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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Feb 06. 2017

행복한 백수

백수의 삶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훔쳐보라고쓰는일기 #첫번째이야기



백수와 프리랜서의 사이에 걸친 다리 위를 걷고 있다.
왔다 갔다 하면서.

'프리랜서'라고 하기에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을 할 뿐이라, '백수예요'라고 하는 게 마음이 조금 더 편하다.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제 발로 회사를 걸어나오는 것은 조금 많이 뻘쭘한 일이었다. 복에 겨운 투정같이도 보였으리라. 하지만 내가 회사를 처음 들어갔을 때 박수를 받았던 만큼이나 마지막 퇴사를 할 때에도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백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남아도는 시간, 내 맘대로 밤새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여유롭다 못해 지루할 것 같은 일상.



나도 그런 백수를 보낸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나도 그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의미가 없었기에,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이리라.


한 가지 분명한 건 내 몸은 쉴 수 있었을지언정, 내 마음은 백수인 적이, 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은 더욱 힘이 들었었다. 


이번엔 조금 다른 백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수입은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는데, 내 스케줄러는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빡빡하다.
지하철 이동시간도 아까워서 이렇게 무언가를 쓰고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 가볍게 던지는 질문들.


가령,
 "네가 뭐가 바빠?" 

(악의는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머쓱하게 웃으며 답하게 된다.
"그러게, 백수가 더 바쁘네."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몇 달 만이라도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것도 한 달 정도가 끝이었다.


첫 퇴사의 경험을 했던 무렵의 내 생활은 대략 이랬다.

한 달은 불안하게 놀고, 두 달은 계속 불안은 한데, 하고 싶은 일이 뭔가 찾으며 어쭙잖은 시도를 하다가, 결국 얼마 안가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자 화들짝 놀라 돈을 벌러 예전 자리로 돌아갔다.

'탈업계'를 선언하고 나왔던지라 '이제 안 온다더니 다시 왔네?'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처음에는 현실과 타협한 척을 했고, 나중에는 실제로 타협했던 - 그런 1년 반을 보냈다. 두 번째 회사도 이런저런 말도 많고 탈도 많기도 했지만, 내 본성이 어디가랴. 처음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와 비슷한 마음으로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음은 비슷했으나 내 삶은 달랐다. 



첫 퇴사 때처럼, 우울과 좌절과 무기력함이 몰려들까 무서웠던 걱정과는 달리 - 나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 같은 건 전혀 없이 평생을 살아왔던 내가,

그래서 한가한 시간에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내가,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밤에 잠들기가 아쉬워 꾸벅거리다가 잠이 든다. 

아직 이런 생활이 익숙지가 않아서, 이 일 저 일을 닥치는대로 하면서 지내다가 문득 쉬는 날도 없이 일주일을 보낸 것을 깨닫고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회사에서 주말도 없이 일주일 동안 일했으면, 어떻게 쉬는 날도 일을 시킬 수가 있냐며 - 분노에 차올랐을 텐데. 아무리 좋아하는 일, 취미 활동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내 삶에 즐거운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다는 경험이 나라는 백수에게는 참 신선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오늘은 '매일 하고 싶은 일들', '주 2~3회 하고 싶은 일들', '주 1회/월 1회 하고 싶은 일들'을 쭉 나열하여 표로 정리를 하였다. 시간에 일에 쫓기지 않고 내가 끌고 나가도록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은 0가지 일들을 매일 매일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일들을 끝도 없이 나열해 놓고 그걸 못해서 끙끙대는 스트레스도 꽤 나를 괴롭혀왔다. 


하루에 일할 시간은 몇 시간으로 할지, 나만의 주말은 언제로 할지, 이런 시간의 규칙도 정해놓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회사를 다닐 때의 토요일, 일요일처럼 2일이 텅텅 빈 날 같은 건 이미 없다. 어떤 요일이든 하나 이상은 약속된 일정들로 꽉꽉 들어차 있다. 하지만 낮 시간이 여유로운 날들이 있으니 괜찮다. 


하루하루가 아깝다. 시간이 모자라다. 이 밤이 더 길었으면 좋겠고,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두통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과함은 아니함만 못하므로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한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비록 돈은 얼마 못 벌지만, '이런' 백수도 있다고 - 돈을 일정하게 벌지 않는 삶이 무기력하거나 놀기만 하거나 힘들기만 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경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와, 좋겠다. 내 꿈이 백수인데.



회사에 다닐 때 같이 일하던 동료나 친구가 퇴사하고 백수가 되면 늘 농담처럼 했던 말.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나는 행복한 백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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