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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06. 2018

유럽행 출발 1시간 전에
도착하면 일어나는 일

   

우여곡절 끝에(?) 출발 3일 전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드디어 출발일이 다가왔다.

출발 시각은 오전 10시 55분.

아침 시간대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시간대였다.

2시간 전 도착과 공항까지의 이동 시간, 비가 오는 날씨를 고려해서 7시 30분에는 집에서 나가야지 생각은 했더랬다. 

한국에 와서도 계속 시차 적응을 못하고 거의 독일 시차로 지냈던 터라 새벽에 잠도 잘 오지 않으니 밤을 새우고 가겠구나 생각되어 별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간의 피로가 쌓였던 걸까.

난 어느 순간 기절해있었고, 빗소리에 잠이 일찍 깬 동생이 날 깨운 시간은 이미 나갔어야 하는 시간.

7시 30분.


'여권, 티켓, 독일 집 열쇠... 필요한 거 다 챙겼겠지?'


왠지 이번에는 잊은 물건 없이 다 챙긴 것 같이 자신감이 넘쳤는데 아뿔싸.

제일 중요한 게 없었다.

바로 내 정신머리였다.


나는 나갔어야 하는 시간에 일어났음에도 여유롭게 샤워를 하고, 사람들의 눈을 위해 피부 메이크업 정도는 해주고, 캐리어 무게가 비길래 라면도 몇 개 더 넣어주고... 그러고 있었다.

내가 정신머리를 두고 왔다는 걸 깨달은 건 지하철을 타기 전 도착 예상 시간을 검색했을 때였다.


나는 별로 안 늦은 것 같았는데 도착 시간이 이상하게 너무 촉박했다. 

10시 55분에 비행기가 출발하는데, 내가 인천공항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10시.

음... 뭘까?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

.

.

그랬다. 

나는 잠결에 내가 나갔어야 하는 시간을 8시 30분으로 착각하고 준비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휴

(말잇못...) 



보통 리무진을 탔지만 이번에는 비가 오니 지하철을 타려고 생각해 두었기에 일단은 지하철을 탔다.

한동안은 정신을 덜 차린 채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그래도 탈 수는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지하철에서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인천공항 제2터미널의 안내 방송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조금 늦게 탄 모녀가 앞에 앉았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살짝 엿들어보니 이들도 나처럼 늦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인 것 같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딸로 보이는 여자분은 이것저것 검색해보고 전화를 하더니 비장하게 어머니에게 지시를 내렸다.




"수속이 한 시간 전까지니까 못 탈 수도 있겠는데?

 난 일단 와이파이를 대여해야 하니까 엄마는 알아서 무조건 OO으로 가."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여유롭던 내 발등에도 불씨가 타오르는 듯했다.






'잠깐만... 탑승 수속 한 시간 전 마감?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나 이거 진짜 못 탈 수도 있겠는데?'






부랴부랴 폴란드 항공 홈페이지를 검색했다. 왜 급할 때는 뭐든지 꼬이는지. 인터넷은 더 느려진 것 같았고, 폴란드 항공의 연락처는 홈페이지에서 보이지 않았다. 모바일이라 그런가 피씨 버전으로도 바꿔보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네이버 검색 결과에 나오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이미 시간은 9시 30분을 넘은 상황. 갑자기 다른 항공사에서 일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친구는 예약한 사이트가 어디냐고 물었다. 현대카드 프리비아에서 했다고 하자 항공사에 전화하는 것보다 예약한 사이트에 전화를 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늘 저렴한 가격을 위해서 외국 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했는데 이번에 웬일로 한국 대행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부랴부랴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상담원은 시간이 너무 촉박해 못 탄다고 생각하셔야 될 거라고 하며 우선은 가능 여부와 못 탈 경우의 티켓 변경이나 환불을 위해서 상황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네이버에서 열심히 '비행기 늦었을 때'를 검색했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속 시원한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예전에 일본에서 공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비즈니스용 루트로(친구가 예매한 좌석은 이코노미) 직원들을 대동하고 달려서 비행기를 겨우 탔다던 친구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나도 그런 단편 영화를 찍는 게 아닐까. 어떻게 사정을 하면 들어줄까. 샤워를 왜 했을까. 지하철 말고 비싸도 택시를 탔어야 했는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상담원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전해 들은 내용은 절망적이었다.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탑승 수속이 끝나기 때문에 이미 내가 공항역에 도착하는 시점에 수속이 끝나서 나는 탑승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담원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수속을 해줘서 들어간다고 해도 짐 검사, 출입국 검사(자동이긴 하지만)를 한 후 탑승동 이동까지 해야 한다면 못해도 20분~30분은 더 걸릴 것이었다. 탑승동을 이동해서도 또 한참 걸어야 할 수도 있다. 애써서 간다고 해도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꽤 있었던 폴란드 항공사에서 날 기다려줄지 의문이었다.

그럼 온라인 체크인은 해두었으니 큰 짐은 집으로 택배를 보내고 기내 수하물만 가지고 타는 것도 안되냐고 물었는데 그것도 안된다고 했다. 이 부분은 좀 납득이 안 갔지만 일단 알았다고 했다. 하긴 택배를 찾아 접수하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럼 남은 것은 티켓 변경과 환불.

일단은 내 티켓은 변경도 불가였다.

변경을 하려면 출발 1시간 전까지 가능한데 이미 내가 통화하는 시간에는 출발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오 마이 갓.



그럼 환불은?

환불은 가능하지만 미리 체크인을 해둔지라 바로 환불이 안되고 폴란드 항공 카운터에 가서 체크인을 풀어달라고 이야기해야 환불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환불을 한다고 하면 각종 수수료들 때문에 기껏 저렴하게 구매한 티켓이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



그럴 순 없었다.

내가 이번 비행기표를 저렴하게 구매하려고 며칠간 엄청난 발품 아닌 손품을 판 시간이 얼만데.

이대로 이 표를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래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혹시, 혹시 모르는 거잖아?





우선 카운터에 가야 하니 일단 나중에 연락을 하겠노라, 전화를 끊었다.



지하철은 정확히 10시에 도착했다.

이제는 무조건 빠르게 가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홀몸으로 26kg에 육박하는 대형 캐리어와 소형 캐리어와 백팩을 들고 무작정 뛸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터미널을 향해 가던 도중 만난 무빙 워크. 

무빙 워크를 뛰면 더 빠르기야 하겠지만 앞에 있는 사람들에 길이 막힐 수도 있었다.

그러다 시선을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길. 

아무도 걷지 않는 무빙 워크 옆 길.

그래, 여기다.

그 허허벌판을 나는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걸 달래며 폴란드 항공사의 체크인 카운터를 찾는데 이건 또 왜 이렇게 한눈에 안 들어오는지. 

수속이 끝나서 게이트 정보도 없어졌나? 생각이 들 무렵, 간신히 들어온 폴란드 항공의 체크인 카운터는 H.




'H, H, H, H'




마음속으로 H만 되뇌며 빛의 속도  - 남이 보면 거북이 속도, 내가 볼 땐 빛의 속도 - 로 H 카운터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 직원들이 있었다. 모든 수속이 끝나고 텅 빈 카운터에 후다닥 달려들어가 늦었다고 SOS를 쳤다. 

안 해주면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온갖 상상 및 걱정을 했던 것과는 달리 카운터 직원분은 "혹시 OOO 씨?"하고 내 이름을 먼저 부르며 황급히 수속을 도와주었다. 




"게이트는 출입국 심사 통과하시면 메인동에 있고 시간이 없으니 바로 게이트로 가주세요."




그렇게 수속이 끝난 시간이 10시 10분경. 

보딩 시간은 10시 25분.

나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마일리지 적립도 잊고 짐을 맡긴 채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탑승동이 메인이라 열차를 한 번 더 타지 않아도 되었다. 

짐 검사를 마치고, 자동 출입국 검사에서 지문을 등록한 손가락에 붕대가 감겨 있어서 살짝 당황했다가 반대쪽 손가락으로 지문 검사를 통과하고, 21번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21번 게이트는 메인동에 있긴 해도 건물의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을 지어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늘 일찍 도착해서 라운지에서 신라면 컵라면 하나 먹고 가는 게 낙이었는데 라운지는커녕 비행기를 놓칠 뻔하다니.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파서 당 보충을 하려고 게이트 바로 옆에 있는 잠바 주스에서 딸기 스무디를 시켰는데 길어만 보였던 줄이 금방 줄어들어 있었고 승무원들이 승객들의 탑승을 재촉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이걸 또 원샷하다가 뒷골이 당겨서 어질어질.

(저처럼 급하게 드실 분들은 주스 드세요 주스!ㅠㅠ)





어쨌든 다행히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잘 탄 나는 경유하던 바르샤바 공항 라운지에서 1시간 지연되고 있는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보딩 타임을 제 시각에 못봐서 또 못탈 뻔 했다. (비행기가 연착될 경우에는 연착이 많이 되었더라도 30분~1시간 전에 게이트에 가서 기다리시는 것을 추천합니다.ㅠㅠ) 8시 출발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분명 전광판에는 'Delay 21:00'라고 되있었고 나름 신경써서 전광판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보딩 중이라는 상태표시가 떴다. 부랴부랴 5번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는데 게이트는 왜일렇게 먼 것이며, 가는 도중 전광판을 보니 뜨는 'Final call' 표시!

당황해서 종종 걸음을 뛰기 시작하다 어떤 남직원이 내 이름을 들고 서있는 것을 발견, 내가 죄인이오 라고 자수(?)를 하고 함께 탑승구까지 종종 걸음을 걸었다. (어색어색) 다행히 무사골인. (나때문에 좀 더 기다려야 했던 승객분들께 죄송...ㅠㅠ)





비행기를 한 두 번 타본 것도 아닌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황당하면서도 또 이 경험을 통해서 많은 걸 배웠다 싶기도 하다. 오히려 처음 타는 게 아니라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서 더 실수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처음 타시는 분들도, 많이 타신 분들도 항상 여유 있게 가시고 혹시나 늦잠을 주무셨다면 아래 내용을 미리 알아두시길!





-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챙겨야 할 가장 중요한 건 침착하고 맑은 정신 상태 (ㅠㅠ...)
- 늦잠을 잤을 때는 일단 예약한 사이트나 항공사에 전화해서 사정을 설명해 둔다. 
- 이 경우 예약한 사이트에 전화하는 것이 항공사보다 빠르다.
- 대행사를 통하면 수수료가 붙어서 선호하지 않았었는데, 해외 장거리 비행이 익숙지 않거나 변수가 있는 스케줄 (이른 시간 대) 일 경우 한국 대행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유사시 처리가 편하고 빠르다.
- 변경을 하고 싶다면 비행기 출발 1시간 전에 서둘러서 해야 한다.
- 환불을 하면 항공사 환불 수수료 + 대행사 환불 수수료가 발생하며 (적지 않음) 이미 해당 티켓을 발권한 발권 대행 수수료 값은 환불되지 않는다.
- 온라인 체크인은 항상 해두도록 한다. (이번에 온라인 체크인을 해서 체크인 시간은 세이브한 것 같다.)
- 이동하면서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를 미리 알아보려면 아래 인천공항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볼 수 있다.
  https://www.airport.kr/ap/ko/dep/depPasSchList.do
- 혹시나 대행 사이트나 항공사 콜센터에서 안된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면 포기하지 말고 카운터로 뛰어가 보자!
- 경유 중 비행기가 지연되더라도 여유부리지 말고 게이트에 미리 나가있을 것!







*비행기표 예매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lifeisllll.blog.me/221243804964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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