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by 노이의 유럽일기





내가 중학생이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일찍 돌아왔다. 맞벌이 나가신 부모님, 아직 밖에서 놀고 있을 동생들, 집에는 나 혼자였다. TV를 틀었다. 동물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나왔다. 치와와인지 믹스견인지 모를 황토색의 작은 개가 술주정뱅이 주인에게 폭행을 당해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펑펑 울었다. 혼자 있으니 강한 척 눈물을 참을 필요도 없었다. 나는 울음이 터져 나오는 대로 더 서럽게 울었다. 아직도 기억 속에 그 장면이 선명하다.




나는 유난히 동물이 학대당하는 일을 듣거나 보게 되면 마음이 아픈 편이다. 어쩌면 불쌍한 사람을 보았을 때보다도 더 많이. 동물을 어릴 때부터 좋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말할 수 없는 생명체로써 비명만 지르며 고통을 참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어린 나로서도 너무 잔혹하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주인을 떠나지 않는다는 게 더 슬펐다.



오늘 온라인 불교대학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의 말씀을 듣다가 '케어 안락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동물 구호 활동을 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단체가 약 3년 동안 최소 230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비밀리에 안락사시킨 사실이 내부 고발로 폭로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유는 '유기견 보호소 공간 부족'이었다.

자신이 살고자 동물들을 죽였다.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의 수업 주제가 불교의 기본 규율 중 '살생을 저지르지 말라'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정해진 스케줄대로 진행되는 수업 일정인지라,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밀린 글이 많지만 아마 이 글을 적으라고 이런 우연이 일어났나 싶어 이렇게 열두 시를 바라보며 글을 끄적여 본다.










불교에서 살생이 금지된다는 것은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과서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래서 오늘의 수업 내용에 별로 새로울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모자란 생각을 한참 뛰어넘는 가르침을 오늘 또 얻었다. 그건 바로 한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매와 비둘기 이야기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시리즈 중 하나이다.

어느 날 부처님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무서운 매에게 쫓기고 있으니 자신을 좀 숨겨달라는 부탁이었다. 부처님은 비둘기를 안쓰럽게 여겨 그의 품 안에 비둘기를 숨겨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를 쫓던 매가 나타났다. 매는 부처님에게 비둘기는 자신의 먹이이니 내놓으라고 했다. 부처님은 매에게 살생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비둘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매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비둘기가 죽지 않게 지키겠다고 하지만, 그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러니 그것도 살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매의 말이 옳았다. 비둘기를 살리자니 매가 죽고, 매를 살리자니 비둘기가 죽는 꼴이었다.

그러자 매가 또 말했다.



"하지만 내가 꼭 그 비둘기를 먹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한 고깃덩어리만 있으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부처님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내어 매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 크기가 비둘기의 것보다 적었다.

그래서 반대쪽 허벅지 살을 또 떼어 내어 주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크기가 비둘기의 것보다 적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 곳 저곳 더 잘라서 내어주다가 결국 온몸을 다 내주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이 비둘기를 위해 자신의 온몸을 내놓은 순간, 신비하게도 그 몸이 다시 온전하게 돌아왔다.









이야기를 다 들은 직후에, 나는 조금 갸우뚱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살을 내어주었을 거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이상한 것은 마지막 부분이었다. 비둘기라고 하면 아무리 커봐야 사람의 허벅지보다 크지 않을 텐데, 어째서 양쪽 허벅지살을 내어주고도 모자라 모든 살을 내어주어야 했을까?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그건 바로 생명의 무게는 가장 미물인 비둘기나 위대한 부처나 모두 같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살고자 한다.

인간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말이다.

나에게는 나의 생명이, 비둘기에게는 비둘기의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누구에게도 한 생명을 마음대로 앗아갈 권리는 없다.






케어 동물보호단체의 안락사 이야기와 이 매와 비둘기 이야기가 묘하게 연결되는 듯했다.

안락사당한 동물들은 비둘기 같았고, 안락사를 지시한 케어 동물보호단체 대표는 매 같았다.

매는 자신이 살기 위해 비둘기를 죽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케어 안락사 이야기 속에는 부처님이 없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호단체를 운영할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손으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일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이제 겨우 우리나라 사회의 동물 존중 인식이 높아져가나 라고 생각할 무렵,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지만 그에 분노하고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생명의 평등함을 더 절실히 깨달으라고 오늘 나에게 이 소식과 이 수업이 함께 찾아온 건 아닐까.












<내 랜선 스승님은 법륜스님>


이 매거진은 '정토회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느낀 점 등을 적은 에세이 매거진입니다. 종교 없이 평생을 살아왔고 불교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말 그대로 불교 신입생의 입장에서 온라인 불교대학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생각, 법륜스님의 강의를 통해 느낀 점, 함께 공부하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점 등 제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을 써내려 갑니다.


에세이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법륜스님이나 정토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행정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 최대한 검토해서 올리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커버 이미지 사진은 '케어 안락사'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 글: 노이

- 사진: Photo by Anoir Chafi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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