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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이의 유럽일기 Dec 05. 2018

나는 누구를 위해  예뻐지고 싶었던 걸까?



다들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살을 빼겠다고 다짐하고, 지금의 나는 입을 수 없지만, 미래의 내가 입을 수 있기를 바라며 샀던 예쁜 원피스를, 옷장에 걸어둔 채 그저 바라만 보았던 시간들.

나에게도 몇 년 전까지 그런 옷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새빨간 미니 원피스였다. 바로 파티장으로 가야 할 것만 같은 아주 타이트하고, 새빨갛고, 짧은 원피스였다. 나는 그녀를 서울의 어느 쇼핑몰에서 만났다. 그녀의 색깔처럼 새빨간 글자로 세일이라고 써붙여진 팻말에 이끌려 들어간 어느 한 옷가게에서, 전혀 예쁜 옷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은 옷 무더기 속에서 흙 속의 진주 같은 그녀를 발견했다. 평소에 내가 입던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지만, 한 번쯤 입어보고 싶다는 꿈을 꾸던 옷이었다. 그런 옷이라면 더더욱 비싼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 저렴하면서도 예쁜 그녀를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 할인폭이 큰 곳이 그러하듯이 남은 사이즈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가게에서 딱 하나 남은 옷이었다. 사이즈는 XS이었다. 당시 S와 M사이를 오가던 나에겐 맞을 리가 없는 옷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하나쯤 목표로 하는 옷을 걸어두면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다기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며 얼결에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버렸다. 대부분 할인폭이 큰 곳이 그러하듯이 교환도 환불도 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조심스레 입어보았다. 안 맞을 건 알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과 내가 어느 정도 살을 빼야 할까 등을 가늠하고 싶어서였다. 당연하게도 등 뒤의 지퍼는 제대로 올라가지도 않았고, 겨우 들어간 하체는 갑갑했다. 특히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나의 복부 라인을 드러내버리는 솔직한 그녀의 앞에서 나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본분을 잊은 채 마치 장미꽃 한 송이처럼 벽에 내내 걸려있기만 했다.




그녀는 가끔씩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언제 자신을 파티장으로 데려가 줄 거냐고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녀를 피하기에 바빴다. 나는 사실 다이어트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이어트를 하자고 마음을 먹으면 역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안 먹던 과자가 생각나서 더 살이 쪘다. 그때는 운동도 지지리도 싫어했다. 결국 그녀의 존재도 나에게 곧 스트레스가 되었고, 그녀는 벽에서 옷장 구석으로 숨겨졌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뒤, 20대 중반에 들어설 무렵. 일본에서 1년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온 나는 호텔일이 너무나 고되어 매일 디저트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이 조금 빠지게 되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살이 빠진 건 기뻤다. 이제 조금만 더 살을 빼면 그녀를 데리고 파티장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입고 싶지 않아 졌다. 해가 지나 트렌드는 바뀌었고, 트렌드를 떠나서도 그녀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2년이 더 지난 후, 나는 조금 불편해도 그녀를 입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원하지 않게 되었고, 미니멀리즘을 하면서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옷 친구를 만났다. 내 기억 속의 그 빨간 미니 원피스가 한 송이 장미 같았다면, 이 옷은 마치 검은 털 복숭이의 커다란 강아지 같은 옷이다. 입자마자 거울 앞에서 방방 뛰어댔던, 아주 헐렁하고, 새까맣고, 기다란 기모 원피스이다. 지금 나는 XS사이즈를 입을 수 있지만, 이 원피스는 오버사이즈로 디자인된 M사이즈. 그래서 내가 입으면 마치 XL를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옷이다.

이 옷은 아차 하는 순간에 품절이 되어서, 뒤지고 뒤져서 몇 개 남지 않은 곳에서 겨우 구매할 수 있었다. 내 몸에 맞는 사이즈는 모두 품절이었고, M, L, XL만 남은 상황이었다. 유명 브랜드 제품이기에 내 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는 옷을 선뜻 구매하기에 구매 가격이 만만치는 않았지만, 몇 날 며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이 아이를 나는 결국 데려오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XL 같은 M사이즈였다.








내 몸보다 이렇게 큰 옷을 사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만족도는 생각보다도 더 높았다. 온라인에서만 봤을 땐 몰랐던 안감이 그랬다. 이 녀석은 바깥만 털이 보송보송한 게 아니라 안감도 똑같은 털이 꽉 차 있는데 그게 정말 보드라워서 마치 아주 보들보들한 곰인형이 나를 안아주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털이 진짜 동물 털이 아니라 폴리에스터라서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늘 내 몸에 맞는 옷만 입다가 2 사이즈는 더 커다란 옷을 입으니 몸이 더 편안해하는 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만큼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나는 배 쪽이 조이는 옷을 입으면 거의 99% 체하거나 속이 불편해지곤 했고, 그게 겨울에는 더 심해서 그것을 깨달은 무렵 즈음부터는 대부분 넉넉한 옷들만 내 옷장으로 초대를 하고 있다. 그래도 보통 내 사이즈에서 오버핏 디자인된 옷을 데려오거나 한 사이즈 더 큰 옷을 샀지, 이렇게 커다란 옷을 사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걱정과는 반대로 옷을 입자마자 신이 나서 영상을 찍었다. 그 영상으로 리뷰 영상을 또 만들었다. 블로그에 소개를 하고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 아이를 소개하고 보내주었다. 지금도 이 아이를 입고 있고, 특히나 겨울이 추운 지금의 독일 집에서 지금 나의 베프가 되어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누구를 위해 예뻐지고 싶었던 걸까?





내 옆에 있었던 옷들, 지금 내 옆에 있는 옷들을 바라보니 내가 보였다.






장미 같던 빨간 미니 원피스
vs
강아지 같은 까만 기모 원피스







이 두 옷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많이 바뀌어 있는지 느껴진다.




장미를 꿈꾸던 나는 사회가 생각하는 대로 살던 아이였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하는 마른 몸매를 꿈꾸고, 그런 몸매에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하는 화려한 옷을 입는 것을 꿈꾸었다. 그 옷이 내 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애초에 그 옷은 '진짜 내'가 원하는 옷이 아니라는 것, 나라는 사람과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조차 몰랐던 그 때.




강아지를 입고 있는 나는 이제 나에게 무엇이 맞고 내가 언제 편안해하는지 잘 알고 있다. '너무 큰 거 아냐?'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에도 신경 쓰이거나 흔들리지 않고, 편안하게 나의 결정을 따른다. 스타일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만의 취향을 확실히 알게 되었달까. 이젠 스타일과 편안함을 모두 갖춘 옷을 찾게 된다. 이 강아지 같은 옷은 내가 봐도 참 크지만, 그래서 따뜻한 공기를 더 많이 품을 수 있다. 나는 오늘 하루 이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한 뼘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20대 초반의 내가 선택했던 장미 같던 빨간 원피스는 가게에 남아있는 재고가 줄어들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옷이었다. 빨리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재고를 해치워버리려는 사장님의 의도를 고스란히 알 수 있다.

30대 초반의 내가 선택한 강아지 같은 이 기모 원피스는 재고가 줄어들수록 그 가치가 올라가는 옷이다. 1%의 할인도 없는 가격에 나는 이 원피스를 데리고 왔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꼭 저렴한 옷을 사서, 비싼 옷을 사서의 차이가 아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입는 옷들을 고르는 기준과 가치 자체가 달라졌다. 싸다고 무조건 샀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싸도 나와 맞지 않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 (가끔 실패하지만...)

그리고 비싸도 나와 맞는 옷이라면, 거금을 들여도 데리고 와서 아끼면서 오래오래 입어준다.





살이 빠지는 과정도 신기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을 빼자고 해도 되지 않더니, 지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앞자리 숫자가 5에서 4로 내려간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이어트를 바라보지 않고, 다른 곳을 바라보니 오히려 다이어트가 된 격이었다.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삐그덕 거리는 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고,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과 약한 위를 위해서 먹는 음식을 조금씩 바꾸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인플루언서들처럼 운동을 엄청 전문적으로 하고, 많이 하고, 닭가슴살만 먹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가장 큰 건 스트레스 완화였고, 조금씩만 운동과 식습관에 변화를 줬는데도 생각보다 금방 변화가 왔다. (하지만 참고로 나는 다이내믹하게 10kg를 빼고 그런 사람은 아니다. 체질적으로 많이 찌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빠지는 타입도 아니어서 애매한 무게로 반평생을 살아왔달까.)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내세우는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애를 써서 거기게 맞춰진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며 살았더니 예전의 내가 그렇게 바라던 몸매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던 48kg가 되었는데 그 과정과 의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내가 억지로 예뻐 보이기 위해서 무리한 다이어트로 48kg가 되었다면, 200% 나는 원래대로 되돌아 갔을 것이고, 그리고, 그리고, 기분이 굉장히 찝찝했을 것 같다. (왜냐면 나는 누가 시켜서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몸을 소중히 하면서 자연스럽게 원하던 몸무게가 되었고, 이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게 기분 좋은 이유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중에 얻는 달콤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에겐 내 몸이 건강하고 편안한 것이 더 중요하다.

건강하게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도 결국 사회의 압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압박에 시달려서 시작하는 일과 스스로 원해서 시작하는 일은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전혀.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이렇게 살고 싶다.





- 더 이상 옷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나에게 옷을 맞추기

- 유행하는 옷이라고 다 사는 게 아니라 정말 나와 맞는지를 생각하기

- 집에서는 밖에서 못 입는 허름한 티셔츠랑 츄리닝 말고 세상 편안하고 입으면 기분 좋아지는 예쁘고 편한 옷 입기 (그래서 나에게 잠옷은 아주 아주 중요!)

-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사이즈로 내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내 몸을 위하면서 살기

- 모든 사람들이 걷는 길은 제각각이므로 나는 나의 길을 걷기






당신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글쓴이: 필명 노이. 영어 이름으로 독일에서 쓰고 있는 이름이기도 해요.

30살이 되기 전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쓰려고 독일에 왔다가, 독일이 너무 좋아서 2년째 거주 중입니다.

탈회사원을 선언한 뒤 먹고살기 위해 독일에서 글 쓰고, 영상 찍고, 명상하고, 구매대행 일을 하고 있어요.

구매대행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 마음에 드는 것들만 올려두고 있으니 구경 오세요. :)


- 구매대행 블로그: https://lifeisllll.blog.me








- Cover image copyrights: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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