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는 없는데 열정만 넘치는 사람 씀
2-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해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수많은 책들과 미디어가 떠들어대는 것처럼 내 일생을 바칠 만한 단 한 가지 목표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나가서 찾아볼 용기조차 없었다.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조차 없는 빈 껍데기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하지만 십 년 넘게 뭉쳐왔던 그 답답함이 몇 년 전 뻥-하고 터졌다.
그동안 나는 맞지 않는 작은 화분에 갇혀서 자라온 고목나무 같았다. 난 그 화분보다 더 크게 자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매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자르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어느 날 화분이 깨졌다. 화분을 뚫고 나오자 그동안 맺힌 한을 풀려는 듯 사방으로 뿌리들이 뻗어내려 갔다. 마치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던 필리핀에서 이것도 저것도 다 먹고 싶어서 가리지 않고 먹어댔던 그때처럼, 나는 이 일 저 일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일에 기웃거리고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처음 그 희열은 엄청났다. 오픈 컬리지라는 곳을 다니면서 일주일에 열개도 넘는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회사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정규 수업이 아니라도 회사를 다니면서 열개도 넘는 수업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도 들으면서 놀랬다. 그 얘길 듣고 누군가 했던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회사도 다니시면서 일주일에 열개나... 남자 친구가 없을만하시겠네요. ^^;"
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진심으로 답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듯 (실제로 필리핀에서도 배탈이 났었다고...)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하려던 나는 정말로 탈이 나고 말았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 배운 롱보드를 타다가 한 달도 되지 않아 제대로 발목을 삔 후에 한 동안 깁스를 하고 다녔다. 같은 시기에 배우던 살사 댄스도 더 이상 배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인연이란 것도 참 신기했다. 롱보드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고 싶어서 롱보드에 관한 경험을 쓴 글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을 했던 것이 합격을 한 것이다. 이미 그전에 브런치 작가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롱보드라는 이 경험이 '글 쓰는 이'로서의 내 새로운 삶을 열어준 셈이었다. 사실 글쓰기는 내 오랜 소망이었음에도 두려움이 너무 커서 시작하지 못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기 때문에, 이 일은 정말로 내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나 자신이 끈기가 없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살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이 정도의 열정과 관심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니, 무슨 일이든 시작부터 결과가 좋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었다. 자기 계발서에 적힌 정석들대로라면 나는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다시 일어나고 다시 일어나서 재도전해야만 했다. 목표가 너무 컸나 싶어서 목표를 더 세분화해보기도 했다. 난이도도 낮춰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늘 작심삼일. 아니 조금 늘어서 작심 일주일 정도는 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유지하고 있는 일도 있다. 이렇게 2-3일씩 늘려가면 되나? 아니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나는 역시 끈기가 없어서 안되는구나.'라는 더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일에 너무 각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걷다 넘어지고 걷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들이 허망하지만은 않았던 걸까. 그 2년을 되돌아보면서 나에게 맞는 계획 설정과 실천 습관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세운 목표가 결국 최종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한 목표인지 다시 한번 점검했어야 했다. 뭘 하는지 정하는 게 목표인데, 그 목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점검하라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동안 지나쳐왔다. 나의 인생 최종 목표와 그 아래 세부적인 목표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 인생 최종 목표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내가 하려던 일들 중 하나를 예를 들자면, '유튜브 영상 매주 1개씩 올리기' 라던가 '유튜브 구독자수 천명 달성'이었다. 이건 세부적인 하위 목표지 진짜 목표가 아니다. 나는 내가 왜 유튜브를 시작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지 못했다. 단지 시대의 흐름이라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누군가는 그런 동기를 가지고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INFP타입...)은 무언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의미'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내가 회사를 나온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서 유튜브를 하려는 것인가? 왜 영어 공부를 하고, 왜 독일어 공부를 하려는 것인가? 나는 아주 큰 부분을 놓쳤던 것이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은 경험을 통해 수년간 증명되어 온 일이다. 그리고 이건 지루한 것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내 성향과도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나를 알면서도 꾸준함이 요구되는 목표를 세웠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우고 자란 거였으니까 의심할 여지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유튜브 영상 매주 1개 올리기', '블로그에 매일 포스팅 하기', '브런치 글 주 1개는 올리기'... 부끄럽지만 내 목표는 정말 다 이랬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저 모든 일이 꾸준함이 요구되는 일이기는 하다. 그건 200% 인정한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게 정말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건 비단 끈기가 없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어디 끈기가 필요하지 않은 일이 있던가? 그것이 문제다. 모든 일이 끈기가 필요하니 나라는 인간의 끈기력을 올리기 위해 애써왔다. 하지만 안된다. 다이어트를 억지로 하려고 할수록 더 먹는 것처럼, 끈기력을 올리려고 애쓸수록 더 빨리 포기했다. 난 일찍이 다이어트를 포기했지만, 지금은 역설적으로 운동에 취미를 붙이고 살이 빠졌다. 그러니 그냥 끈기력을 키우는 것 자체를 포기하기로 했다. 꾸준하게 하자는 목표 자체를 버리면 나는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꾸준히 하지 않아도 되고 그럼 더 이상 자기 비하를 하며 괴로워할 일도 없다. 끈기 없는 사람에게 끈기 있게 해야 하는 과제를 준다는 것. 얼핏 보면 올바른 처방으로 보인다. 그렇게 끈기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반대로 보면 성공 가능성이 1%인 세상 어려운 과제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기도 했다. 마치 초식동물에게 단기간에 육식동물로 바뀌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 아닐까? 목표에 실패해서 좌절하게 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게다가 계속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꽤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은 엄청 끈기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계속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하나의 '꾸준함'이 될 수 있다
자, 그렇게 나는 끈기력 레벨업 미션을 포기했다. 하지만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내가 언제 글을 쓰고, 언제 유튜브 영상을 올렸으며, 언제 블로그 포스팅을 했는지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예를 들어 총 10개의 콘텐츠를 생산했다고 하면 '쓰기로 했으니까, 하기로 했으니까' 만든 건 1~3개. 나머지 7~9개는 '해야지'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새로운 흥밋거리에 접했을 때, 또는 일상에서 새로운 것들을 느꼈을 때였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매주 쓰자는 목표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고 싶다는 '하고 싶다'는 마음을 잊고 있었다. 사실 그동안 쓰고 싶은 건,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메모를 해두어서 아이디어는 매우 많다. 그런데 그것이 쌓이다 보니 '하고 싶다'가 아닌 '해야지'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해야지'로 바뀐 건 과감히 버리자. 그리고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일을 마치 셜록 홈즈처럼 찾아다니자. 그리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바로 실행에 옮긴다. 바로 이 글을 쓰는 지금처럼 말이다.
앞으로 글 100개, 영상 100개를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글과 영상에 담길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한 가지 주제에만 집중하는 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특정 테마에 맞춰서 집중해서 콘텐츠를 올리는 것을 중요한 포인트로 본다. 요리가 주제면 요리 관련 콘텐츠 위주로, 게임이 주제면 게임 콘텐츠 위주로 말이다. 일리 있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유사한 정보가 많아야 구독하거나 더 자주 방문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야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유사 광고를 게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거나 광고 클릭률도 높아져 수익으로 연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 시도해봐도 나는 한 가지 주제로 꾸준히 한다는 게 영 실천이 되질 않았다. 처음에는 역시 또 나의 끈기가 부족하구나,라고 느꼈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그냥 그 방법이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그냥 내 삶을 살면서 느끼는 것을 공유하는 게 좋다. 그게 때로는 생각이 되기도 하고, 어떤 팁이 되기도 하고, 정보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냥 내가 살면서 겪은 경험을 공유했을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작은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좋다. 이런 마인드로 어떻게 돈을 벌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더 해보기 전까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
취미가 아닌 생업으로 일을 시작하다 보면 돈과 관련한 두 가지 벽에 부딪친다.
하나는 '겨우 이 돈 받으려고 할 바에야, 그냥 안 할래.'라는 생각이고 또 하나는 '내가 과연 이 돈을 받고 일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어느 정도 내가 숙련도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첫 번째 생각에 사로잡히고, 내가 갓 시작한 일이고 업무적 경력이 없는 일이라면 두 번째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저 두 가지 사이를 엄청 왔다 갔다 했던 것 같다. 어느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일단 '하는' 것이다. 적은 돈을 받더라도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버는 돈이라면 그 안에는 훨씬 더 커다란 가치가 들어있다. 그건 내 일이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고, 앞으로 힘찬 한 걸음을 내디딘 그 무엇보다 커다란 발자국으로 남을 일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앞으로 더 발 벗고 나서서 찾아보기로 했다. 봉사활동이라도 좋다. 내가 하는 일이 나 혼자 계획하고, 만드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끼치는 관계에 있을 때 내 실력이 훨씬 더 빨리 늘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받지만...)
하다가 정 힘들면 정중히 말하고 그만둬도 괜찮다. 무엇이든 끝이 있기 마련이니 두려워말고 더 많은 일을 다시 시작하자. 두려움 없이 여기저기 마구 뛰어들던 2년 전 그때의 나처럼.