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랜선 스승님은 법륜스님
빼곡히 쌓아 올려진 기와지붕 뒤로 병풍처럼 드리워진 푸른 산.
그 품에 안긴 듯 아늑한 분위기 속에 고요한 절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는 한다.
절뿐만이 아니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두 군데쯤 꼭 들르게 되는 성당이나 교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 건물들의 화려한 겉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기만 했다면, 요즘의 나는 꼭 그 안에 들어가서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앉아있다가 나오고는 한다. 불교를 믿는 사람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절이나 교회, 성당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하게 되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그저 그곳의 고요한 분위기나 건물의 장엄함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식 날 법륜 스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관점이 하나 추가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갈함'이었다.
종교적인 장소는 모두 그 안과 밖이 매우 정갈하다. 어릴 때는 그런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 방 하나, 내가 일하는 책상 하나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정갈함이 유지되는 건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인 만큼 서로가 지켜야 할 규율이 있기 때문에, 또는 적어도 관리 감시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 여겼다. 마치 내가 학생 시절 내 방은 치우지 않았어도 매일 교실을 쓸고 닦았던 것처럼, 단체 생활을 위한 것 또는 위생을 위한 것, 또는 보이는 것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곳도 있겠지만, 이번에 스님이 하신 말씀은 내게 좀 특별하게 해석되었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 내가 사용했던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정리하는 것은 바로 내 마음의 상태와 직결된다는 말씀이었다. 내 주변의 정갈함은 바로 내 마음이 평안함을 의미하고, 내 주변의 어지러움은 바로 내 마음이 어딘가 불안하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불교의 목적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괴로움에서 벗어난 마음은 평안할 것이고, 그 평안한 마음은 내 주위를 정갈하게 하는 일에까지 미친다는 것이었다.
단체 생활을 위한 것이라고는 해도 평안한 마음으로 정돈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에게까지 그 평안한 기운이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그 공간들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가만히 내 정리정돈 습관을 돌아보았다. 회사를 다니며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시절의 내 방의 모습과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서 이 일 저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지금 내 방의 모습은 사실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회사를 다닐 때에 비하면 바쁘기는커녕 훨씬 여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를 하면 잠시 그때뿐 금방 어지러워진다. 인스타에서 유튜브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아주 잘 꾸며지고 정갈하지 그지 없는 본명도 모르는 이들의 집을 훔쳐보다가 내 집안을 바라보면 그 괴리감은 또 어찌나 큰지.
이제는 바쁘다는 핑계조차 댈 수 없는데도 말이다.
'바쁘다 바빠'라는 말이 사실 아주 영악하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내 주변의 정리정돈 상태가 내 마음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우울하거나 몸이 아프면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도 잠시 흐트러질 수는 있겠지만, 나는 늘 정리정돈을 하지 않은 내 습관이 그저 타고난 기질이라고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어지러운 모습을 보고도 신경이 쓰이지 않으면 괜찮은데, 나는 치우지는 않으면서 늘 스트레스는 받는 성격이다.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어질러진 옷장, 책상 위를 볼 때마다
'아 맞다. 저거 치워야 되는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각은 0.5초뿐. 곧 다른 일로 신경이 쏠린다. 그래서 생각을 안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사실 그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마음이 상쾌하지 않은 것은 맞다. 그러니까 어지러운 내 마음은 주변을 정돈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주변은 또다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돌고 도는 악순환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30년 넘게 살아온 습관도 있겠지만, 바로 내 마음에 '여유'가 없고 '불안'이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어지러운 내 방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래서 첫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마음을 내어 정리 정돈하는 것'을 스스로 수행과제로 삼아보았다.
'정리를 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편안한 마음을 내어 정리를 하자. 이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길이다.'라고 생각하고 정리를 하는 것이었다. 막상 실천을 해보니 그냥 '청소해야 되는데.' '치워야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보다 의지가 더 많이 샘솟아서 개인적으로는 꽤 효과가 있는 주문(?)이었다.
그렇게 '마음 내어 정리정돈 하기'를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 무조건 다 깨끗하게 치운다는 다소 무모할 수 있는 결심보다는 내 정리정돈 습관을 분야별로 하나씩 꼼꼼히 뜯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나오기가 싫다. 침대에서 나오기 가장 좋은 타이밍은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이다. 한 번 침대에서 나오는 게 힘들다 보니, 화장실에 가야겠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직행. 그래서 평소에는 침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괜히 침대 주위를 어슬렁 거리다 보면 다시 이불로 들어가 버릴 때도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일단 침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핑계(?)로 일어난 뒤 이불을 정리하는 날보다 정리하지 않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시작은 침대 잠자리 정리부터 시작했다. 잘 때 어떻게 자는지 늘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이 엉망진창이다. 이불도 베개도 새로 사온 쿠션도 가지런히 정리해 본다.
지난 수업에서 내 주위 환경이 어지러운 것은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일부러 '나는 편안하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내어 정리를 했다. 뿌듯했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하루가 끝나고 침대로 돌아오는 순간 아침에 내가 내어놓은 편안한 마음을 담은 가지런한 침대가 고된 하루에 지친 내 마음을 다시 한번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선순환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자주 입는 옷은 제자리에 걸어두지 않고 빈 공간에 적당히 올려두던 습관도 발견했다. 어릴 때는 옷을 개지도 않고 침대 난간에 걸어두었었고, 이제는 옷을 개긴 하지만 어쩔 땐 거실에 어쩔 땐 침실에 어쩔 땐 의자 위에... 겨우 옷장 앞에서 갈아입어도 서랍을 여는 게 귀찮아서 눈 앞에 착착착하고 쌓아둔다. 하필 자주 입는 옷을 그렇게 벗어놔서 아침에 옷을 입을 때마다 '그 옷이 어딨더라 ~'하고 찾으러 다니는 것도 하나의 의식 같은 일이다. 이 습관은 내가 정말로 어릴 때부터 거의 숨 쉬듯이 반복해온 습관이라 그동안은 이것을 고쳐야겠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난주는 정말 수행하는 마음으로 마음먹고 정리를 했다.
내 책상은 내가 지내는 집에서 가장 복잡한 곳 넘버원으로 꼽혔다. 아무리 치워도 하루만 지나면 원상복귀되는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기도 했다. 사용한 것을 제자리에 가져다두면 되는데 나는 늘 이런 생각으로 모든 걸 책상 위에 모아둔다.
곰곰히 살펴보니 내가 책상 위에 두는 것들의 특징이 있었다.
- 조금 있다가 아니면 며칠 뒤에 또 쓸 것 같은 책, 휴지, 물병, 간식 그릇, 안경, 일기장 등등
- 미루고 있는 일과 관련된 것, 예를 들면 정리가 필요한 영수증 (눈에 보이게 둠으로써 리마인드 효과를 노림)
- 그리고 그냥 치우기 귀찮은 쓰레기, 물컵 등...
그냥 이유를 불문하고 모두 다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가장 유지하기 힘든 곳이 책상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치웠던 그 순간은 뿌듯해서 사진만이라도 남겨두었다.
그냥 '난 바쁘다. 치우는 게 귀찮다. 그래도 해야 되는데.'라고 생각만 하고 습관처럼 지나치는 게 아니라 하나씩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내다보니 청소를 하는 기분이 평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갈아입은 잠옷을 대충 개어놓고 돌아서는 내 마음은 늘 빨리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평소에는 몰랐다. 그러면 나는 다시 마음을 잡고 돌아서서 정성을 들여 개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내 마음을 위한 일이야.'
아침에 1분도 안 되는 시간을 내어 정돈해둔 침대는 하루 일과로 지친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쉬게 해주는 듯 편안해지는 느낌을 주었다.
가장 힘들었던 책상 정리는 일에 더욱 기쁜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마음이 여유가 있고 편안해서 정리정돈을 하게 되든, 아니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정리정돈을 하든 이것이 건강한 몸과 마음이 연결된 것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건 확실히 경험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마음을 내어 정리 정돈해보았던 일주일.
명상을 하는 것만이 내 마음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내 주변을 정리하고 깨끗이 하는 것이 곧 내 마음을 반짝반짝 닦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이 또 흐트러졌을 때 이 글을 읽고 다시 마음을 낼 수 있기를.
<내 랜선 스승님은 법륜스님>
이 매거진은 '정토회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느낀 점 등을 적은 에세이 매거진입니다. 종교 없이 평생을 살아왔고 불교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말 그대로 불교 신입생의 입장에서 온라인 불교대학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생각, 법륜스님의 강의를 통해 느낀 점, 함께 공부하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점 등 제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을 써내려 갑니다.
※ 에세이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법륜스님이나 정토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행정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