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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y 15. 2018

저 올해는 성장 안 합니다.

성장을 거부할 권리



오늘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한 책에 관련된 글을 하나 보았다. 오늘 마주하게 된 메시지는 내가 한창 회사에 다닐 때 했던 생각과 많이 닮아 있었다. 과거의 나로서는 그 내용에 공감을 많이 하면서도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묘하게 계속 반감이 일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우리가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해서 CEO가 아닌 것이 아니다.

당신에겐 단 하나뿐인 당신의 인생과 그를 경영할 책임이 있으니까.





그래서 책의 제목도 '나는 내 인생의 CEO입니다.'였다.




"일할 땐 자신은 1인 기업가로 회사는 고객으로 생각해 주체성을 키워도 좋고"
"퇴근 후엔 운동이나 공부로 경험과 역량을 쌓아도 좋아요." 





언제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밥 먹듯 했던 야근에 퇴근 후 운동이나 공부를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이 노예 같은 삶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나의 주체성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나는 1인 기업가다. 회사는 내 고객이다. 상사도, 회사 동료도, 모두 내 고객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려 한 적이 아주 잠깐 있었다. 아주 잠깐.




그리고 지금 내 기억 속에 그때 그 시절은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진 찰나의 순간처럼 기억되어 있다. 실제로는 꽤 오래 실천했음에도 내 기억에 오류가 생겨 잘못 기억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그 프로젝트(?)의 결과는 나에게 썩 긍정적으로 남아있진 않은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쁘지는 않았다. 분명히 계속해서 밀고 나가면 좋은 신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회사 일더미 속에서 그 생각은 그냥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나 지금 뭐하려고 했더라?



회사 다닐 때 입에 달고 살던 말






포스팅에 달린 댓글은 여러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다.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는 사람도 많았다.

앞으로 이렇게 살자고 친구를 태그 하는 사람들, 잊고 있었다며 리마인드를 하는 사람들, 자신은 이미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람들... 반응이 다양했다.

원래 이런 글에 댓글을 잘 쓰지 않지만, 왠지 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경험 때문에 나도 모르게 댓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절반쯤 썼을까. 나는 손가락을 멈추고 멍하니 내가 쓴 댓글을 바라보았다.









저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잠깐 있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저 생각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신념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저건 쉬운 이야기가 아니에요. 부정적인 얘길 하려는 건 아니지만...





세상에.

시작은 나의 경험을 공유하려고 했던 의도였는데, 적다 보니 이건 어느새 꼰대의 한마디가 되어있었다.






내가 해봤는데 안돼.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어릴 적 내가 참 싫어했던 말. 



'아 이게 오지랖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서둘러 댓글을 지웠다. 지우기 전 왠지 기억에 남겨두고 싶어 스크린샷을 찍어두었다. 문득 내 나이가 느껴졌다. 내 입장에서는 단순히 내 생각을 적는 것일 수 있겠지만, 이게 누군가에게는 꼰대의 한마디가 될 수도 있겠구나. 물론 내가 내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는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선택은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내 자신이 어느 순간 내가 싫어하는 류의 말을 꺼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당장 페이스북을 끄고 브런치를 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때의 내 경험은 정말 '쉽지 않았고, 또 쉽지 않은 일이었다.'로 회자되어야 할 일이었는지.

저런 꼰대스러운 댓글로 끝내야 하는 것이었는지.




저 책이 말하는 메시지도, 그를 전달하려 한 포스팅의 메세지도 분명히 좋은 메세지이다.

하지만 나는 왜 그 좋은 신념을 끝까지 끌고 가지 못했던 걸까.

게다가 왜 지금은 묘하게 동의할 수 없다는 반감까지 생기는 것일까.




사실 나는 애초에 '사장'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애초에 다른 업계보다 진급이 빨랐던 당시 업계의 분위기조차도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되기 싫다는 나에게 선생님이 되라던 엄마의 말에 늘 반감이 생긴 것처럼,

사장이 되기 싫다는 내 자신에게 사장이 되라고 주문을 걸어봤자 먹힐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을 바라본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에게 입사 거부를 선언하고, 스스로의 일을 시작했다.

수입이 생기는 일도 있고, 전혀 생기지 않는 일도 있다. 

지금의 나는 몇 년 전의 나처럼 스스로에게 '나는 1인 기업의 CEO야.'라고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 

왜냐면 스스로가 이미 그러하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뚜렷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은 시켜줘도 안 할 거라고 밥 먹듯 얘기한 사람인 내가 이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지만.




비자가 얼마 남지 않았던,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던 작년의 어느 겨울밤에, 짧은 공원 산책길을 몇 번이나 오가면서 내가 3개월 뒤 죽는다면 뭘 할까 생각했었다. 그중에 하나가 사장이었다. 

이유는 '내 스스로 나는 절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한 걸 한 번 해보자.'였고, 그중에 하나가 사장이 되어 내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생각이 현실화가 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두자.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것 같다.)




근데 웃긴 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 일을 하면서도 나는 회사 다닐 때의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도 못할 거면서 완벽하고 싶어 마음만 앞서서 스트레스만 10배 넘게 받고 진짜 일할 기력은 잃어버리는 나쁜 습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잡히면 마음에 여유가 없어 약속도 안 잡고 사람을 안 만나는 버릇, 근무시간은 24/7 언제든 내가 원할 때... 

배운 건 회사에서 배웠을지라도 그걸 내 것으로 받아들인 이상 결국 내가 싫어했던 나의 근무 습관들은 내 몫이었다. 아직도.

물론 회사를 다닐 때보다 자율성이 높기 때문에 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조금 웃겼다.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1인 기업 CEO가 됐다고 해서 다 책처럼 그렇게 살아지는 게 아니다.

실제로 1인 기업 CEO가 아니라고 해서 책처럼 그렇게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모든 이들에게 맞는 옷은 아니다.

내게 잘 어울리는 옷 같으면 한 번 입어보고, 안 맞으면 남을 주면 된다. 

내게 안 맞는 옷 같으면 내가 안 입으면 되고 굳이 옷을 만든 사람에게 손가락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가슴 먹먹한 느낌을 토해내고자, 감히 몇 마디 적어본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 수 없다. 

나도 절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다.

그것은 팩트다. (장담하건대 아무도 내 성격으로 30년 이상 못 산다에 한표.)

그러므로 우린 이미 훌륭하게 나라는 인생을 잘 경영하고 있다.

매일 뭐 먹을지 고민하고 먹고 일하고 쉬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

그런데 이 책에선 왜 자꾸 경영자가 되라고 하는가.

그건 결국 성장하라는 이야기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성장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 좇으라고 한다.

그러면 내 인생이 더 나아질 거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이제 난 그만 좀 성장하고 싶다.

결국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1년 365일 24시간 성장하라는 이야기 같아서 나는 역으로 올해는 성장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고 싶다. 





저 올해는 성장 안 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올해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Noey's Note

식욕이 인간의 공통 욕구이지만 그 먹는 양과 느끼는 바와 만족하는 정도가 모두 다르듯이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도 인간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모두 같을 순 없다.
누군가는 식욕을 억제하고 다이어트를 선택하듯이 우리에겐 성장하고 싶지 않을 권리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땐 가끔씩 써야 한다. 









글쓴이는: 

필명 노이(Noey). 

30대인 게 행복한 평범한 사람.

꽃길인 줄 알고 들어간 회사에서 흙길만 밟다가 나옴.

잠시 디지털 노마드를 꿈꿨으나 천성이 집순이인 것을 나이 서른에 깨닫고 보류 중. 

더 늦기 전에 독일 워홀 비자를 써보려고 작년에 독일에 왔다가 얼떨결에 아직 독일 거주 중. 

호기심이 폭발할 때, 감성이 충만할 때 글을 쓰며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중.



- 독일에서 구매대행 도전 중인 블로그: https://lifeisllll.blog.me/

- 개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noey_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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