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있어도 없어도 마음이 허전한 진짜 이유

연인과 함께 하되 독립하기

by 노이의 유럽일기



과거 인도 사회에서는 여성이 한 사람의 인격으로서 보호받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가 없거나, 남편과 사별하였거나, 아들마저 없는 여성은 생존 조차 보장받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에는 여자 스님, 즉 비구니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주 어려웠다고 한다. 왜냐면, 비구니가 된다는 것은 곧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의미인데 그 말은 즉 지켜줄 남자가 없다는 것이고, 당시 사회적 풍속으로 인해 성추행의 피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삿된 음행'을 금지한다. 삿된 음행이라는 것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데 행하는 강제적 추행이나, 상대가 원한다고 해도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불륜, 바람) 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이 계율은 신체적 약자인 여성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여성도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을 가르치는 측면도 있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많은 여성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가 꽤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독립적이라는 말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독립적이라는 것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으로, '부모의 그늘', '배우자의 그늘', '자식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꼭 불교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현대 사회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일단 하나하나 꼼꼼히 나 자신을 뜯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독립은 크게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 독립으로 나눌 수 있고, 또 그 두 가지 독립은 각각 내가 의지하는 관계에 따라 다시 나뉘게 된다. 예를 들면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애인(또는 배우자), 자식 등이 있을 것이다. 정신적인 독립으로만 봤을 때는 친한 친구도 포함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나를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이렇다.



1.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결정함에 있어 부모님에게 상담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편이다.



가끔 아주아주 중요한 일은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대학 입학을 앞둔 고3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결정은 혼자서 하는 편이었다. 가고 싶은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내 맘대로 정했었다. 대학은 조금 예외였지만. 그 외에도 해외에 나가 산다거나 하는 일은 늘 스스로 결정 후 부모님에게 후통보하는 식이었고, 퇴사를 할 때도 처음엔 조금 눈치를 봤지만 나중엔 일단 지르고 나중에 말씀을 드렸다. 이건 딱히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자유방임주의로 키우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 연인과의 관계에서 물질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연애를 해오면서 나는 크게 물질적으로 의존하는 연애를 한 적이 없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던 학생 때야 서로 쓰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대체적으로 서로 공평하게 돈을 쓴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마음이 편했다. 상대가 더 써도, 또는 내가 더 써도 마음이 불편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스스로 벌어서 썼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도 독립했었다. 지금은 잠시 다시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임을 감안해 주자. (토닥토닥)

그런 내가 아주아주 독립적이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걸, 최근에 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는 가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바로 나에겐 그런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건 바로 '연인에 대한 정신적인 독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평생 서로를 이해해주고 아껴줄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금 나에겐 그것도 하나의 의존인 거 아닐까?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때려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내 무의식 더 깊은 곳은 아직도 옛날 사회 풍속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하도록 길들여져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의존하여 산다는 것, 그것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아픔이 더 많았던 내 연애사를 설명해줄 수 있었다.




나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늘 마음이 허전했던 하루하루.

솔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이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일까?

왜 내 존재 자체만으로 내 마음이 꽉 찰 수 없는 걸까?

사랑을 하면 할수록 상대의 마음도 아니 내 마음조차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만 깨달을 뿐 누군가를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이 공허함은 채워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찾고 찾고 또 찾았던 것 같다.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순간에는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어제, 아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돌고도는 악순환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독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의외로 간단한 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나는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을 하고 있다. 지금 죄송한 마음은 들지만, 일시적인 일이고 곧 돈을 벌기 시작해서 스스로 다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갚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이 마음을 크게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같은 원리였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느냐 마느냐는 내가 수입을 만들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정의된다.

연인에게 정신적으로 독립하느냐 마느냐는 내가 사랑을 만들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돈과 사랑의 차이 일뿐 비슷하다는 거다.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자면 이렇다.





'돈을 충분히 못 버는 나'

=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나'


⬇︎



'부족한 돈을 메꾸기 위해 부모님에게 돈을 빌린다'

=

'부족한 사랑을 메꾸기 위해 애인에게 사랑을 빌린다'



⬇︎



'빌린 돈으로 당장의 급한 일을 해결하지만 장기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는 독립이라 할 수 없다'

=

'빌린 사랑으로 당장의 공허함을 채우지만 그 때 뿐이며 그 형태는 사랑을 빌리기만 하는 것일 뿐 주고 받는다고 할 수 없다'



⬇︎



'돈을 충분히 벌기 시작하면 더 이상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

'나를 충분히 사랑하기 시작하면 애인에게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



⬇︎


*독립 단계

'빌린 돈도 갚고 용돈도 넉넉히 드리려면 나는 지속적으로 일정 금액 이상을 번다'

=

'내가 나에게 사랑을 주고, 상대에게 주고 싶은 사랑도 또 주려면 나는 지속적으로 사랑을 만든다'




물론 돈과 사랑은 다른 개념이고 똑같이 기브앤테이크를 계산할 수도 없거니와 그게 전부가 아니지만, 좀 더 쉽게 이해해보고자 비유를 해보았다. '독립할거면 왜 연애나 결혼을 하나?' 라는 물음표를 던질 수도 있다. 바로 그 개념이 걸림돌이 된다. 연애는 의존이 아니라 상호 교류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돈을 품에 품고만 있지 않는다. 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듯, 정신적으로 독립한 사람이 사랑을 품에만 품고 있는게 아니라 사랑을 주고 또 받는다. 그게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사랑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왜 연애를 해도 안해도 내 마음이 공허했는지가 명확해졌다. 그러니까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과 '모든 존재로부터 독립하는 일'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일로 귀결된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나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나름 예전보다 많이 나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타인에게 받는 사랑이 '빌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이 공허함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빚지고 못 사는 나는 사랑도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 꼭 돌려주려고 하는 막 퍼주는 타입인데, 내 사랑을 퍼다가 상대에게만 주고 내 안에 남겨둔 게 없는 것이다. 그나마 생산량도 대기업 수입이 아니라 1인 개인기업 수준인데 다 퍼다 주니 마이너스가 되는 게 당연 지사. 저 프로세스 중에서 내가 사귀던 사람들과 헤어진 이유가 하나씩 2개가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그동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가 '왜 헤어졌는지에 대한 이유'에 너무 집착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또 같은 이유를 반복하기만 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내 마음에 강하게 남은 게 그것이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앞으로는 어떻게 행복하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겠다. 그래서 결국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되기까지 수행해가는 것이 최종적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




조만간 '노이표 사랑 생산 공장 계획'을 수립해야 하나 싶다.








<내 랜선 스승님은 법륜스님>


이 매거진은 '정토회 불교대학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 느낀 점 등을 적은 에세이 매거진입니다. 종교 없이 평생을 살아왔고 불교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한, 말 그대로 불교 신입생의 입장에서 온라인 불교대학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생각, 법륜스님의 강의를 통해 느낀 점, 함께 공부하는 분들에게서 배우는 점 등 제 생각이 미치는 모든 것을 써내려 갑니다.


※ 에세이에 담긴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법륜스님이나 정토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토불교대학 행정처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 최대한 검토해서 올리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글: 노이

- 사진: Photo by Toa Heftib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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