알 수 없는 호수의 깊이만큼 아득하다. 작가는 사실 앞에서 ‘그러나’로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을까. 주인공은 ‘만약’앞에서 후회의 몸부림을 쳤다. 잊고 싶은 최악의 순간을 벗어나려 맨발로 밤길을 헤매다 정신을 잃는다.
우리도 ‘만약에 그때 하지 않았다면, 하였다면, 갔다면’ 어두운 동굴 속의 울림처럼 말했거나 머리에서 맴돌았던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후회를 달고 오는 ‘만약’과 마주한다면 주저앉지 말고 서글픈 과거에 가두지 말기 바란다. '만약'이 삶에 영향을 줄지언정 주인공처럼 인생을 결정지으면 안 된다.
삶의 순간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듯 작가의 모든 글이 명언은 아니다. 온통 마음에 와 닿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독 다가오는 글이 있다.
책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만약’에 민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