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이의 유럽일기 Apr 13. 2018

당신의 일상이 소중한 이유




한국으로 가는 동안 경유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끄적여둔 글이 아직 공개되지 못하고 잠자고 있는 것을 늦게서야 발견했다. 이 날 나는 중국남방항공을 타고 암스테르담에서 베이징으로 날아가기 1시간 전 암스테르담 공항의 한 라운지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라운지는 꽤 괜찮은 편에 속했다.

사람들이 꽤 많아 좋은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운이 좋게도 비행기들이 잘 보이는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하이네켄 로고가 새겨진 맥주잔에 생맥주를 가득 따라와서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이리저리 사진을 찍었다.

예전 같으면 이러고 있는 동양인인 내가 제법 눈에 띄어 한껏 소심해졌겠으나,

멀리서 나처럼 이러고 있는 다른 외국인 남성이 있어준 덕분에 조금 덜 부끄러웠다.



날이 흐리고 역광이라 그런지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 건져놓고는 가지고 온 음식을 오물오물 입에 집어넣고 

분위기를 낸다며 즐기지도 않는 맥주를 삼켰다. 



내 눈은 계속 비행기를 점검하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조금씩 그 자리를 바꾸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흐린 날씨 탓에 그다지 예쁘다고 할 풍경은 아니었음에도 나는 그 모습들에 꽤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라운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저 풍경이 나처럼 흥미로울까?

그들에게 이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란 내가 매일 맥북을 들여다보는 일과 같겠지.



그리고는 문득 내 일상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졌다. 

때론 지루하고 때론 정신없이 바쁜 내 일상이 없이는 

여행이라는 게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일상을 탈출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내게 익숙함을 주는 그 일상이 있기에 내가 새로운 곳에서 설렐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 일상이 있어서, 그대와 내가 제주에서, 도쿄에서, 파리에서 설렐 수 있었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N's Note

1. 익숙지 않은 무언가에 설레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다른 어떤 것에 익숙해져 있어야만 한다.  
2. 익숙한 것이 없어 모든 게 설레고 흥분되는 아이들의 삶은 일상이 아니라 '모험'에 가깝지 않을까.
3. 그래서 한 아이의 삶이 '모험'에서 '일상'으로 바뀌는 순간, 부모는 아이에게 '여행'을 선물한다.
4. 나는 어디로든 떠나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중에서도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존재란 것을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잊어버리는 망각의 존재다. 
5. 당신의 감성이 죽었다고 생각될 때가 혼자 여행을 떠나기 가장 좋은 때이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못난 실력이라도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글, 사진, 그림: 노이

노이가 일하는 곳: https://lifeisllll.blog.me

매거진의 이전글 만약 내가 아직 그 회사에 다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