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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벅스 Sep 13. 2020

린다의 원곡과 리메이크곡

린다 시리즈 어느날 문득

 쌀쌀맞은 여인 같은 어느 봄날이었다. TV에서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가수 박기영의 노래에 가슴 뜨거워지면서 울컥 하였다. 가수 김수희 노래를 약간의 락으로 리메이크하여 부른 ‘멍에’는 원곡과는 다른 눈이 시큰거릴 정도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박기영의 노래를 핸드폰에 저장하고 한 동안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윤항기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원곡으로 다운을 받았다. 너무 오래전 곡이라 노래에 잡음소리가 거슬리지만 원곡만이 품고 있는 매력이 있다. 리메이크곡이 원곡과 다른 감동을 줄 수도 있지만 원곡의 감동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나의 마디를 20십대와 30십대, 40십대, 50십대로 나누어 보면 각 마디마다 다르다. ‘나’는 같지만 삶의 시간은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가 원곡이고 어디부터가 리메이크곡인지 구별하기는 힘들다.      

 

 삶의 마디마다 어떻게 리메이크를 했는지 돌아본다. 아내라는 이름에 낯설어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 어색함과 감격했던 시간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의 엄마라고 불렀다.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시간을 살아서 인지 나의 원곡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거린다. 리메이크가 원작의 재구성이니 아마도 내 본연의 정신이 아내 엄마의 자리에 녹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원곡과 리메이크된 곡은 같지만 서로 다르다.      

 

 새롭게 만들어진 노래 ‘멍에’가 감동적으로 들리는 것은 작곡가와 가수의 힘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내 삶의 가수와 작곡가는 나 자신이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아내, 엄마의 삶속에 숨어있던 새로운 나의 노래를 찾으려 한다. 빛바랜 유행가가 다시 리메이크 되어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 즐겨 들었던 노래는 무엇 이었나 들춰본다. 컴퓨터에 저장된 곡들을 보니 잔잔한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노래에서 나를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좋아하는 가요와 예전 가요가 세대를 뛰어 넘고 있지만 노래의 체취와 빛깔은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리메이크된 나를 보면서 원곡의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는 무엇인가 일맥상통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리메이크된 곡이 다시 입소문을 타는 것은 예전 명성의 힘이거나 혹은 지나쳐 버린 아름다운 곡의 재발견일 것이다. 나는 오십을 넘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동화책을 읽을 때는 동화책을 같이 읽었고 청소년 문학책도 같이 읽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는 잊고 지냈던 새로운 나의 발견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원곡들 중 지나쳐버린 부분을 찾아 리메이크한다면 뜻밖의 나를 찾지 않을까. 서랍 구석에서 꺼낸 오래된 원곡에서 어설프고 순수했던 그때의 열정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즐겨 듣던 카세트 테이프에 수록된 노래를 들으며 그때 그 시절 원곡의 느낌을 담은 새로운 곡이 탄생할 수도 있다.     


  오래전 친구를 만날 때의 서먹함처럼 나는 낯설게 울리는 원곡을 들으며 노래를 부른다. 나의 원곡에는 상처의 노래도 있고 젊은 기쁨의 노래도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슨 노래를 부르던 메인 보컬은 당연히 나다. 수많은 방청객도 없고 널리 알려진 히트곡은 없지만 소소한 곡으로 나를 노래하고 있다. 나의 원곡과 리메이크된 노래를 듣는 관객이 단지 나의 가족만일 수도 있다. 박수도 가족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 누군가 나의 리메이크된 노래를 듣고 자신의 원곡을 찾는데 자극이 되었다면 들어 줄만한 곡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히트곡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곡들도 많이 있다. 색 바란 은수저를 닦으면 말끔한 색을 내듯 나는 다시 잊고 지내던 원곡을 멋지게 리메이크하려 한다. 작곡가들이 세상에 하나 뿐인 멋진 곡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듯 우리는 각자의 삶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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