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취직해서 행복해졌나요?

입학식 날

by 노이의 유럽일기

※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느낀 점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에세이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법륜스님이나 정토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행정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입학식 날







한 때는 삼 년에 한 번씩 너무나 당연했던 입학식이 이제는 너무나 낯설어진 나이가 되었다.

참 오랜만에 입학생이 되었다.

불교대학(이하 불대)도 대학답게 입학식이 있었다. 그리고 온라인 수업인지라 입학식도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수업 교재는 미리 우편으로 배달되어 왔다. 내 손을 쫙 펼친 것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가이드북과 1차 강의노트가 우편함에 들어있었다. 새로운 수업에 임하는 만큼 노트도 하나 장만했다. 며칠 전 기대치 않게 독일 백화점에서 불상의 사진이 들어간 노트를 발견해서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사지 않았다. 대신 올해 여름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 때, 파리의 유명한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산 노트를 쓰기로 결정했다. 불교 분위기와는 조금 안 맞다고도 생각했지만, 앞으로 한 주 한 주 나의 소중한 배움을 기록할 노트이기에 나름 큰 마음을 먹고 가장 아끼는 노트를 봉인 해제한 것이었다.




IMG_2271.jpg 나의 온라인 불대전용 노트





저녁 8시. 드디어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입학식은 기본적으로 절을 이용하는데 알아두어야 할 예절이나 매너 등을 우선 영상으로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집에서 수업을 듣는지라 당장 실천하기는 어렵겠지만, 나중에 배운 대로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새겨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신입시절 가지는 열정 비슷한 어떤 것이 불타올랐던 것 같다. 정말 어디 학교에 다시 들어가서 신입생이 된듯한 기분도 들었고, 그동안 종종 절에 다니면서도 전혀 몰랐던 규칙들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가 행사를 시작할 때 애국가를 부르듯 불교도 행사를 시작할 때 진행하는 법회 순서가 있다는 것도 배웠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어려운 것은 전혀 없었다.



앞 순서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교수님인 법륜스님의 입학식 말씀이 있었다. 일반적인 학교였으면, 이런 교장 선생님의 말씀 같은 부분은 지루해하기 십상이겠지만, 이 날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었던 입학식 중에 가장 집중해서 들었던 교장 선생님 말씀이 아니었다 싶다. 그리고 그 첫번째 질문은 잔잔하지만 크게 울렸다.





여러분은 왜 불교 대학에 입학했나요?




우리는 평생을 배우면서 산다.

누군가는 그냥 배우라니까 배우고, 대학에 가려고 배우고,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배우고, 꿈을 이루기 위해 배우고, 배우고 싶어서 배우기도 한다. 배우는 것은 결국 돈을 버는 일로 이어진다. 서로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는 공통적인 목표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생활을 더 편리하고 유용하게 하기 위한 목적, 바로 더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했고 더 열심히 돈을 벌었다. GDP는 부지런히 상승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아니 그전부터 열심히 열심히 일한 노력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Screenshot 2018-12-20 at 07.29.03.png 2017 통계청 KOSIS 기준, G20 국가 내 상위 12위








하지만 이상했다. 우리가 잘 먹고 잘살자고 열심히 일한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였는데,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못지않게 자살률이 1위인 국가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는 소식을 들은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다시 한번 자료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크게 변한 건 없었다. 2016년, 그러니까 고작 2년 전 기준으로 낸 통계치 결과도 우리나라가 압도적인 1위였다. OECD 국가 평균 인구 10만 명 당 11.6명이 자살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25.8명이었다. 두 배가 넘는 수치였다. 아니, 수치라고 부르기에도 슬픈 이야기이다.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길을 택하고 있다. 끔찍했던 전쟁 통에서 벗어나 이제야 먹고살만해졌는데, 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일까. 야근이 넘쳐나는 회사일이 힘들어서? 취직이 어려워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로사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는 게 우리나라와 일본이라는데 그 일본도 4위에 그쳤다. 내가 알기로 일본 회사 문화도 우리나라 못지않게 아니 더더욱 엄격하고 과로가 많은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죽음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일까.






Screenshot 2018-12-20 at 07.31.06.png 출처: KTV 뉴스중심






하지만 어쨌든 이런 숫자들을 제대로 알기 전부터 나는 어릴 때부터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아왔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이지만,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간절하리만큼 그 삶을 원했다. 하지만 어디 우리가 살면서 제대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던가. 나이가 조금 들어서야 너무 늦었음을 깨닫고 헐레벌떡 이 책 저 책을 읽어보았지만 결국 깨달은 것은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속 가능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이 불교대학을 열었다고 말씀하시는 법륜 스님의 메시지는 나에게 너무나 와 닿았다.






아마 불교를 잘 몰라도 다들 알고 있는 불교 용어 중 하나가 '해탈'과 '열반'일 것이다. '해탈했다'는 말은 일상에서는 '힘듦을 넘어서서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쓰고는 하지만,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본래 '해탈하다'는 '번뇌의 얽매임에서 풀리고 미혹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다.'라는 의미이다. '번뇌의 얽매임'? '미혹의 괴로움'? 한국말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즉시와 닿지는 않는 어려운 표현이다.

'열반'이라는 말도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쓰이는 의미로만 많이 접했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입학식에서 법륜 스님은 이 두 가지 말의 비밀을 아주 명쾌하게 풀어주셨다.

해탈은 '자유'를, 열반은 '행복'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의 해탈과 열반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 행복과 다른 점은 바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 또는 '지속 가능한 자유와 행복'이라는 것이다.

모든 걱정을 잊고 주말 저녁 치맥을 먹을 때는 행복했지만, 월요일이 되면 불행해지는 찰나 같은 행복이 아니라 주말에도 치맥에도 상관없이 행복한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행복.






'대학에 가면 행복해지겠지.'

'취직을 하면 행복해지겠지.'

'돈을 더 많이 벌 행복해지겠지.'

'사랑을 하면 행복해지겠지.'




그렇게 지금까지 모든 걸 참으면서 살아왔지만, 대학에 가도, 좋은 곳에 취직을 해도, 돈을 점점 더 많이 벌어도, 열렬히 사랑을 해보아도 나는 행복해지지 않음을 깨닫고 많이 방황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하면 행복해지겠지'의 도돌이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알면서도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야.', '아이를 낳으면 행복해질 거야.', '승진을 하면 행복해질 거야.'... 우리가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과연 이 도돌이표 노래가 끝나기는 할까. 지금이라도 내 인생에서 그 반복되는 악순환을 끊어낸 것이 내가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이런 인생을 '조건부 인생'이라고 하셨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 만으로 바로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조건부 인생'에서 내 발로 스스로 걸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어릴 때부터 발목에 줄이 묶여 살았던 코끼리처럼 이제는 성인이 되어 내 발로 스스로 그 줄을 끊고 걸어 나올 수 있는데도 지레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본다. 나는 내가 마지막 퇴사를 하고 이제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겠노라고 결심한 것만으로 스스로 그 조건부 인생에서 걸어 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돈이 없어서', '애인이 없어서', '이뤄놓은 것이 없어서' 모자라고 부족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우울증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겨우 겨우 버텨왔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 없어도', '애인이 없어도', '이뤄놓은 것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사는 것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 바뀐 것이다. 이런 삶의 방식도 있음을 알고, 그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보는 연습을 하면서 차차 나아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아직도 불안정하지만, 앞으로 점차 수업을 듣고 수행을 하면서 나아지리라 믿어본다.




대학을 들어가도, 좋은데 취직을 하고도, 돈을 점점 더 많이 버는데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불행해졌다.

이 대학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조건부 인생'을 졸업하고 불교 대학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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