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게 힘이 들 때

by 노이의 유럽일기









누구나 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우선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마치 무수한 먼지뿐이었던 우주에서 지구가 만들어지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두 발로 걷고 진화의 진화를 거쳐 지금의 내가 태어나기까지 발전해온 이 유전자 DNA는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어째서 그 철학과 행동 습관이 우리의 DNA 속에 아직 입력되어 있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 말은 반대로 인간은 아직도 무한히 진화하고 있고, 내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배우고 겪은 모든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서 내 나름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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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에게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늘 두 가지 갈림길에 놓인다는 것이었다.

초창기 책을 통해서 행복을 배우던 나에게 '행복' 카테고리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와 닿았는데,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과 또 하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또는 성공하기 위해 바꿔야 할 습관이나 새로운 인생 지침 가이드'가 담긴 책들이었다.

나에게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의견처럼 보였다.




나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쪽의 의견이 강하게 공감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바라는 행복한 내 인생을 위해서 나는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공을 위해서든, 행복을 위해서든, 이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읽으면서 내 삶에 맞추어 체화하다 보면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내 모습을 '바꾸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조언들도 수두룩 했다. 내 가치관을 바꿔야 했고, 내 습관을 바꿔야 했고, 그것은 마치 나라는 인간 전체를 바꿔야 하는 대수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 다른 길 같다고 느끼면서도 어느 쪽도 손에서 놓지 못한 나는 양쪽을 마치 줄다리기하듯 오가기 시작했다. 그저 그때 그때 끌리는 쪽으로 걸었다. 어쩔 때는 그냥 못난 내 모습도 사랑했다가, 어쩔 때는 불타오르는 의지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살아갔다. 처음엔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왔던 길을 반복해서 오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마치 커다란 산의 아랫부분을 낮은 오르막길을 따라 그 외곽을 빙글빙글 둘러서 걸어 올라가는 그런 길이었다. 몇 년쯤 걷다 보니 이제 산 중턱이 보일만큼 올라왔구나, 하는 기분이 들면서 이제야 그들이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수십 년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짧은 몇 년 간 열심히 돌아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있다고 느꼈다. 그중에 단 하나가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던 진짜 나이다. 이 세상의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순수한 내가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후천적으로 생겨난 내 에고들이 있다. 우리는 그 에고들을 '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 에고들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도 있고, 내가 부끄러워하거나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들도 있다. 그들이 에고라고 해서 내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속의 그 존재들을 부정하지 않았다. 좋든 나쁘든 그동안의 내 모습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나의 자아들은 본능적으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써왔지만, 올바른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 삐뚤어졌을 뿐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여기까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내가 공감했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의 절반 정도가 이루어진 셈이다. 여기까지는 아직 사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절반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차례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세요.'


라는 쪽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게 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게으른 나도 사랑해.'
'소심한 나도 사랑해.'
'모자란 나도 사랑해.'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정말 좋다. 정말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나면 안 된다.

여기서 그만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예전의 나를 비판하던 감정이 똑같이 어쩔 땐 그 두 배로 돌아온다.




'게으른 나도 사랑해? 그래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나 보자.'라고 하듯 내 에고는 나를 더욱 더 게으른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거나, '소심한 내가 나쁜 게 아니야. 내게 상처 주는 저 사람들이 나쁜 거야.'라고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또 '내가 봐도 내가 한심한데, 이런 나를 어떻게 사랑하라는 거야... 어쩌면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돌아간다.

애초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만으로 100% 행복해진다는 일이 나 같은 인간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게 확실하다는 정반대의 확신만 가득 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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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가 바로 끓기 직전의 99도 지점이다. 여기서 멈추면 다시 도루묵이다.

쉽게 생각해서 난 마치 말로만 애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왔던 것이다.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고,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생일날 진심 어린 축하 한마디 해주지 못했던, 내가 정말 싫어하는 유형의 아주 이기적인 애인.




애인에게도 사랑을 표현하고 행동해야 전달이 되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과 달리 분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생각만 바꿔도' 나는 나 자신이니까 내 마음 다 알겠지, 그러니까 괜찮겠지,라고 여기면 안 된다.

우리는 좀 더 자신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사랑하는 표현과 이벤트를 해줘야 한다.

마치 미우새의 김종국이 매번 다른 운동법으로 자신의 몸에게 이벤트를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







나를 사랑한다는 게 대체 뭘까?




처음엔 여기서도 엄청 헤매게 된다.

사랑하는 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배고픈데 요리하기 귀찮으니까 오늘도 라면으로 밥을 때울까?'라고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A) 사랑하는 내가 귀찮다고 하니까 요리는 패스-. 몸에는 안 좋아도 내 사랑 라면 끓여먹고 드라마나 봐야지.

B) 너무 피곤하고 귀찮지만 사랑하는 내가 먹을 한 끼니까 맛도 있고 건강한 요리를 해서 먹어야지.





A도 B도 둘 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그 관점과 행동과 결과는 천지차이이다.

얼핏 보면 A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B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A가 사랑해주는 대상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내 에고 중 하나일 뿐이다. 귀찮은 건 싫고, 자극적인 입맛만 원하던 중학교 2학년에 생성된 내 에고이다.

진짜 나는 내 건강을 망치는 식습관이 꾸준히 지속되면, 속에서 울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세상에 어느 누가 스스로 건강을 망치고 아프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나를 사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행동과 습관과 생각과 말이 바뀌게 된다.

여기서 바로 앞에서 상충되는 것으로 보였던 '습관 바꾸기', '생각 바꾸기' 등의 조언들이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를 때이지만. 어쨌든 그 점을 인정하고 하나둘씩 그 조언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행동이 꼭 필요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었을 때 또는 지금 그 사람에게 또는 미래의 그 사람에게 해주던 것들 해주고 싶은 것들을 노트에 하나씩 적어보자.






피곤한 날에도 꾹 참고 사랑하는 애인을 집 앞까지 바래다주던 그 마음과 행동,
데이트하는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쁘고 멋지게 보이려고 나를 꾸미는 그 마음과 행동,
평소엔 안 하던 요리도 애인을 위해서 두 팔 걷고 도시락을 만들어보던 그 마음과 행동,
매일매일 별 일은 없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걱정하고 물어보는 그 마음과 행동...




분명 그중에 내가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보일 것이다.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요.'






사랑 관련 영화 명대사 중에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연애를 하다 보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 이상하게 나를 자꾸 못되고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상대가 있고, 나를 더 온화하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내가 된다. 나를 사랑할 때도 그 대상을 잘 파악해야 한다.





진짜 나와 후천적인 에고의 나.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말이다.

누구를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더 좋은 삶을 살게 되기도 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데도 점점 힘들어지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나에게 묻는다.



오늘 어떤 나를, 어떻게, 얼만큼 사랑해 줄까?








글: 노이

커버 이미지: Photo by Andrii Podilny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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