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이 가고, 2017년을 맞이했던 지난 주말.
나는 원래도 해돋이를 보러 갈 정도로 새해맞이에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 등이 뒤섞여 평소와는 사뭇 다른 감정으로 연말연시를 보내고는 했었다.
하지만 이런 시즌에도 이제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TV로나마 챙겨보았던 새해 첫날의 00시 00분 카운트 다운 대신 밤 10시 취침을 선택했고,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연말연시 인사 연락도 먼저 챙겨서 하지 않았다.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굳이 '연말연시라서 연락을 해야 한다'는 그동안의 풍습 같은 것에 대해서 올 해에는 별로 그 의미를 찾지 못하였다. 이렇게 잔잔한 마음을 가지고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1년을 맞이하는 기분도 꽤 괜찮았다. 소란스럽지 않고 차분하였다.
사실 얼마 전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실존하지 않는 허구라는 궁금증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의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시점에서 연말연시를 맞이한 나는 이것이 인간들이 스스로 만들어내서 자신들끼리만 즐기고 있는 가상의 축제라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의미를 잃으면 한 해가 가는 것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론 시간은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간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늘 반복되는 새해 목표 같은 것 말이다. (새해 목표 설정에도 변화가 필요할 만큼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내가 변화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목표를 점검하고 재설정하는 '주기'이고, 둘째는 목표의 '크기'이고, 마지막은 목표에 대한 '뚜렷한 이유'이다.
그동안은 아무 의심도 없이 으레 사람들이 그리 하니까 - 새해가 되면 이루지도 못할 목표를 세우고 연말이 되면 '올해도 목표 따위 잊고 지냈군. 새해야말로 새로운 마음으로!'라는 다짐으로 매번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실패했다를 반복하길 반복한 지가 벌써 몇 년 째인지!
왜 1년마다 새해 목표랍시고 새 목표를 세워야 할까?
1년이라는 객관적인 시간의 길이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것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은 정말 제각각이다. 그런 우리가 일률적으로 1년마다 계획을 되새기고 새롭게 목표를 세우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내게 맞는 주기는 무엇일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과는 이랬다.
내가 스스로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고, 보다 큰 그림에 대해서는 3년이나 5년 주기로 보는 것만으로도 적당하다고.
넘사벽 목표를 세운다는 건
내 무덤을 내가 파고 있는 모양새랄까
목표의 크기만 해도 그랬다. 내가 새해에 세웠던 목표들을 되돌아보면, '토익 만점' 이라던가 '매일 운동하기', '00 시험 합격', '자격증 따기', '1년에 책 00권 읽기' 등등... 다들 많이 해보셨을 그런 목표들.
당시 토익이라면 질색을 했던 내가, 운동은 숨쉬기 운동밖에 안 했던 내가 '이왕 목표 세우는 거 크게 세워야지!' 하며 세웠던 무모한 목표들. 지금도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나이지만, 목표는 현실적으로 쪼개서 세우는 것이 더 좋다는 주의로 바뀌고 있다. 무턱대고 '보기에 화려하고 동기부여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넘사벽 목표를 세우는 건 마치 내가 열심히 땅을 파놓고 스스로에게 들어가서 편안히 누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지난 10년 간 열심히 삽질을 하면서 깨달은 진리였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목표를 잘게 쪼개어 실천 가능한 목표부터 실천하는 것'을 나도 작년부터 해오고 있는데, 이것을 꾸준히 하는 것도 사실은 꽤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고려하여야 한다.
목표의 크기도 크기거니와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른 채,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사회가 붙여주는 꼬리표를 달고 싶어서 하는지도 모른 채' 설정했던 내 목표들.
나는 왜 이것을 하기를 원하는가?
이를 통해서 내가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왜(WHY)'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깊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이 목표를 실천하기를 원하는지, 이를 통해서 내가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취직&토익'의 경우는 이러했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할 당시 나도 친구들과 함께 토익 고득점을 위해 늘 목표를 세웠고, 도서관에 앉아있으려 애썼지만 단순히 '취직'을 위한 토익 고득점 획득에 대한 내 목표와 실행은 늘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연히 동기 부여가 될 리가 없었다. 날고 기는 모든 대한민국 청년들이 다 같이 매달리는 '고득점 목표'에 영어라면 지긋지긋했던 나도 저기에 매달려야만 취업 준비를 '잘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정말로 내가 원하던(이라 쓰고 남들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했을 때에 영어 성적은 (운이 좋게도)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운동'의 경우도 그렇다. 나는 '매일 혹은 매주 조깅해야지!'라는 나의 새해 다짐이 마치 이미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착각을 하며 자기 위안을 해왔던 것을 어느덧 깨달았다. 생각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지만, 나는 내 몸을 내 건강을 이렇게 걱정하고 신경 쓰고 있다는 위안인 것이다. 내가 진짜 해야 했던 일은 정말로 건강에 나쁜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고치고, 집 밖을 나가지 않더라도 실내 스트레칭이라도 시작하는 일이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작년의 내 실천 목표 중 하나는 '10시 취침'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모범스러운 생활을 위한 세부 목표 중 하나였다. 최대한 간결하게 표시하기 위해서 습관 형성을 도와주는 알람 어플에 저렇게 저장해놓고 9시마다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 두었다. 처음엔 목표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두 마디는 점점 나를 짜증 나게 했다. 어느 날 9시쯤 저 알람이 떴을 때 마음속에서 나는 짜증 가득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잠깐만, 나 지금 할 일이 많다고.'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난 후에는 '이거 왜 해야 되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 목표는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끼며 그 목표를 리스트에서 지워버렸다.
이 사소해 보이는 목표 하나조차도 명백한 이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명백한 이유를 잊지 않도록 함께 잘 기록해 두어야 했다. 그래서 새해 나의 '10시 취침' 목표는 이렇게 업데이트되어 리스트에 다시 추가되었다.
'상쾌한 5시 기상을 위한 10시 취침 :)'
이렇게 나의 새해 목표는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었다.
혹시 당신에게도 연말연시에 이런 매너리즘이 찾아온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냥 살아졌던 시간들이었는지, 정말 내 진심을 다한 시간들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