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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Mar 29. 2018

만약 내가 아직 그 회사에 다녔다면

나는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손가락을 다친지 정확히 3주째 되는 날이다. 아직도 손가락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허리까지 아팠다. 앉아있는 것 조차 힘들어졌다. 조금 다행이라면 허리도 손가락도 모두 한 병원에서 동시에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병원을 두 군데나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붕대를 스치기만 해도 아프던 손가락이 이제는 많이 나아져서 끄적끄적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성격은 더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몸이 아프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아프면 푹 쉬고 얼른 회복을 해야하는데 더 큰 스트레스가 되었던 건 하필 한국에 잠깐 머무는 시간동안 아파서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과 그리고 열심히 준비한 사업을 오픈하자마자 쉬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온 한국에서의 하루하루를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허리 찜질을 하며 보내야 했다. 개인 사업이니 내가 아프면 일이 올스탑이었다. 아찔했다. 시작부터 중요한 배움을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그래도 한국에 들어오면 꼭 해야할 일들이나 하고싶었던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무리해서 외출을 하고 오는 날에는 드러누웠다. 한국에만 계속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열몇시간을 꼼짝없이 이 허리로 앉아있을 생각을 하면 빨리 나아야만 했다. 독일에 돌아가서도 계속 아프다면 그것도 큰 문제였다. 더 이상 아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회복에 집중하다보니 한국에 온지 2주가 되도록 아직도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다. 보통 해외를 많이 다니는 사람들의 시차 적응을 하는 요령은 이렇다. 잠을 잘 수 없는 환경, 즉 바깥에서 잠자기 직전 시간까지 돌아다니다가 집에 들어와서 피곤함에 곯아떨어지는 것.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고생하다 보면 시차가 자연스레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계속 누워있다보니 졸리면 그냥 잠이 들었다. 억지로 버텨보려 하면 몸이 안아프던 곳까지 아플 것처럼 반항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무서운 호랑이를 만난 강아지처럼 깨갱대며 휴식을 택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 이상은 무시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모아놓은 돈은 바닥을 보여가서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임에도 한 두푼 아끼려다 가장 큰 건강인 재산을 잃을 수는 없다고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늘 혼자 다 하려고 하고 도움은 요청할 줄 모르던게 예전의 나였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부담없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분이 묘했다. 




아프면서 계속 누워있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지금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더라면, 억지로라도 시차가 벌써 돌아왔을 거야.'

'회사 다닐 땐 미국이나 유럽에 다녀와도 오자마자 바로 출근하거나 못해도 다음 날 출근이었는데. 

그 땐 어떻게 그렇게 했지?'

'아마 회사 다니면서 이렇게 아팠으면 하루 이틀 정도만 쉬고 지금쯤은 출근하고 일하고 있겠지? 예전에도 오른손을 다쳤을 때 손쓰면 안됐는데 참아가면서 독수리 타법으로 일했었지.'

'회사를 다녔다면 쉬는 동안에도 월급이 나왔을텐데. 일도 지금처럼 올스톱 되진 않았을거야.'

'그래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몇 주씩이나 쉬지는 못했으려나.'




무엇이 더 좋고 덜 좋은 것인지 아픈 머리로 생각하고 있자니 혼란스럽기만 했다.

벌써 두번째 탈회사 라이프에 도전하고 있고, 마지막 정규직에서 뛰쳐나온지 1년하고 몇개월이 지났고, 이번엔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내 일까지 시작했지만 아직도 '회사'라는 키워드는 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구나. 새삼 깨닫는다. 처음부터 창업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한 번 회사라는 곳에 몸을 적지 않게 담궜던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나보다 싶었다. 아니, 오히려 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 일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다니던 회사 생각이 더 많이 난다. 그 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었다. 그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던 대표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회사라는 단체 생활 속에서 나라는 인간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구분지어 지기도 했다. (그 때의 연봉이 그립기도 하고. ㅎㅎ)





그러다 얼마 전 내 건강을 갉아먹은 원인이었던, 야근이 많기로 악명 높던 첫 회사의 근무 환경이 적잖이, 아니 대폭 개선되었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아직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선배나 동료들이 꽤 있기 때문에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난 지금쯤 행복해 하며 다니고 있을까?  






당장 다음 달부터 그 회사를 다시 다니는 것도 아닌데, 문득 정말 궁금해져서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예 후회가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마음이 조금 동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 날 저녁 퇴근을 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물었다.





"나 그 때 그 회사 안 그만뒀으면 지금쯤 잘 다니고 있었을까?"






단호박 내동생은 0.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_-"





사이다 같은 대답에 웃음이 나왔다.





"그치? 아마 얼마 안있어서 정신과 상담 받으러 갔을거야. 하하하."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은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들어봤자 절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같은 사람이 이런 후회성 짙은 생각을 잘못 방치하면 나중에 큰일나는 위험한 씨앗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제대로 정리해두지 않으면 후회로 남아서 나중에 두고두고 생각이 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그 대화 이후로도 곰곰히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결론은 의외로 쉽게 내려졌다.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기 전 회사의 미래(회사가 더욱 잘 되고, 돈도 더 많이 받고, 업무 환경까지 개선된다는 미래)를 알았다고 해도 나는 200%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나씩 회사를 그만 둬서 좋았던 일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는 독일 워홀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내 인생의 멘토나 다름없는 지금의 독일 친구를 만났다. 
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 회사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 회사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 회사 때문에 ... 






이렇게 적어놓고도 뭔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적어놓은 리스트를 보고 또 보았다. 예전에 친구와 나눈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그 때는 그 회사에 대해 심신으로 많이 지친 상태였던지라 회사를 다니면서 부당하다고 느꼈던 일들에 대한 설움이 퇴사를 하고도 한동안 풀리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래도 그 회사를 다녀서 이런건 좋았어.' '저런것도 좋았어.' 라며 좋은 점을 찾아내보려 애쓰던 때였다. 그래도 그 곳에서의 내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으리라. 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덜컥 첫 퇴사를 감행한 내 자신의 결정이 후회됐었는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던 날들의 어느 저녁, 친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어김없이 퇴사와 전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수다의 주제로 떠올랐다. 





"그래도 그 회사 다닌 덕분에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일도 많이 배웠고, 생전 뗄 수 없을 것 같았던 영어도 잘하게 됐고. 그래도 꽤 좋았던 것 같아."






복잡한 내 마음을 읽은 듯한 친구가 특유의 시원시원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야. 그 회사 안다녔어도 넌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을 거고, 일 잘 배우고 잘 했을거고, 영어도 잘하게 됐을거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딩 -.

내가 좋아하는 기분.

누군가 세게 머리를 내려친 것 처럼 깨달음이 오는 기분.

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잊지 않는다. 절대로.




내가 무슨 회사를 다녔는지는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서 회사를 나라는 존재보다 위에 둔 채 생각했던 것이다. 

내 삶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일하던 나. 

아직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내가 작성한 리스트는 아직도 모든 문장의 중심이 '그 회사'였다.

'그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라거나 '그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에'는 나에게 올바른 표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시작부터 틀린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 회사를 다녔든 안다녔든, 그 때의 나는 아팠지만 성장했고, 부끄러울 것 없이 일했고, 그땐 내가 원하는 삶이 뭔지는 몰랐어도,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내 안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그게 어디가 됐든 계속 걷고 또 걸어서 지금의 만족스러운 내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든, 혼자서 무보수로 무언가를 하든, 프리랜서 일을 하든, 내 사업을 하든지 간에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알고 직접 부딪혀보고 수시로 방향을 수정한다. 마치 거대한 태평양 위를 항해하는 배처럼. 때로는 초대형 크루즈선에 탑승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기 어선에 탑승하기도 했다. 지금의 내 배는 작은 돛단배 같다. 내 배에는 암초를 알려주거나 경로 이탈을 알려주거나 태풍을 예보해주는 첨단 시설은 없다. 하지만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나침반은 내 마음에 잘 새겨져 있다. 이것만 가지고 있다면, 나는 어떤 배를 타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어떤 배를 타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언제 어느 때든, 어디에서든, 나는 뭘 해도 이 예민한 성격 때문에 힘들어는 했을 거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이겨내고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ps1. 그래도 7년전 생각대로는 살고 있는 것 같다. 리마인드 시켜줘서 고마워, 페이스북. ;)


7년전에 썼던 글 돌아보기





ps2. 어쨌든 결론은 이 몸을 끌고 2차 주문 접수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금 타고 있는 돛단배에 놀러오세요. :) 






글: 노이

커버 사진: Photo by rawpixel.co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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